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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건 부모다

방향을 잃은 세상에서, 부모가 먼저 멈춰야 한다

by 김성곤 교수

방황하는 건 아이가 아닙니다.

방황하는 건 부모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돕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스스로의 방향을 잃은 채 아이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도와주는 척하지만 통제하고,

믿어주는 척하지만 불안을 숨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부모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열심히 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

예전엔 노력하면 성공했습니다.

밤새 공부하면 성적이 올랐고,

열심히 일하면 진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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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노력보다 타이밍, 실력보다 운이 더 작용하는 세상을

이미 너무 일찍부터 체감하며 자라죠.


그래서 “열심히 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압박으로 들릴 때가 많습니다.

노력은 속도를 만든다.
하지만 방향이 틀리면, 열심히 갈수록 멀어진다.

이제 부모가 가르쳐야 할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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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말했다.

“미래의 문맹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

지금의 부모는 배우려 하기보다,

자신이 배운 방식을 고집합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다시 배우는 법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의 방식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지만,

아이 세대에게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정답을 아는 능력’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감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인정’이었던 시대의 그림자

한국 사회에서 노력은 생존의 언어였습니다.

가난을 이겨내고 남보다 앞서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던 세대에게

“열심히 해라”는 말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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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언어는 이제 불안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비교와 경쟁이 삶의 기본 문법이던 시대의 감정이

아이들에게는 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내 아이는 노력 때문에 불안해진다.”

그게 바로 지금 부모 세대의 아이러니입니다.


AI 시대,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방향 감각’

세계적 시스템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

“AI가 인간의 일을 빼앗는 게 아니라, AI를 다루는 사람이 당신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 말했다.

기술이 빠를수록 인간은 더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속도를 재촉하는 대신,

방향을 다시 묻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경로를 재설정해주는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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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보다 중요한 건 방향 감각,

정확함보다 본질을 잃지 않는 감정의 통찰력입니다.

AI는 정답을 내지만,

그 정답이 옳은지 판단하는 건 인간의 몫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할 줄 아는 인간으로 이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노력은 엔진이지만, 방향은 나침반이다.
아이의 인생은 달리기보다 항해에 가깝다.
바람은 변해도, 방향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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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보다 중요한 ‘감정 루틴’

공부를 오래 한 날보다

“오늘은 나 좀 잘했다”는 감정을 느낀 날이

아이의 뇌에 오래 남습니다.

성공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회복하는 법을 배워야

진짜 자기조절력이 생깁니다.


시험 점수를 확인할 때마다 혼내던 부모가
이번엔 틀린 문제 옆에 이렇게 적어줬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네가 진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 한마디에 아이는 며칠 동안 그 문제를 다시 풀더랍니다.

노력을 키우는 건 잔소리가 아니라,

인정받는 순간에 남는 감정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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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결국 ‘의미’의 문제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야 하느냐”만 묻지만,

아이들은 “나는 왜 살아야 하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인문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은 말했다.

“사람은 존재의 의미를 잃는 순간,

아무리 바빠도 내면은 정지한다.”


노력은 바쁨을 남기지만,

방향은 존재의 의미를 남깁니다.

방향은 진로나 목표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감각입니다.

아이들은 성적표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지?”를 묻는 순간,

그때부터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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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로 본 ‘부모의 리듬’

한국 문화심리학에서는 이를

‘비교 정서(cultural comparison affect)’라고 부릅니다.

타인의 성취가 나의 자존을 위협하는 구조 속에서,

부모의 불안은 아이의 자아로 전이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취를 인간의 품격보다 앞세웁니다.

공부는 평가의 도구가 되고,

노력은 타인을 압박하는 윤리로 변했습니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의 감정 루틴을 흔들고,

비교의 리듬은 아이의 자존을 교란시킵니다.

아이를 바꾸는 건 결국 부모의 속도입니다.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는 부모의 호흡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아이를 바꾸려면

먼저 부모가 자신의 리듬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의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남들보다 빨리 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끝까지 자기 리듬으로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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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먼저 속도를 늦춰야

아이의 리듬이 들립니다.

그 리듬을 들어주는 부모,

그게 진짜 방향을 가르치는 부모입니다.

노력은 남이 시키지만, 방향은 내가 정한다.
노력은 생존을 돕지만, 방향은 존재를 만든다.

길은 스스로 걸어야 진짜 자신의 길이 됩니다.

아이의 방향은 부모의 손이 아니라,

아이의 발끝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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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들은 말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직 오지 않은 세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AI가 세상을 계산할수록,

부모는 더 인간적인 감각으로 아이를 이끌어야 합니다.

노력은 시대의 언어였다면,
방향은 이제 미래의 문법이다.
아이를 멀리 보내고 싶다면,
바람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으로 밀어줘야 한다.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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