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화의 '내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를 읽고 -
불안에 사로잡힌 ‘나’
최정화 단편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2018)를 읽었다. 수록된 여덟 편의 작품 중 <내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늙어감을 체감하면서 나 자신에게 자주 던졌던 질문 이어 선가 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나’가 아들 진세의 유치원 행사에 갔다가 우연히 부랑자의 공격을 받은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십 세의 ‘나’는 실직 상태이며 기이한 ‘틱’ 증상과 ‘대인기피증’이 있다. 아내 대신 학부모로 유치원 행사에 참여하고, 바이올린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간다. ‘나’는 유치원 마당에서 마주친 부랑자에게 귀를 물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의사와 ‘나’의 대화는 내내 평행선을 걷는다. 의사는 ‘나’가 어떤 말을 해도 자기 생각과 판단만을 고집한다. 집에선 아내와의 대화가, 바이올린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땐 바이올린 선생님과의 대화가 어긋난다. 불통의 연속이다.
고수부지에서 만난 여자는 ‘나’를 부랑자로 오해하고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민다. “내가 돈을 달라고 한 적 있어요?”라며 다그치는 ‘나’에게 두려움을 느낀 여자는 뒷걸음치다 넘어져 비명을 지른다. 오해의 연속으로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급기야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위협적인 부랑자 취급을 받는다.
“저길 좀 봐요. 저 남자가 칼을 갖고 있어요.”(p113)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가 유치원에서 부랑자에게 공격당했을 때도 누군가 부랑자가 칼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어느새 유치원에서 만났던 작고, 검은 사슴 같은 남자, 실제 나이보다 스무 살은 더 들어 보였던 그 부랑자가 되어 있다. 있지도 않은 ‘칼’이 등장하는 장면은 곧 부랑자들은 모두 폭력적일 것이라는 통념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나’가 보이는 불안정한 말과 태도는 실직 상태의 무능력한 자기 모습에서 기인한다. ‘나’는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느끼는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잃었을 때 사람이 얼마나 작고 초라해지는지,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얼마나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나’의 불안으로부터 엉뚱한 말들이 튀어나오는 희극적 상황에선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안타까움과 슬픔이 교차한다.
고수부지에서 ‘나’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나눠주며 예수가 된 기분을 느끼고, 소녀가 말을 걸었을 땐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가 길을 묻는 할머니에겐 같은 사투리로 친절하게 답해준다. 이땐 자신이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걸맞은 짝꿍’이 된 것처럼 느낀다. 그렇지만 마음은 텅 비어있다. ‘나’는 아내 옆에서 자신이 의사, 옆집 할아버지, 원장, 버스 기사 등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낀다. 모두가 현실에서 굳건한 자기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반면 따돌림당하는 작은 소년이 되고, 몸이 작아지는 느낌은 곧 자아 상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나’와 의사의 대화에서 의사는 ‘나’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사회가 인정하는 주류 집단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에도 한 치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지는 부조리한 모습을 풍자하는 것 같다. 의사는 ‘나’가 아무리 귀를 물렸다고 해도 ‘화상’이라 하고, 간지럽지 않다고 해도 “간지럽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힘없는 사람들 목소리는 묻히고, 힘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만이 작동하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 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P111)
주인공 ‘나’가 어엿한 자기 자리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관계가 그렇게 어긋나진 않았을 것이다. 부랑자의 처지로 몰아가지도,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의 불안과 자아 상실,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되찾으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희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읽은 책 : 《모든 것을 제자리에》/ 최정화/ 문학동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