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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by 김성곤 교수

인간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안한 존재입니다.

완전하지 않기에 배우고,

모르기에 관계를 맺고,

언젠가 떠날 것을 알기에 사랑합니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본능과 현실의 충돌”이라 했고,

하이데거는 “존재가 스스로를 자각하는 징후”라 했습니다.

즉,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의식의 증거입니다.


짐승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만이 ‘내일’을 걱정합니다.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동시에 상상을 부르고,

상상은 언제나 불안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불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삶을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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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 사랑보다 반 박자 빠른 감정

누군가는 인생을 걱정하며 불안해하고,

누군가는 자녀를 걱정하며 불안해합니다.

부모의 불안은 인간의 불안이

가장 뜨겁고 개인적인 형태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요즘 부모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큰 단어는 ‘불안’입니다.

아이의 성적, 친구 관계, 진로, 스마트폰까지.

매일의 대화가 걱정으로 시작해 걱정으로 끝납니다.


세상은 더 풍요로워졌고 정보는 넘쳐나는데,

마음의 평온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부모의 불안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정보 과잉이 만들어낸 감정 피로입니다.

너무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가

우리의 지혜를 넓힌 게 아니라,

불안을 세밀하게 분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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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만난 한 어머니의 이야기

하루는 상담실에 한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의대 준비를 하는 고3 아들이 요즘 말을 안 한다며,

“혹시 우울증일까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나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눈빛은 두려움보다 죄책감에 가까웠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건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앞서간 불안’이 만들어낸 거리감이었습니다.


부모의 불안은 언제나 사랑보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반 박자 차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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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본질은 ‘통제 욕망’이다

학원 간판에는 ‘초등 의대반’, ‘영재학교 대비반’ 같은 문구가 걸려 있고,

SNS에는 영재학교 합격증, 의대 합격증이 연이어 올라옵니다.

누군가의 자랑은 다른 누군가의 불안을 자극하고,

좋아요와 댓글은 그 불안을 더 빠르게 증폭시킵니다.


“남의 아이가 앞서간다”는 생각이

“우리 아이는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는

단 3초면 충분합니다.


결국 불안의 본질은 모르는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건, 통제가 아니라 신뢰의 예술입니다.


불안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이 시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연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안은 병이 아니라 방향감각입니다.

사랑이 앞서가면 불안이 생기고,

그 불안이 우리에게 다시 길을 묻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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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기록하는 힘, ‘이야기 루틴’

부모는 아이와 부딪칠 때

대개 ‘화가 난 사람’이 됩니다.

감정의 주인으로 장면 안에 깊이 들어가 버리죠.


그런데 그 장면을 이야기처럼 써보면 달라집니다.

“누가 무엇을 말했고, 어떤 반응이 있었는가.”

문장으로 기록하는 순간, 감정은 대상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화난 나’를 바라보는 사람,

즉 관찰자(제3자)가 됩니다.

이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닙니다.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는 순간,

감정이 더 이상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합니다.

아이와 부딪힌 하루를 기록해 보세요.


“아이는 거실로 갔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이미 감정의 주도권이 바뀝니다.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려 할 때마다 실패하지만,

이야기로 옮기는 순간 감정은 ‘나의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이, 나를 다시 다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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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말이 곧 아이의 프로그램이 된다

“우리 아이는 원래 느려요.”

“사춘기라 요즘은 말이 안 통해요.”

이런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닙니다.

하나의 예언이자, 프로그램 코드입니다.


부모가 믿는 말은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은 아이의 현실을 닮아갑니다.


믿음은 때로 사랑보다 강력한 환경이 됩니다.

결국 아이를 바꾸는 건 훈육이 아니라

부모가 마음속에 쓰고 있는 문장입니다.


“우리 아이는 아직 미숙해요.” 대신

“우리 아이는 아직 배우는 중이에요.”

단 한 단어가 미래를 바꿉니다.

그래서 오늘 바꿔야 할 건,

아이의 태도보다, 부모의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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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숨기는 부모에게 필요한 용기

많은 부모는 불안을 숨깁니다.

“괜찮아, 엄마는 믿어.”

하지만 속에서는 파도가 칩니다.


아이들은 말보다 빠르게 그 파동을 읽어냅니다.

눈빛의 떨림, 손끝의 긴장,

그건 모두 감정의 진동수입니다.


그래서 진짜 용기는 불안을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불안을 인정하고도 여전히 아이 곁에 서 있는 것에 있습니다.


어쩌면 불안은,

내 아이를 향한 사랑이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멈추면 불안도 사라지겠죠.

그러니 불안은,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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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보다 편집의 시선

불안할수록 부모는 결말을 당겨오고 싶어 집니다.

“지금 안 하면 늦어요.”

하지만 성장은 한 편의 장편 소설입니다.

작가는 결말을 통제하지 않고, 장면을 다듬습니다.


편집이란 삭제가 아니라 강조입니다.

오늘의 작은 시작을 확대하고,

실패는 성격이 아니라 사건으로 남기며,

비교는 동기가 아니라 부담으로부터 멀어지는 일.

부모가 ‘편집자’의 태도를 가지면,

아이의 자아 서사는 달라집니다.


“나는 해도 소용없어.”라는 문장은

“나는 시작할 수 있어.”로 바뀝니다.

통제는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편집된 시선이 관계를 살립니다.

그리고 부모가 편집을 멈출 때,

비로소 아이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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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지팡이’를 내려놓는 용기

부모는 아이가 다칠까 봐 지팡이를 꺼냅니다.

“이건 내가 해줄게.”

“그래도 이렇게 해야 돼.”

하지만 그 지팡이는 아이를 보호하는 동시에

현실 감각을 약하게 만듭니다.


지팡이를 내려놓는다는 건,

현실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아이가 선택하고, 실수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그걸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만 아이는 배웁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는 경험을.

완벽한 보호는 성장의 적입니다.

불완전한 현실만이

아이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부모가 한 발 물러서면,

아이의 세계는 한 뼘 더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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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관계를 바꾼다

지시는 방어를 부르고, 질문은 생각을 부릅니다.

“왜 안 해?” 대신

“지금 마음은 여기에 와 있니?”

“시작을 막는 건 시간이야, 기분이야?”


질문은 아이의 생각을 깨웁니다.

질문이 많을수록 대화는 이어지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관계는 살아 있습니다.


질문이 있는 집은,

결국 서로의 마음이 닫히지 않는 집입니다.

질문은 통제보다 느리지만,

느림의 끝에는 언제나 신뢰가 있습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해석될 뿐

부모의 불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은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가능성을 사실로 오인하는 상상에서,

사실을 사실로 바라보는 훈련으로.

결말을 앞당기려는 조급함에서,

장면을 길게 바라보는 인내로.


불안은 결핍이 아니라 탐색의 신호입니다.

불안이 없으면 성장도 없습니다.

불안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게 만드는 에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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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해석되는 것이다."
-김성곤 교수

오늘 밤, 짧은 문장 세 줄만 써보세요.

“사실 한 줄.

감정 한 줄.

내일의 한 줄.”

그 세 줄이,

불안의 서사를 성장의 서사로 바꿉니다.

불안하지 않은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사랑으로 번역할 줄 아는 부모,

그게 바로 이 시대가 기다리는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요?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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