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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척의 대물림

말하지 않아도, 공기로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

by 김성곤 교수

참는 법을 배운 세대

우리는 참는 데 익숙한 세대입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불편한 대화는 뒤로 미룹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조용히 균열이 번져갑니다.


문제는 이 ‘괜찮은 척’이 오래될수록, 마음의 결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감정은 눌러둘수록 빛을 잃습니다.

그늘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공기가 탁해집니다.

결국 관계의 표면은 매끈해지지만, 그 안은 공허해집니다.


저 역시 한때 아이 앞에서 괜찮은 척을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어깨를 오래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그 눈빛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의 감정은 말을 삼켜도, 공기로 새어나간다는 것을.


니체는 “감정을 억누르는 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괜찮은 척을 할수록, 아이는 ‘감정은 숨겨야 하는 것’이라 배웁니다.

완벽한 부모보다 필요한 건,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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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만든 세대의 유산

우리 부모 세대는 감정보다 생존을 먼저 배웠습니다.

가난한 시절, 감정은 사치였고 눈물은 약자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도 말하지 않았고, 슬퍼도 티 내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의 유산이 지금 우리의 가정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부모는 감정을 숨기고, 아이는 그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말보다 온도가 먼저 전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전이(emotional transmission)’라 부릅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단순한 전이가 아니라 존재의 모방입니다.

부모가 감정을 억누르면 아이는 억누르는 방식을 배웁니다.

감정은 언어보다 먼저 배우는 인간의 첫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화를 참는 법만 보여주면, 아이는 세상에 침묵으로 대응합니다.

결국 부모의 억눌린 감정은 아이의 불안으로 옮겨갑니다.

감정의 침묵은 유전보다 빠른 속도로 전이됩니다.

아이의 불안은, 부모의 마음이 말하지 못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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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인 척하는 부모, 감정을 잃는 아이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힘들면 아이가 불안해할까 봐요.”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표정보다 진실의 진동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희극인 척하는 부모는 결국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깁니다.

“감정은 위험한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의 영혼은 검열을 시작합니다.

기분이 나빠도 웃고, 서운해도 조용히 뒤돌아섭니다.

감정을 느끼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그 아이는 자라서 타인의 감정에도 어색해집니다.


감정이 없는 평화는, 감정이 얼어붙은 평화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정서적 존재(being-in-mood)’라고 불렀습니다.

감정은 단순한 심리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입니다.

감정을 숨긴다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한 번은 강의 중 한 어머니가 조용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교수님, 아이가 저를 닮아 무표정해졌어요.”

그날 저는 오래 침묵했습니다.

그 무표정이야말로 세대가 물려준 가장 깊은 상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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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가르쳐야 할 언어입니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화를 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나는 이런 마음이야”라고 이름을 붙이는 일입니다.

감정은 이름이 생기면 흩어지지 않습니다.

붙잡을 수 없는 바람이던 마음이, 이름 하나로 방향을 얻습니다.


가정에서 감정 교육은 특별한 시간이 아닙니다.

식탁 위의 짧은 대화, 잠들기 전의 한마디,

그 평범한 순간들이 아이의 정서를 만듭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마음이 제일 컸어?”

“지금 네 마음이 색깔이라면 어떤 색일까?”

이런 질문이 아이의 마음을 ‘지시’가 아니라 ‘이해’로 옮겨줍니다.


잠시 멈추어 마음을 묻는 그 순간,

대화는 마음이 다시 숨 쉬는 시간이 됩니다.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감정은 억눌릴수록 파괴적이고, 이해될수록 평화롭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분노를 퍼뜨리는 일이 아니라,

평화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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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감정 다루기가 먼저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감정을 조절하려 하지만,

사실 더 시급한 건 부모 자신의 감정 다루 기입니다.

저녁 무렵, 퇴근 후 작은 일에도 예민해진 자신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나는 피곤해서 예민하구나.”


이 짧은 인식이 감정 조절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덧붙입니다.

“오늘은 조금 지쳐서 말이 짧아질 수도 있어.”

이건 사과가 아니라 감정의 공유입니다.


감정을 나눌 때, 아이는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화가 나도 도망치지 않고, 불안할 때 도움을 청합니다.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회는 결국 분노로 흐릅니다.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가정은 공감으로 확장됩니다.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부모의 한 문장이,

가정이라는 철학을 실천으로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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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감정이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감정을 드러낸다고 관계가 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관계가 진짜로 시작됩니다.

부모가 “오늘은 좀 힘들다”라고 말할 때,

아이는 감정은 숨기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임을 배웁니다.


감정을 나누는 가정은 다투더라도 금세 회복합니다.

갈등은 관계의 종착지가 아니라 대화의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서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본질입니다.


심리학은 회복탄력성을 ‘감정을 다시 다루는 능력’이라 부릅니다.

철학은 그것을 ‘자기 존재를 다시 일으키는 능력’이라 말합니다.

감정의 회복은 결국 존재의 회복입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삶을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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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교육은 인성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는 타인의 감정도 존중할 줄 압니다.

감정을 억누른 아이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지만,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아이는 세상을 다채로운 빛으로 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를 배운 아이는 결국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진짜 인성교육은 도덕 시간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다루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칸트는 인간의 도덕성을

‘타인의 고통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라 했습니다.

그 능력은 추상적 윤리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에서 자랍니다.

부모가 감정을 숨기지 않는 집,

그 집은 도덕보다 따뜻하고, 철학보다 현명합니다.



꾸역꾸역 참으며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은

결국 아이에게 ‘참는 법’만 가르칩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참는 아이보다 표현할 줄 아는 아이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부모인 우리가 먼저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오늘 나는 이런 기분이야. 그래도 괜찮아.”

그 한 문장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감정 수업이 됩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용기,

그것이 가정의 공기를 바꾸는 첫 철학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철학이 당신 아이의 내일을 더 따뜻하게 만들지 모릅니다.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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