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의 역사와 전통의상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김민성 특파원이 취재한 "베네룩스"에 대해서 알아보자!
유럽 밖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지만, 유럽 내에서는 특정 지역을 묶어서 표현하는 단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묶어서 발트(Balt) 3국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리포트에서 다룰 '베네룩스(Benelux)'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Be(벨기에/Belguium) + Ne(네덜란드/Netherlands) + Lux(룩셈부르크/Luxembourg) 즉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세 나라가 합쳐진 단어이다. 정식 명칭은 Benelux Econimic Union(베네룩스 경제 연합)이다. 단순히 인접해 있는 국가들을 합쳐서 통칭하는 말로 알 수도 있지만 베네룩스가 결성된 것은 지역적 접근성이 주된 원인이 아니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작은 국가의 규모 때문에 나라의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힘들었고, 국가의 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자립 또한 어려웠다. 이러한 작은 국가로서의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민족,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관세 동맹을 체결하게 되었고 그 동맹이 바로 베네룩스인 것이다.
베네룩스로 동맹하고 있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세 나라는 근세 시대까지는 하나의 지역으로 묶여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있었고, 중세 시대 후기부터는 부르고뉴 공국의 동군연합 아래서 있었다. 부르고뉴 공국의 강력한 통치로 이 시기 베네룩스 지방에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의 주춧돌을 쌓을 수 있었다. 맥주, 도자기, 그림 등 다양한 산업을 기반으로 네덜란드는 경제적으로 부상을 하게 되지만, 당시의 통치자 카를 5세는 높은 소득을 가진 네덜란드 지역에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였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불만이 시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종교전쟁,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네덜란드는 1581년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독립은 이루었지만 네덜란드의 북부와 남부에는 언어, 종교, 산업적인 갈등이 존재하였고 결과적으로 1830년에 브뤼셀을 중심으로 벨기에의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후 1839년 런던 조약을 통해서 벨기에가 독립하게 된다. 한편 벨기에 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이남 지역은 네덜란드가 소유하고 있었지만 치안과 국방은 프로이센군에게 점령된 상태였다. 그 지역의 주민들은 프로이센군으로 부터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으며,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프로이센군 또한 프랑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여러 상황에서 큰 소모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 지역에서 군을 철수시키게 되었고, 1867년 룩셈부르크는 독립을 이루게 된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영토가 작고 인구 밀도가 높으며,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선진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또한 2019년 현재까지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세 국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경제 동맹을 체결하였지만, 단순하게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2014년 유럽 연합 정상회담 당시에 네덜란드 총리가 국가의 상황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룩셈부르크 총리에게 부탁을 하여 네덜란드 총리대신에 룩셈부르크의 총리가 그 역할을 대신한 적도 있다. 이처럼 3국은 국제행사에서도 서로의 역할을 대신해줄 정도로 깊은 신뢰를 가진 협력국가 그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네룩스 이외에도 앞서 설명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노르딕 의회(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가 베네룩스와 비슷한 형태로 협력하는 동맹국가이다.
(1) 기독교적 색채의 네덜란드 전통의상
지난 9월 네덜란드 리포트에서는 네덜란드의 전통의상과 액세서리를 알아보았었다. 네덜란드의 지역인 볼렌담의 전통의상은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의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더치 모자와 오레이절이다. 하얀색의 더치 모자는 독실한 기독교적 색채를 상징하는 것으로, 네덜란드 북부 지방의 독립에 개신교적 성향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전통의상에서 이렇게 종교적인 색채가 나오는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다.
(2) 볼렌담 지역의 전통 액세서리
앞서 보았던 더치 모자와 오레이절과 함께 볼렌담 지역의 전통 액세서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Edelkraal'이라고 불리는 산호 목걸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볼렌담의 산호 목걸이는 19세기 중엽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산호가 건강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이 목걸이는, 매력적인 색감으로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녔음에도 네덜란드의 전통 액세서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산호 목걸이는 가운데 펜던트를 중심으로 3줄의 산호 비즈를 엮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름다운 붉은빛의 산호 목걸이는 허전할 수 있는 전통의상에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주얼리임에 틀림없다.
(3) 벨기에의 전통의상
그림에서 보이듯이, 벨기에의 전통의상에서는 네덜란드의 더치 모자와 유사한 형태의 모자를 볼 수 있다. 이 모자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 지방이었던 과거 남부 네덜란드, 현자의 벨기에의 종교적인 색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모자를 제외하고 나면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과거 같은 지역이었던 것과 달리 뚜렷한 공통점은 찾을 수 없다.
벨기에의 전통의상은 오히려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벨기에와 같이 독실한 가톨릭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의 경우 전통 의상에서는 벨기에와 유사한 면사포 모자를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전통의상에서의 이러한 종교적 색채를 보여주는 모자는 이 국가들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프랑크 왕국과 부르고뉴 공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이 함께 속해 있는 기간이 길었던 만큼 각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전통문화가 분화된 것이라고 본다.
역사와 그림은 과거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와 같다. 우리는 역사를 읽고, 명화를 보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나라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그 긴 시간의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의 전통의상들이 변화하고 완성되었다는 점을 통해서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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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촬영,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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