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어떻게 생존의 언어가 되었는가
요즘 다시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작’의 표정은 점점 더 무겁습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낸 생존의 패턴이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아이들, 멈추지 못하는 부모들
2025년 10월, 국회 교육위원회가 공개한
‘N수생 사교육비 조사 모델 개발 용역’ 결과에 따르면
N수생의 23%는 월평균 소득 800만 원 이상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한국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약 506만 원,
도시근로자가구는 약 709만 원,
평균 임금근로자는 약 374만 원 수준입니다.
이 간극은 단순한 통계를 넘어,
대한민국 입시의 계급화된 구조를 드러냅니다.
공부를 다시 한다는 건 단순히 결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경제적 여력과 정서적 구조가 허락한 선택입니다.
이제 공부는 ‘누가 더 열심히 하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오랫동안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경쟁이 되었습니다.
돈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게 해주는 시간의 연장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더 이상 희망의 언어가 아니라,
두려움을 지탱하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불안의 진짜 정체 — 결핍이 아니라 ‘통제 욕망’
불안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부모의 불안은 늘 “조언”의 형태로 위장됩니다.
“올해는 운이 없었어.”
“이번엔 더 잘할 수 있어.”
이 말들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입니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시간으로 이식되면서,
공부는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불안의 재현 무대가 됩니다.
불안은 목표의 부재가 아니라, 멈춤의 결핍입니다.
이 사회는 쉬는 법을 잊었고,
그 피로를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불안은 시대의 공기이고,
부모는 그 공기를 가장 먼저 들이마신 세대입니다.
경제력은 시간의 다른 이름
월 800만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소득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건 '다시 준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을 구분 짓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신분선입니다.
경제력은 시간을 삽니다.
버틸 수 있는 시간, 실패를 ‘일시적’이라 부를 수 있는 여유,
한 번 더 시도할 수 있는 안정감.
결국 공부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여유의 함수가 되었습니다. 열정보다 더 강한 변수는 가정의 구조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생존 전략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멈추면 세상이 멈출까 봐 두려워합니다.
불안을 세습하는 사회
한국 사회에서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이미 문화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불안을 자극하며 동기부여라 부르고,
부모들은 불안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요즘 교육 커뮤니티에는 ‘재수·반수 종합반’ 광고가 끊임없이 뜨고,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중등 특목고 대비반’ 같은 문장이
일상처럼 스크롤을 채웁니다.
입시학원들은 ‘의대생 브이로그’, ‘합격생 하루 루틴’ 같은 영상을 활용해
“이 길의 끝엔 이런 삶이 있다”는 식으로 홍보합니다.
SNS에는 의사, 한의사, 변호사들이
하루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를 쏟아내고,
그 화면 속 커피 한 잔, 병원 책상, 회의실 풍경은
청소년들에게 “이게 성공의 일상”이라는 심리적 프레임을 심습니다.
그 결과, ‘삶의 방향’은 ‘직업의 장면’으로 대체되고,
불안은 꿈의 형태를 빌려 우리 안에 스며듭니다.
이 사회의 심리 구조는 이렇습니다 —
불안이 있어야 안심하고, 경쟁해야 안정된다.
그래서 부모의 불안은 교육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됩니다.
끊어진 사다리 위에서
계층 사다리는 이미 끊겼고,
청년들의 자괴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교육을 ‘입시’로만 환원하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좋은 대학’이 인생의 시작점이라는 집단적 신화를 붙잡고,
그 신화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신화는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스펙이 인생을 바꾸던 시대는 끝났고,
대학은 더 이상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을 재확인하는 통로가 되어버렸습니다.
공부를 통해 사회적 이동이 가능했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아이들에게 남은 건
끝없는 경쟁의 서류전형뿐입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외면할수록,
미래 세대에게는 ‘희망의 교육’이 아니라
‘불안의 시스템’만 남습니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짓고 있는
또 하나의 조용한 죄인지도 모릅니다.
AI 시대의 교육, 새로운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공부를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공부는 ‘경쟁의 루틴’이 아니라 ‘회복의 루틴’이어야 합니다.
향후 5년, AI는 인간의 암기력과 연산 능력을 완벽히 대체할 것입니다.
의대나 전문직이 더 이상 안정의 상징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옵니다.
미래 교육은 더 이상 입시라는 단일 카테고리로 묶일 수 없습니다.
이제 아이가 준비해야 할 것은
‘정답을 찾는 힘’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해석할 줄 아는 힘’입니다.
정보의 시대를 넘어 해석의 시대로 이동할 때,
진짜 공부는 감정과 사고의 루틴을 설계하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준비해야 할 것은
입시가 아니라, 변화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적 구조입니다.
불안을 이겨내는 아이가 아니라,
불안을 관찰할 줄 아는 아이.
그 아이가 결국 AI 시대에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불안을 넘어, 관계의 회복으로
공부는 결국 관계의 문제입니다.
아이와 부모, 사회와 개인, 불안과 나 자신 사이의 관계.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건 지식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진짜 용기는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멈출 수 있는 마음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불안을 고쳐주려 하는 걸까,
아니면 나의 불안을 덜고 싶은 걸까.
그 질문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어른이야말로,
이 시대가 기다리는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요.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