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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대치동

학원 불빛 아래 드러난 한국 교육의 민낯

by 김성곤 교수

밤 10시, 대치동의 거리는 낮보다 더 환합니다.

학원 건물의 네온사인은 꺼질 줄 모르고, 편의점은 교재를 들고 나온 학생들로 가득합니다.

하루 종일 학습했을 아이들은 여전히 문제집을 손에 들고 종군하듯 이동합니다.

“오늘은 몇 시까지 해?”
“11시 반. 너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한국 교육이 지닌 압박과 중압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흔히 “입시는 아이들의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입시는 이미 부모의 대리전(代理戰)이 된 지 오래입니다.

아이의 교과서를 대신 탐독하는 것은 부모이며, 학교 정보를 선취하는 것 또한 부모입니다.

어떤 학원을 다닐지, 어떤 문제집을 풀지, 심지어 어떤 비교과 활동을 할지까지 부모가 설계합니다.

결국 아이의 시험은 지적 역량의 경쟁이 아니라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을 계량화하는 시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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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교육을 “계층 재생산의 가장 정교한 메커니즘”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대치동의 풍경은 그 명제를 실증합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자녀의 학업 성취로 귀결되고, 아이의 성취는 다시 가문의 사회적 위상을 공고히 합니다.

이 악순환은 단순한 사교육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투영하는 거울입니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교육은 계몽을 위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가장 세련된 억압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대치동의 밤은 교육이 해방의 사다리가 아니라, 억압과 구속의 족쇄로 변모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체계는 아이들에게 두 가지 심대한 상흔을 남깁니다.


첫째, 자율성의 결핍입니다.
성장은 스스로 선택한다는 감각을 가질 때 동기와 성장이 촉진됩니다(Deci & Ryan, 1985).
그러나 한국의 입시 체제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불안을 대리 수행하는 행위자로 전락합니다.

둘째, 학습된 무기력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추월할 수 없는 격차 앞에서 아이들은 “어차피 안 된다”는 체념을 학습합니다(Seligman, 1975).

이는 단순한 성적 문제를 넘어, 평생에 걸친 자기 효능감과 정신 건강을 잠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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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공부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공부는 여전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자산입니다.

다만 지금의 방식, 지금의 속도, 지금의 압박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행복과 성장을 담보하는 방식인지 되묻고 싶을 뿐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긍정적 정서를 경험할 때 주의 집중과 기억력, 문제 해결력이 향상됩니다(Fredrickson, 2001).

즉, 행복과 학습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무조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대신, 학습과 휴식,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핵심은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주도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는가”입니다.

부모의 불안을 줄이고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때, 공부는 고통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평등이 점점 더 이른 시기로 전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아동패널 연구에 따르면 인지적 격차는 만 3세 이전부터 발현되며, 초등학교 입학 시점에는 이미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습니다(육아정책연구소, 2022).

OECD 보고서 또한 “영유아 시기의 사회경제적 배경 차이가 학업 성취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OECD, Starting Strong,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초등·중등 단계에서 불평등을 논하며, 영유아기 개입과 사회적 안전망은 방기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미래 사회에서 한국은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요.

교육 격차는 단순한 성적 차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좌절과 분노는 세대의 내면을 침식하고, 계층 간 단절과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OECD의 Education at a Glance 2023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고등교육 진입률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교육 불평등은 정치적 양극화, 사회적 불신, 세대 간 전쟁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대치동의 밤은 한국 사회의 예고편적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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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이 필요합니다.

AI와 디지털 혁명이 일상화된 시대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학벌에 집착하는가.

맥킨지 보고서(McKinsey, 2021)는 “AI 시대에는 창의적 문제해결, 정서적 지능, 협업 능력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는 여전히 학벌을 절대적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할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구시대적 학벌 전쟁에 동원됩니다.

결국 학벌은 디지털 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증명서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이중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회는 학벌 중심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진로 앞에서는 누구보다 집요하게 학벌에 집착합니다.

“입시 제도는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의 자녀를 위해 사교육 시장의 최전선에 서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이를 향해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대학에 가야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이 집단적 모순이야말로 한국 교육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장벽입니다.

결국 제도를 바꾸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의 욕망과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첫째, 부모의 역할 재정립입니다.
부모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아이의 내적 자율성을 지켜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정책적 개입의 조기화입니다.
영유아 단계부터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셋째, 학교의 위상 회복입니다.
학교가 사교육의 보완재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담보하는 중심축이 되도록 제도적 재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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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대치동의 불빛은 단지 아이들의 성실함을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불빛은 부모의 불안, 사회의 불평등, 국가의 무책임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어른들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미래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과거의 시험장에 가두고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 한국 교육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 물음입니다.

그러니 부모님, 혹시 너무 자신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잘못은 당신이 아니라, 불안을 키워온 사회의 구조에 있습니다.
당신의 불안을 직면하는 용기 자체가 이미 아이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참고 문헌 및 자료

Bourdieu, P. (1977). Cultural Reproduction and Social Reproduction.

Adorno, T. W. (1966). Education after Auschwitz.

Deci, E. L., & Ryan, R. M. (1985). Intrinsic Motivation and Self-Determination in Human Behavior.

Seligman, M.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Fredrickson, B. (2001). The broaden-and-build theory of positive emotions. American Psychologist.

OECD (2017). Starting Strong V: Transitions from 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to Primary Education.

OECD (2023). Education at a Glance.

육아정책연구소 (2022). 「한국아동패널 종단연구 보고서」.

McKinsey & Company (2021). The Future of Work after 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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