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by 여름

쌩까!


몇 발짝 떨어져 있는데도 또렷하게 들렸다. 차고 시린 목소리에 데인 얼굴이 화끈거렸다. 서운함을 느낄 새도 없이 겁부터 나서 화끈대던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못 들은 척할까? 아니면, 센 척? 저쪽 반응이 뜻밖이었는지 손에 쥔 핸드폰을 쳐다보던 남자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아! 나랑 눈이 마주친 남자는 그제야 내가 거기 있는 게 생각났는지 창구로 걸어왔다. 선 채로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서류를 일삼아 그러모아 탁탁, 내리친 남자는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내려놨다. 옆자리 직원이 남자랑 창구 너머에 서 있는 나를 힐끔거렸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절마는 공과 사가 쪼매 확실한 놈이라요.

네에.


얼른 여길 벗어나고 싶었다. 핸드폰 케이스에 꽂아둔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남자는 단말기에 카드를 꽂으며 물었다.


할부는 어떻게?

체크카드예요.


고개를 까딱인 남자가 카드 단말기 숫자를 눌렀다. 내 뺨이 달아오른 건 쌩까라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공과 사가 분명한 그 사람 입에서 쌩까,라는 불경스러운 단어가 나오게 한 내 처신을 들켜서였다. 썅.


눈이 떠졌다. 꿈이구나. 꿈인 걸 알고도 들썩인 가슴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른침을 삼키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꿈이 이래. 입안 가득 맴도는 비릿함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약을 삼키고 설거지까지 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카톡. 엄마다.


'막내요즘날씨많이추운대집에있어.'


띄어쓰기 없는 문장이 오늘따라 시(詩)적이네, 전화하고 싶게.


엄마.

추워,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엉. 추운 것보다도 입안이 다 헐고 입술이 찢어져서 스케일링 예약했다가 취소했어.

잘했어. 추워. 넌 나가면 큰일 나. 아무 데도 가지 마.


창문을 보고 모로 누웠다.

기억의 전축 레코드판이 돌아갔다. 레코드판 위 고장 난 바늘이 같은 장면에서 튀고 튀고 또 튀었다.

지난 9년의 투병 생활은 단조롭다 못해 빤했다.

아침나절이면 산에서 걷고 낮엔 읽고 쓰고 먹고 해 떨어지면 읽고 쓰다 누워 자고.

유달리 눈이 많이 오던 겨울이었다. 골목 한가운데로 쓸어다 쌓아 놓은 눈더미가 다 녹지도 않았는데 또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서다 엄마랑 맞닥뜨렸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엄마를 뒤로 하고 산에 갔는데, 둘레길 초입에 입산금지 팻말이 붙어있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팻말 저 안쪽은 달라 보였다. 검고 흰 빗금과 송이가 듣고 나리는 저 안쪽은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는 별세계 같았다. 조금만 올라갔다 오자. 몸을 숙여 둘레길 입구에 쳐놓은 줄 밑으로 들어갔다. 거기, 끝이 보이지 않는… 도톰하고 반짝이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튿어진 하늘 저 건너,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시커멓게 날아들고 있었다. 구슬 같기도, 가시 같기도, 거품 같기도, 깃털 같기도, 갈기 같기도, 돛 같기도, 살갗 같기도, 땀방울 같기도 한. 하품 같은 게, 눈초리 같은 게, 아우성 같은 게, 회초리 같은 게, 한숨 같은 게, 피멍 같은 게. 펑, 펑, 하염없이, 긋고, 솟으면서. 가지 끝 봄꿈이 축복과 재앙의 폭죽에 묻히고 있었다. 먼 데서 망해버린 한 세계가 몰려들어 숲의 숨통을 끊어 내고 있었다. 나는 왜 그 순간 벚꽃잎 흩날리던 봄이 생각났을까. 내리막을 내달리던 나른한 그 봄날이. 휘익, 분 바람에 와르르, 날아오른 벚꽃잎들이 이지러진 봉분 위로 파르르 착지했다. 아아…. 나는 고만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았다. 두 팔을 벌리고 서서 기다렸다. 온다… 온다… 와. 뺨에, 손등에, 팔뚝에 벚꽃잎, 벚꽃잎이. 다, 묻고 사라지면 좋겠다…. 피지도 못할 이따위 싹일랑. 내가 한 세계의 멸망 앞에서 눈사람이 되어가던 그때 엄마는 어두운 베란다에 서서 얼음기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궂은날이면 나를 단도리했다. 꼼짝 말고 집에 있어.


