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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Nov 08. 2020

15. 요양병원(1)

 위장 수술 후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의 남은 삶이 6개월 정도가 최대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최후통첩이 지나고 점점 회복해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우린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효도의 기회를 주시는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었다.


 우리는 최후의 최후까지 할머니가 마음이 편한 집에 머무르시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셨으면 했다. 할머니도 죽을 때 죽더라도 본인 집에 있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가족들이 직장에 있을 시간에는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돌봐주었고, 일주일에 3~4번은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셨다. 타지에 계신 외삼촌들은 자주 오진 못했지만 매일 안부전화를 했고, 손주들도 수시로 할머니를 찾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엄마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에게 걸려오던 요양보호사의 긴급전화는 점점 빈도가 높아졌고, 직장에서 뛰쳐나오시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할머니에게 가장 가까이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은 엄마였다.


 한 번은 긴 휴가를 받아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엄마와 같이 쇼핑을 한 적이 있다. 엄마 핸드폰으로 할머니의 전화가 울렸지만 운전 중이던 엄마는 내게 대신 받으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평소에 자주 걸려오던 안부전화겠지 하던 할머니의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이고 나 죽는다!!' 하는 할머니의 신음 섞인 아우성에 엄마는 운전대를 제대로 잡지 못 하셨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패닉 상태의 엄마를 마주해야 했다. 엄마는 갓길에 차를 급하게 세우고 침착하게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왜!! 무슨 일인교!!'

'아이고!!! 나 죽는다!!! 배가 너무 아프다!!! 이대로 그냥 콱 죽어버릴 것 같다 지금 빨리 와 다오, 지금.... 아이고!!!'

'현관문!! 현관문 열고 기다리고 있으소!!! 내 곧 갈게요!!!'


 마침 요양보호사도 없었던 시간이었다. 엄마는 울부짖는 할머니의 전화를 붙들고 상황을 정리한 뒤 내게 일단 집에 가 있으라고 하셨다. 엄마는 차를 타고 급하게 할머니 댁으로 향했고 나는 집으로 갔다. 몇 시간 뒤 엄마는 지친 기색으로 집에 돌아오셨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라 말씀하시며 피곤한 모습을 하고 방으로 터덜터덜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어제 상황을 다시 물어봤다. 할머니는 위장 수술 후 가끔 극심한 통증이 찾아와 응급실에 종종 가셨었는데, 최근 들어 빈도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응급실에 가도 진통제를 놔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집에서 통증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릴 수 없어서 매번 119에 전화해 엠뷸런스를 불러 응급실에 간다고 하셨다. 엄마보다 119가 먼저 도착을 하더라도 집에 창문과 문이 모두 닫혀있으면 보호자가 오길 기다리거나 문을 뜯는 방법밖에 없었기에, 엄마는 할머니에게 문부터 열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거였다. 엄마는 직장에 있다가도 할머니의 전화를 받으면 뛰쳐나왔고, 새벽에 잠을 자다가도 할머니 집으로 급히 출동했었지만 막상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할머니의 긴급전화 빈도가 점점 더 높아졌고, 엄마의 피곤과 무력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가정으로 방문하던 요양보호사와 호스피스 선생님이 엄마에게 조심스레 요양병원을 권유했다.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이젠 더 이상 집에서 손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의사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빠른 응급처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고민을 해보았지만 엄마와 삼촌들은 그래도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집에 있는 게 심적으로 더 편할 거라는 생각에 요양병원을 다음으로 미뤘다.


 요양병원은 사람 죽어나가는 곳이라며 완강히 거절하시던 할머니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엄마에게 먼저 요양병원을 말씀하셨다. 이제 살만큼 다 산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죽으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이전의 불안감과 공포, 두려움보다는 어느 정도의 체념에 가까운 말이었다. 엄마는 혹시나 자신이 피곤한 것 때문이라면 괜찮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셨지만, 이미 할머니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보였다.


 그 후 몇 주간의 수소문 끝에 할머니는 집과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가장 좋은 시설이 있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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