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팔고, 희망을 소비시키는 사람들
요즘 부모들은 불안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불안한 길을 택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더 나은 교육을 찾고 싶은 열망이
어느새 나 자신을 몰아붙이게 됩니다.
저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요즘 SNS를 보면, 교육은 더 이상 ‘배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곳은 조회수와 팔로워를 먹고 자라는 불안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자녀가 의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는
금세 ‘모든 부모가 따라야 할 비결’로 둔갑합니다.
단 한 명의 사례가 ‘법칙’으로 포장되고,
그 아래에는 조용하지만 깊은 조급함과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교육 성공포르노’라고 부릅니다.
교육의 언어를 빌렸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불안을 자극해 이익과 명예를 챙기는 산업적 서사입니다.
한 아이의 이야기로, 모든 아이를 재단하는 사회
“이렇게 했더니 의대 갔어요.”
“이 습관 하나로 인생이 달라졌어요.”
통계는 없고, 맥락은 사라졌습니다.
남는 건 자극과 감정뿐입니다.
한 아이의 기적이 전국의 부모를 흔들고,
결국 또 다른 불안을 낳습니다.
저는 때로 생각합니다.
그 아이의 ‘성공’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이야기를 그렇게 포장하도록 내버려 둔 우리의 심리 아닐까요.
감동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확신이 필요한 시대였던 겁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의 성공담은
잠시나마 마음을 붙잡아주는 마취제처럼 작동합니다.
불안의 알고리즘 — 누가 우리의 클릭을 먹고 사는가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모양은 다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학습된 불안’이라 부릅니다.
정보가 넘칠수록, 비교가 일상이 될수록
불안은 구조적으로 강화됩니다.
유튜브와 SNS는 그 알고리즘을 정확히 압니다.
“이걸 모르면 늦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클릭을 부릅니다.
그 클릭은 누군가의 수익이 됩니다.
아이의 고민은 콘텐츠가 되고,
부모의 절박함은 매출이 됩니다.
불안은 이제 콘텐츠의 연료이자 경제의 자원입니다.
양육 성공포르노 — “이렇게만 하면 다 된다”는 거짓된 위로
요즘은 입시뿐 아니라 양육 전반이 이 성공포르노의 언어로 덮여 있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아이가 변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의 자존감이 자랍니다.”
듣기엔 간단하고 달콤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숨어 있습니다.
아이의 성장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피아제는 인간의 발달을 ‘점진적 구조화’라 불렀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이는 한 번에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경험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교육 콘텐츠는 그 복잡한 과정을
단기 자극으로 단순화합니다.
결국 변화가 없으면 부모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 죄책감은 다시 ‘다른 콘텐츠’로 향합니다.
불안은 그렇게 시장으로 되돌아갑니다.
불안을 확산시키는 방송 — 시청률이 진실이 된 시대
이건 개인 크리에이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종 방송과 미디어도 불안을 콘텐츠화하는 공범이 되었습니다.
‘기적의 공부법’, ‘엄마의 비밀’, ‘공부머리의 신화’
이런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을 불러 세웁니다.
검증되지 않은 말은 ‘진짜 이야기’로 자막 처리되고,
시청률이 오르면 그건 곧 ‘사실’이 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믿습니다.
“TV에 나왔으니 맞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아이의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부모의 불안이 팔리는 장면입니다.
교육의 시장화 — 지식이 상품이 되는 순간
교육이 시장의 언어로 환원되면,
지식은 ‘가치’가 아니라 ‘상품’이 됩니다.
그 순간 교육은 더 이상 성찰의 공간이 아니라
소비의 트렌드로 전락합니다.
한때 교육은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철학이었습니다.
지금은 클릭 수와 구독자 수로 평가되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배움의 깊이”보다 “노출의 속도”가 더 중요한 시대,
교육은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육의 본질 — 불안이 아닌 맥락에서 피어나는 희망
교육은 원래 복잡하고, 개인적이며, 느린 과정입니다.
그걸 1분 영상이나 3줄 요약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생각 대신 소비를 선택합니다.
희망은 자극적인 조언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희망은 내 아이의 속도와 맥락을 이해하려는
부모의 인내에서 자랍니다.
좋은 교육은 ‘무엇을 하라’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머물까’를 묻는 일입니다.
‘교육 성공포르노’는 결국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산업입니다.
부모의 불안을 팔고,
아이의 시간을 수익으로 바꿉니다.
그러나 진짜 교육은
팔리지 않아도, 클릭되지 않아도
한 아이의 호흡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교육은 콘텐츠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성장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은,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불안의 시대를 함께 걸어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교과서는,
언제나 아이 자신입니다.
✒️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