지난주엔 CT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안개를 걷고 산등성이로 떠오르던 아침해는 한강 다리 너머 하늘을 붉게 물들이더니 강물 위로 윤슬을 수놓으며 따라왔다. 무한 반복에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미국으로 토낀 애정하고 애정하는 주치의의 빈자리를 알아채고 암세포를 흔들어 깨운 몸의 정직함과 영악함. 수직 상승한 그래프에 놀라 '슬금슬금' 단어 뒤로 숨은 애송이 주치의를 겁 많고 친절한 9년차 말기 암환자인 나는 못 본 척했다. 지난 1년, 우린 공범이었다.


항암 때문에 머리가 빠진 거지?

어.

그래. 코털이 다 빠져서 콧물도 나는 거고?

맞아.

그다음은?

아직 잘 모르겠어.

어. 그래.


가까운 데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옆자리에 비니를 쓴 여자랑 그 여자 발치에 발끝을 모으고 선 두 발이 보였다. 살짝 고개를 드니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옆자리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표정, 어디서 봤더라…. 슬픈 것도 동정하는 것도 무심한 것도 아닌. 잉그리드. 그래, 맞아.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을 읊조리던 마사 곁에서 분홍빛 눈송이를 함께 보던 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잉그리드.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 시그리드 누네즈, <어떻게 지내요> 중


진료실 문이 열리고 '진료 중' 칸에 내 이름이 떴다. 정직하고 영악한 내 몸은 염치까지 없어서 속내를 숨기지도 않았다. 애정하고 애정하는 주치의가 돌아올 거란 낌새에 얼음땡 모드로 돌아간 타이밍은 정말이지 극적이어서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애송이 주치의에게 그동안 감사했단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건 그렇고 돌아오는 내내 대기실 복도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따라왔다. 그다음은? 별스럽지 않은 그 물음이 왜 따라오지… 눈앞이 흐려졌다. 생각해 보니, 투병하면서 들어본 적 없는 물음이었다. 아프다니까 여기저기서 온갖 정보와 애정 어린 말들이 날아들었다. 몸에 좋다는 먹거리와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으로의 나들이도 이어졌다. 내가 원한 건 딱 하나. 실컷, 맘껏 아프기. 꿈도 야무져라. 아파도 일상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야 하는데. 세상은 모든 질병을 전염병으로 단정 짓거나 의심하며 울타리 밖으로 격리했다. 병든 몸엔 알록달록 색색의 약과 새 치료법을, 아픈 마음엔 긍정 마인드를 주입하며 공동체의 매끄러운 관계 유지를 위해 슬픔과 고통에 대해선 함구할 것을 당부했다. 명랑하고 씩씩한 투병 수칙과 건강한 구성원으로의 빠른 복귀를 장려하고 독려했다. 투병의 필수 조건은 은밀함과 쾌활함 그리고 밝은 미소였다. 언젠가 만난 한의사 선배는 암이 아니라 과로사로 죽을 수도 있다며 모든 걸 내려놓으랬다. 나는 아파서가 아니라 제대로, 온전히 아프지 못해서 억울하고 분했다. 그날 나는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는 옆자리 그 여자가 샘나고 부러워서 철철, 울고 싶었다.


