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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다이아몬드


FOCUS JEWELRY



다이아몬드를 떠올리면 행복한 결혼식의 한 장면이나 혹은 프러포즈를 하며 좋아하는 연인들 등 뭔가 긍정적이고 행복한 순간들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소유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다이아몬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오늘은 과거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다이아몬드와 관련된 괴담에 대해서 알아보자!





1.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호프 다이아몬드이다. 'Hope' 즉 희망을 뜻하는 이름과는 달리 이 다이아몬드는 아주 악명이 높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신비한 푸른색을 띠는 45.52캐럿의 다이아몬드이다. 1668년에 프랑스 루이 14세가 왕관의 보석으로 쓰기 위하여 구입하여 프랑스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루이 14세는 이 보석을 매우 귀하게 여겨 단 한 번만 자신의 몸에 지니고 언제나 중요한 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이후 루이 15세가 그의 애인인 듀발리 자작부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빌려주게 되는데 이 부인은 프랑스혁명 때 참수되어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죽음 이후 보석은 루이 16세에게 넘어가게 된다. 루이 16세는 자신의 부인 마리 앙투아 네트에게 다이아를 넘겨주었고, 이를 소유하던 앙투아네트 역시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프랑스 왕실에서 보관 중이던 이 다이아몬드는 1792년 왕실 도난 사건으로 사라진 후 38년이 지난 1830년에 보석상 에리아손에 의해 경매장에 나타나게 된다.  경매를 통해서 런던의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가 9만 달러에 구입을 하게 되었는데, 호프에게 경매로 다이아몬드를 팔아넘긴 에리아 손은 그 후 낙마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렇게 필립 호프의 소유가 된 다이아몬드는 시간이 지나 호프의 사망으로 그의 조카인 헨리 토마스 호프의 소유가 되면서 '호프(Hope)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주인을 거쳐서 현재는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호프 다이아몬드는 2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두 왕실을 황폐화시킨 탓에 불행을 가져오는 보석이라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모티프로 목걸이가 제작되기도 했다.



2. 리젠트 다이아몬드(Regent Diamond)

두 번째 이야기가 담긴 보석은 바로 리젠트 다이아몬드(regent Diamond)이다. 이 이야기는 1710년 인도의 파틸 광산에서 시작된다. 광산의 노예 광부가 세계에서 가장 큰 크기의 다이아몬드인 410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 노예는 다이아몬드를 숨겨 가져 가기 위해서 자신의 다리에 일부러 큰 상처를 내고 붕대를 감아 그 속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숨겼고 그렇게 해안으로 가지고 가게 된다. 


그렇게 도망친 노예는 해안가에 정박 중이던 배의 선장에게 자신을 도망치도록 도와준다면 보석의 값에 반을 주겠다고 제안하게 된다. 그 제안을 승낙한 선장은 노예를 배에 태우지만 곧 욕심에 눈이 멀어 그를 바다에 빠뜨려버리게 된다. 그렇게 보석을 가지게 된 선장은 인도의 상인에게 5천 달러를 주고 팔아버리지만, 그 후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이 다이아몬드는 1702년에 영국의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의 조부, 토마스 피트가 구매하게 되고, 그의 아들인 로버트 피트에 의해서 세공되게 되는데 연마를 하는 시간만 해도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다이아몬드로 탄생하게 된 원석은 프랑스로 넘어가 '지배자'라는 의미의 리젠트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나폴레옹 대관식 때 칼자루 장식으로 쓰였고 현재는 프랑스의 국보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3. 피렌체 다이아몬드 (Florentine Diamond)

앞선 두 보석처럼 피렌체 다이아몬드도 인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위의 사진처럼 137.27캐럿에 노란색을 띠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보석이다. (위 사진은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복제품)


인도의 왕이 소유하고 있던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16세기 포르투갈 군대가 인도의 왕에게 이 보석을 빼앗은 후 19세기에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대공에게 팔리면서 유럽으로 넘어오게 된다. 유럽의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다이아몬드는 오스트리아 황제의 왕관에 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때부터 오스트리아의 황후 테레지아에 의해 '피렌체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황후 테레지아의 딸은 혼수품으로 이 보석을 가져가게 되는데, 그녀의 딸은 바로 '마리 앙투와네트'이다. 그렇게 보석을 지니고 있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여 죽게 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스 폰 비텔스 바흐의 목걸이를 장식하게 되지만, 그녀 역시 스위스에서 살해당하게 된다.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마지막 소유주는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 '치타'이지만 그녀 역시 1922년 오스트리아 혁명으로 왕조가 몰락한 후 스위스에서 사망하게 되고,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한 미스터리 한 존재로 남게 된다. 오늘 소개된 4개의 다이아몬드 중 유일하게 남아있지 않은 다이아몬드이다.



4. 샌시 다이아몬드(Sancy Diamond)

마지막 이야기는 '샌시'라는 이름의 다이아몬드에 숨겨진 이야기이다. 샌시 다이아몬드는 55캐럿의 은백색을 띠고 있는 다이아몬드이다. 16세기에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인 샌시가 구입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현재까지 샌시 다이아몬드로 불리고 있다.


프랑스 대사 샌시는 1570년경 터키의 대사로 있을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이 다이아몬드를 구매했다고 한다. 이후 샌시 다이아몬드는 프랑스 헨리 3세에게 넘어가고 그의 대머리를 가리는 모자의 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다음 왕인 헨리 4세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팔게 된다. 그렇게 영국 왕실의 소유가 된 샌시 다이아몬드는 영국의 왕 제임스 1세를 거쳐 그의 아들 찰스 1세로 이어지는데, 청교도와의 싸움에서 진 찰스 1세는 1649년 참수를 당한다. 시간이 지나 프랑스 왕실로 되돌아온 샌시 다이아몬드는 너무나 공교롭게도 호프 다이아몬드와 피렌체 다이아몬드와 같이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유가 된다. 하지만 이 다이아몬드는 앞서 살펴본 호프 다이아몬드와 같이 프랑스 왕실 도난 사건으로 사라지게 되지만 러시아의 데이 도프 왕자에게 판매가 되어 다시 나타나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로 가게 된 샌시 다이아몬드! 이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귀족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된 로마노프 왕조의 시대 후에 프랑스의 백만장자 애스터가 마지막으로 샌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게 되었고, 그의 부인 낸시에 의해서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자료출처

보석 이미지 - Wikipedia




본 콘텐츠는 월곡 주얼리 산업연구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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