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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Nov 22. 2020

17. 지난해 봄, 2019년 4월 1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에게 딱히 지병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엔 위가 안 좋으셨다고는 하는데, 아흔이 넘어 발병했던 작은 질환이었다. 가족들은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했다. 평생을 큰 병 없이 지내셨으니 천운이 다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위장 수술 후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의 남은 삶이 6개월 정도라고 하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가족들의 걱정과는 달리 할머니께서는 3년가량을 더 사셨다. 의사 선생님의 최후통첩이 지나고 점점 회복해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우린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효도의 기회를 주시는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었다.




 그 날은 어김없이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날이었다. 매일같이 늦은 시간에 퇴근했고, 아침 일찍 출근하던 날 중 하나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한 회사의 시계는 언제나처럼 밤 9시가 되어있었다.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리가 없는데. 불길한 기분이 스쳐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언니야 왜? 뭔 일 있나'

'..승은아.. 어떡하지 할머니 돌아가셨댄다..'

'...'

'어떡하지 뭐부터 해야 하지.. 뭐 해야 하지..'

'엄마는? 엄마는 어떻던데?'

'엄마도 정신없어 보이더라.. 아 어떡하지. 병원에 일단 가야 하나.. 뭐 챙겨 가야 하지.. 니는 내려 올 거가'

'언니야 내 말 잘 들어라. 일단 나는 지금 회사에 말하고 바로 내려갈게. 기차 타야 하니까 3시간은 걸릴 거다. 나한테 문자로 병원 위치 보내고 언니야는 지금 엄마랑 전화해서 병원에 먼저 가 있어라. 엄마 절대 운전하게 하지 말고'

'어 알겠다 근데 어떡하지 삼촌한테도 내가 전화해야 하는 건가. 뭘 해야 하면 좋지'

'일단 내가 갈 때까지 언니야는 엄마 옆에 꼭 붙어있어라. 내가 갈게'




 갑작스러운 비보에 반쯤 혼이 나갔던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죽음이라 할지라도, 사망 소식을 접하는 그 순간은 쉽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가족들이 서로 웃고, 다투고, 낮잠을 자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회사에 부고 소식을 알렸다. 같이 야근을 하고 있던 팀원에게 알렸고, 상급자인 단장님에게 말씀드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회사 동료는 행정부서에 연락해 부고 소식, 휴가 등의 처리를 도와주었다. 짐을 챙겨 단장실에 들어갔다.


'단장님, 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대구, 대구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었는데. 단 한 번도 싫은 소리 한 적이 없었고,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서 펑펑 울었지 회사에서는 단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한 마디를 타인에게 한다는 것만으로 할머니의 죽음이 완연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게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나 보다. 언니한테는 그렇게 의젓하게 얘기해 놓고 지금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 옷가지를 챙기면서 문득 실감이 났다. 오래전부터 큰 나무 같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 세상에 없고,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갑작스럽게 사무쳐왔다. 마른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내리는 소나기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진 빗방울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거실에 주저앉아 울면서도 정신없이 짐을 가방에 쏟아 넣었다. 빨리 대구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들었고, 대구엔 가족들이 남아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힘없이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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