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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없는 아이, 창의 없는 미래

SEL, 사회정서학습의 기초는 놀이

by 김성곤 교수

시험 성적은 아이의 미래를 열어줄까요?
놀이는 단순한 여가일까요?

정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놀이가 없는 아이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티격태격하며 뛰놀고, 뒹굴고, 장난을 치는 순간.
겉보기엔 하찮아 보이지만, 그 속에서 뇌는 사회성(Sociality)과 협력(Cooperation)의 법칙을 학습합니다.

신경과학은 이를 경험 의존적 가소성(Experience-dependent plasticity)이라 부릅니다.
놀이 과정에서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계획을, 편도체(Amygdala)는 정서를, 해마(Hippocampus)는 기억을 담당하며 동시에 활성화됩니다.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 기억 강화(Memory consolidation)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놀이야말로 뇌를 통합적으로 성장시키는 최적의 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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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육학에서 주목받는 것도 사회·정서 학습(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SEL)입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자기조절(Self-regulation), 친구의 감정을 읽는 공감(Empathy), 규칙을 만들고 합의하는 의사소통(Communication).

이 모든 사회정서 역량은 아이가 뛰놀 때 자연스럽게 길러집니다.
국제기구 OECD는 Education 2030 보고서에서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은 사회정서 능력(Socio-emotional competence)과 창의적 문제 해결력(Creative problem solving)”이라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교실은 여전히 놀이보다 문제집을 더 중시합니다.
놀이터 대신 학원 건물이 늘어나는 풍경이 이를 증명합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놀이하는 종’입니다.
호이징가(J.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라 불렀고,
플라톤(Plato)은 “놀이 속에서 아이의 장래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전통 부족 사회의 아이들이 하루 대부분을 놀이에 쓰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 안에서 가상 놀이(Pretend play)가 이루어지고, 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생존력(Survival capacity)과 사회적 역할(Role performance)을 예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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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인류의 생존 전략이자 창의성(Creativity)의 기원입니다.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도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주는 흥분은 도파민 보상 회로(Dopamine reward circuit)를 자극합니다.

도파민(Dopamine)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주의집중(Attention)과 동기부여(Motivation)를 강화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놀이 속 모방 학습은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s)를 활성화하여
공감 능력(Empathic ability)과 사회적 이해(Social understanding)를 넓혀 줍니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이를 “탐구 모드(Discovery mode)”라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가설을 세우며, 탐구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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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만난 한 초등 3학년 아이가 있습니다.
주말마다 학원 스케줄로 꽉 차 있어 친구와 뛰놀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방학이 되어 잠시 학원을 쉬자, 아이는 골목에서 하루 종일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놀라운 건,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고 책상에 앉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놀이가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동시에 충전시킨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 때문에 놀이를 가장 먼저 지워버립니다.
하지만 역설은 분명합니다.
놀이가 있어야 공부가 버팁니다.

아이를 위해 학원을 더 채워 넣기 전에,
먼저 달력에 놀이 시간을 적어 넣으십시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게 아니라,
창의성(Creativity), 사회성(Social skills),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보이지 않는 근육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지켜내는 힘은 성적이 아니라, 오늘의 놀이에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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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아이의 미래를 성적(Grade)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미래를 지탱하는 힘은, 점수가 아니라 놀이에서 배운 내면의 근육(Inner competence)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습관(Habitus)”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습관은 놀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랍니다.

놀지 못한 아이는 결국 성적을 얻더라도,
삶을 지탱할 힘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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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Parental anxiety)이 아이의 놀이를 빼앗을 때,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놀이 없는 아이에게는 창의 없는 사회가 기다립니다.
그리고 창의 없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소멸시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남는 건 단 하나의 질문입니다.”
“당신은 아이의 성적(Grade)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이의 미래(Future)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오늘의 한 시간 놀이가,
아이의 내일을 지켜내는 가장 큰 힘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교육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다음 대화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참고 문헌

Huizinga, J. (1938).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Routledge.

Caillois, R. (1958). Man, Play and Games. Free Press.

Panksepp, J. (2007). “Can PLAY Diminish ADHD and Facilitate the Construction of the Social Brain?” Journal of the Canadi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16(2), 57–66.

Pellis, S. M., & Pellis, V. C. (2009). The Playful Brain: Venturing to the Limits of Neuroscience. Oneworld Publications.

Bruner, J. (1972). The Nature and Uses of Immatur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Brown, S., & Vaughan, C. (2009). Play: How It Shapes the Brain, Opens the Imagination, and Invigorates the Soul. Avery.

Rizzolatti, G., & Craighero, L. (2004). “The Mirror-Neuron System.”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 27, 169–192.

Schultz, W. (1998). “Predictive Reward Signal of Dopamine Neurons.” Journal of Neurophysiology, 80(1), 1–27.

OECD (2018).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Education 2030. OECD Publishing.

CASEL (2017). SEL Impact Report. Collaborative for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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