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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행복을 기대하지 마라

휴식과 안전, 행복은 밖에서 온다

by 김성곤 교수

얼마 전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여러분께 행복을 주나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몇몇 분이 손을 들었다가 금세 웃으며 내리셨습니다.

행복이라기보다는… 버거움, 책임, 때로는 의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족은 행복을 주는 공간이 아닙니다.

가족이 줄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가족이란 애초에 애착의 울타리입니다.

애착은, “내가 살아 있는 세상에 당신도 함께 살아 있다”는 확인,

그리고 “내가 무너져도 붙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입니다.


그래서 가족이 주는 감정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휴식, 위로, 정서적 지지, 안전감, 편안함.

이것이야말로 가족의 본질적인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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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기쁨, 즐거움은 어디서 올까요?

낯선 만남,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

즉, 나와 다른 존재와의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에서

인간 활동을 “노동(labor)·작업(work)·행위(action)”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족은 노동과 작업이 얽힌 가장 가까운 공동체입니다.

밥상, 빨래, 숙제, 출근과 하교,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생활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조 속에서도 ‘행위의 기쁨’ (새로움, 창조성)을 기대합니다.

이 지점에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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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 왜 우리 집은 늘 웃음이 없을까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웃음을 가족에게서 강제로 뽑아내려는 순간,

가족은 오히려 더 힘들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SNS를 켜는 순간, 수백 명의 삶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오고,

비교와 불안은 실시간으로 증폭됩니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54)는 이를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늘 타인의 성취와 나 자신을 비교하며 불안을 키웁니다.


또, 사회심리학자 일레인 해트필드(Elaine Hatfield)는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타인의 불안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우리는 행복 대신 불안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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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원래 낯선 관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인데,

우리는 그 낯섦조차 ‘타인의 성과’로만 소비해 버립니다.


결국 가족에게서조차 즐거움을 강요하게 되고,

집은 웃음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더 많은 기대와 압박이 쌓이는 공간이 됩니다.


뇌과학 연구는 이 문제를 더 분명히 보여줍니다.

신경과학자 야크 팽크셉(Jaak Panksepp)은 정서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의 애착은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혔습니다.


애착 회로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중심입니다.

익숙함, 안정감, 편안함을 만들어내며

“내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뇌에 끊임없이 보내 줍니다.


반면 쾌락·보상 회로는 도파민이 중심입니다.

새로운 자극, 낯선 관계, 신기한 경험이 주어질 때 활성화되며,

설렘과 기대감을 만들어냅니다.


즉, 가족은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지배하는 안정의 공간,

사회와 타인은 도파민이 이끄는 자극의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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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두 회로를 자꾸 뒤섞는다는 데 있습니다.

집 안에서도 우리는 SNS를 통해 끊임없이 ‘도파민 자극’을 받고,

그러다 보니 가족에게서조차

즐겁고 자극적인 감정을 원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애착의 회로와 보상의 회로는 다릅니다.

섞이는 순간, 갈등과 실망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역할은 유독 무겁습니다.

산업화, 입시 경쟁,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가족은 마지막 정서적·경제적 안전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

부모-자녀 관계는 아동기의 20년보다

성인기의 60년이 훨씬 더 길어졌습니다.

즉, ‘가족은 평생 함께 살아내야 하는 동반자 관계’로 바뀐 겁니다.


따라서 오늘의 부모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재미있는 부모인가,

아니면 든든한 부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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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세상에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줍니다.


행복은 밖에서 경험하는 겁니다.

그러니 가족은 즐겁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든든해야 합니다.


아이가 세상에서 상처받고 돌아왔을 때,

집은 놀이터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불빛 하나 켜진 따뜻한 집,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가족에게 행복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부터, 가족은 오히려 더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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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행복을 대신하는 곳이 아니라, 행복을 지탱하는 토대입니다.

부모와 가족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남는 물음은 이것입니다.

불안한 시대에, 우리는 어디서 힘을 찾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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