흰 별 모양 꽃이 이뻐서 데리고 온 마다가스카르 자스민.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아프리카 동남쪽 인도양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왔다는 마다가스카르 자스민. 변치 않는 사랑이 꽃말이라지. 그 아이가 흘린 향을 타고 섬 구석구석을 더듬던 여름밤은 아찔하고도 어지러웠다. 세상 만물엔 정령이 있다고 믿는 나는 자주 물었다. 니가 떠나온 땅이, 그 흙내음이 생각나니. 바람은? 볕은? 또, 두고 온 건 없어? 나는 정말 궁금한 게 많았다. 나랑 쬐는 볕이 좋은지. 우리 집을 드나드는 바람이 거슬리지는 않는지. 수평선 너머로 지던 노을이 아직도 그리운지. 사무치는 게 있다면, 어떤 건지. 나는 니가 좋은데 너도 그런지. 하긴 사노 요코 말처럼, 내가 자스민이 아닌데 마음이 있다한들 어떻게 그 마음을 알겠나. 마음까진 몰라도 응애의 습격으로 생사를 넘나들던 그 아이 곁에서 노랗게 타들어가던 지난가을은 곤혹스러웠다. 죽지 마. 죽지 마. 제발, 죽지만 마.


지금 복용하고 있는 경구용 항암제는 고만고만한 부작용으로 안심시켜놓고 한 번씩 강펀치로 휘청이게 했다. 간만에 잡은 약속을 취소하게 만든 이번 회차처럼. 그래도참 전에 머릴 맞대고 예매한 연극 <에쿠우스>만은 마지막까지 쥐고 있다 대중교통 대신 차를 끌고 가서 봤다.칠째 한파가 이어지고 있었고 평일이어서 한산할 줄 알았던 공연장은 만석이었다. 요즘들어 어지간한 일엔 짜지 않길래 눈물도 인생 총량이 있나 보다, 했다. 이젠 세상사와 거리를 뒀구나, 했다. 아니었다. 그날 나는 말 여섯 마리가 내지르는 울음과 말발굽 소리 요란한 소극장에서 말처럼 울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 그 겨울 숲에 파묻고 내려온 '싹'이 천둥 같은 말발굽 소리에 눈을 떴나.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로 올라온 주인공 알런의 붉은 눈시울에 가방 속 손수건을 다시, 꺼내 지하 공연장을 빠져나오는데 젖은 내 눈가를 보고 말했지. 알면 알수록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야. 알고 보니 어떤데? 쌩양아치에 고집불통 날라리. 뭐래.


챗 GPT가 2초면 시 한 편을 쓴다는데, 신춘문예 응모는 역대 최고라지. 글이, 시(詩)가 뭐길래 시대를 거스르려는 힘은 점점 강력해지는 걸까. 앞으로는 배우는 걸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종교도 만든대. 설렘과 두려움은 뒤로 하고 궁금한 건 이런 거다. 선택이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질척이는 로봇도 가능할까. 쓸모없고 부질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생뚱맞고 발랄한 로봇은?꿈꾸는 로봇은?인간 대 로봇의 경쟁 구도가 인간 멸종에 대한 공포를 키워 시장을 장악하려는 농간으로 보이는 건 무지가 낳은 망상일까. 정말 중요한 건 기술을 독점하고 지배하는 이들의 도덕과 양심을 살피고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끄는지 그 마음은 어디로 움직이는지, 혹은 어떻게 진화하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게 아닌가. 이 또한 뭘 모르고 하는 순진한 소리이리라.


그 가을에 물었지. 왜 이렇게 가을이 기냐고.

이번엔 내가 묻고 싶다. 얼어 죽게 이 겨울은 왜 이리 춥고 컴컴한 거니.

얼마 전엔 병원 순례 중이라며 얼굴 좀 보여달라고 했다. 순례,라는 말.

김초엽 소설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순례자일지도 모르겠다.

괴롭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하려고, 여기에 남은.

언제고 돌아갈 곳이 어딘가엔 있다는 믿음으로 꼬박꼬박 먼 하늘가에 눈길을 건네는 순례자.

우리의 시초지가 아직 빛나고 있다는 희망을 쥔.


2026년 1월도 끝이다.

하늘에. 검은 물 위에 달이 떠 있는 오늘 밤

물결 따라, 달빛 따라 달리고 달렸다.


'적어도 난 달려봤어.

당신, 그래 봤어?'

- 연극 <에쿠우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