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옥천 여행
벌써 한 시간 째 숙박 예약 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가격이 좀 비싸도 한적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찾는데 쉽지 않다. 인터넷 서핑에 지칠 즈음 멋진 풍경 사진과 함께 올라온 ‘석호리 178’ 블로그 후기를 발견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설이 깨끗하고, 주변 경치도 아름답다고 했다. 사진 속 펜션 건물은 깔끔하고 세련돼 보였다. 펜션을 휘감고 있는 호수는 파란 하늘과 울긋불긋 타오르는 가을 산을 품고 있었다. 이렇게 전망 좋고 고급스러운 펜션이 숙박 사이트에 등록돼 않아 궁금했다. 난 홈페이지에 들어가 방들을 둘러보고, 전망이 좋아 보이는 이층 방 하나를 예약했다.
선이와 일박 이일로 옥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옥천은 자연과 문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근처에 대청호가 있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어 문학의 맛도 느낄 수 있다. 주말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 같아 주중으로 날짜를 잡았다. 선이는 중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는 친구다. 각자의 삶에 쫓겨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못 만나지만 언제 만나도 어제 만난 듯 편한 친구다. 아무리 큰 허물이라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처가 되는 고향 같은 친구다.
대전에서 옥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차창 밖으로는 초록이 짙어진 여름 산들이 이어졌다. 문득 산 높고 물 맑은 옥천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여 분을 달려 옥천 읍내로 들어섰다. 정지용 생가 입구에는 하천을 따라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담벼락에는 냇가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그림과 함께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시인의 대표 시 <향수>의 시구가 쓰여 있었다.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볕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벽화의 그림과 시구들이 어릴 적 고향 집과 동네 고샅을 떠오르게 했다.
칠월 초의 햇살은 적당히 따끈했고, 간간이 바람이 불어와 시를 감상하며 걷기에 딱 좋았다. 시를 읽고 가서인지 시인의 생가가 더 푸근하게 다가왔다. 세 칸 초가집에 볏짚 이엉을 얹은 낮은 담장, 마당 한 편의 우물과 장독대, 굴뚝까지 정겨웠다. 온돌방 벽에는 판본체로 쓴 시 <호수 1>이 액자가 걸려 있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참 간결하고도 간절하게 표현했다. 읽을 때마다 마음에 파문을 일게 하는 시다. 생가 옆 작은 카페 ‘향수 정원’은 정갈하고 아늑했다. 우린 커피를 마시며 쌓아 두었던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었다. 좋은 곳에서 그리웠던 친구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자 마음 가득 행복감이 밀려왔다.
저녁때 우린 옥천 읍내를 벗어나 ‘석호리 178’ 펜션으로 향했다. 지방도를 달리는 동안 길 양편으론 산바래기산, 할애비산, 참나무골산… 정겨운 이름의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졌다. 지방도에서 샛길로 들어서자 좁은 숲길이 나왔다. 길이 너무 외져 이런 곳에 펜션이 있을까 싶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겁도 났다. 비포장 길을 한 참 들어가니 ‘석호리 178’ 안내 표지석이 나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자 정원 앞과 왼편으로 널따란 호수가 쫙 펼쳐졌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는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캐노피와 해먹,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층에서 늘어뜨린 줄에는 하얀 등이 은방울꽃처럼 매달려 있었다.
주인이 나와 우리를 안내했다. 주인은 삼십 대 중반의 평범한 인상을 지닌 남자였다. 이 층으로 올라가자 예쁘게 꾸며진 정원과 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초록으로 뒤덮인 여름 산과 멀리 왼쪽 끝까지 펼쳐진 호수가 빚어내는 풍경은 “와아! 와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그 넓은 펜션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주인 남자 혼자뿐이었다. “오늘 다른 손님은 없나요?” 물었더니 오늘 손님은 우리뿐이라고 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우린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서로의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한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인가 한 채 없는 외진 곳에 우리 둘만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어둠이 깊어지자 정원의 흐릿한 불빛 너머 호수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난 현관문과 방문, 창문이 잠겼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창문을 열면 곧바로 산이었다. 밤이 되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댔다. 밖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이 졸아들었다. 우린 두려움을 잊기 위해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두 시쯤 되었을까 아래층에서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트럭이 들어오는 소리도 났다. “한밤중에 무슨 트럭이 왔을까? 누가 올라오는 건 아니겠지?” 두려움에 떨며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휘이잉 괴괴한 바람 소리만 요란했다. 새벽 한 시쯤 선이는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잠이 들었다. 난 혼자 깨어있다는 사실에 더 무서워지면서 몸이 오그라들었다. 온갖 무섭고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 동화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떠올랐다. 사냥하러 숲에 들어갔다 길을 잃은 두 신사는 ‘서양 요리점’ 간판의 식당을 발견한다. 그 식당은 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주문이 쓰여 있다. 무기를 내려놓을 것, 뾰족한 물건을 내려놓을 것, 얼굴에 우유 크림을 바를 것. 마지막엔 귀 뒤에 식초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고, 소금을 온몸에 뿌리라고 한다. 두 신사는 이 모든 주문이 누군가 자신들을 먹으려는 준비과정이라는 걸 깨닫고 두려움에 떨다 숲을 빠져나온다.
깊은 산중에 아름답게 꾸며놓은 이 펜션이 마치 동화 속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같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보았던 고립된 펜션에서의 끔찍한 사건들도 떠올랐다. 모든 생각이 두려움이 만든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와 문을 열고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밤새 두려움에 떨며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다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 아래층에서 두런거리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목소리가 마냥 반가웠다. 문을 열고 나가니 앞산의 초록은 더 짙어졌고, 산을 품은 초록빛 호수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정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린 어이없이 웃음을 지었다. 밤새 두려움에 떨었던 게 한심하기도 했다. 정원으로 내려가다 현관 앞에 세워진 초록 칠판을 발견했다. 초록 칠판엔 “환영합니다.” 인사와 함께 다정한 필체로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젠 내 안의 두려움에 눈이 멀어 주인의 세심한 배려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정원을 산책하는 우리에게 주인 남자는 밤새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편안히 잘 쉬었는지 물었다. 우린 멋쩍게 웃으며 잘 쉬었다고 했다. 펜션도 주변 경치도 예쁘다고 했다.
주말에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 치일 것 같아 주중으로 날짜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피해 호젓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여행이 오히려 우릴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했다. 힐링하기 좋은 곳에 가서 얼토당토않은 상상과 두려움 때문에 맘껏 즐기지도, 편안히 쉬지도 못한 게 아쉬웠다. 펜션을 나서며 우린 가을 단풍이 아름다울 때 다시 오자고 했다. 겁 없고 든든한 다른 친구도 함께. 생존을 위해 두려움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가끔 우린 그 두려움에 잡아먹히기도 한다. 옥천 여행 중 산속의 펜션에서 보냈던 밤이 그랬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두려움에 떨었던 걸까? 어쩌면 다치거나 사라질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우리를 삼키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그날 밤의 어이없던 두려움이 예방주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