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돌아, 다시 제자리로

회귀

by 정미정

먼바다로 나가 자유롭게 꿈을 펼치며 튼실하게 살이 오른 연어들이 힘찬 꼬리의 추진력으로 펄떡이며 거친 물살을 헤치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수많은 포식자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귀향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본능대로 앞으로 앞으로 헤엄쳐 나간다.

출처 : 핀터레스트 Gerhard

그들은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다. 알을 낳은 연어는 길고 고단했던 귀향의 여정, 삶의 여정을 그곳에서 마무리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포항에서 자라 가슴속에 바다를 품은 나는 연어처럼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최후의 꿈이 해양 경찰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꿈을 접은 후 나는 긴 시간 꿈이 없는 방황의 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맸다.


눈을 감고 아무 원서나 뽑아 쓴 대학교.

학교 앞 문구사에서 대학교 진학책을 펼쳐 뽑기 해 걸린 대학교의 페이지를 찾아 책장 위에 손가락을 대고는 눈을 꼭 감고 아래위로 흔들다가 '스탑!'을 외쳐 얻어걸린 과에 원서를 썼고 입학을 하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을 해 봐도 참 어이없는 대학교 입학 원서 제출 사건이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왜 그 대학교 그 과에 갔는지 모르실 거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을 했으니 하고 싶은 것이 없고 되고 싶은 것이라고는 벼룩의 눈물만큼도 없는 삶!

사는 대로 살아지는 하루하루.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내 대학교 생활 중에 꿈이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딱히 없었다.

그때의 나는 의미 없는 시간만 속절없이 흘려보냈고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곳에서도 좋은 친구들과 선배들과의 우정은 쌓았다는 것,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공부는 좀 했다는 것 정도이다.


결혼 후, 남편은 직장 회식이 가정생활보다 중요한 사람이라 나 혼자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K아줌마로 살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갑작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 깊고 암울한 바닥으로 나를 내동댕이 쳤다.

끝없이 심침하는 나의 자존감이 매일 아침 눈을 뜨기 싫을 만큼 스스로를 혐오하게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기계적으로 돌보고 있지만 그때 아마 아이들은 느끼지 않았을까? 가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싱긋이 미소 짓는 큰딸의 눈빛에서 위로를 보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가라앉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의 회복탄력성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자격증 과정을 신청하고 수많은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혹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선택한 나름의 건설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한 아이에게 주산과 수학을 가르치게 되면서 수학 공부방 선생님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찾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고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아이들의 실력에 모터를 달아주기 위해 나 역시 온갖 교육 정보를 들으러 다니며 교육 자료를 찾고 만들고, 수업에 쓸 각종 서식이나 양식도 개발하는 등 꽤나 욕심을 부렸다.

한 해 두 해 지나며 공부방이 입소문을 탔고, 일취월장 실력이 늘어 만족도가 큰 학부모님을 통해 더 많은 회원이 유입되어 가르치는 재미에 돈 버는 재미로 몇 년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물론 그중에는 죽어도 숙제를 안 하는 친구, 개념을 백번 이백번 설명해 줘도 문제를 풀리면 리셋이 되는 친구, 잠시도 조용히 못하고 다른 친구의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 등 무수한 유형의 말썽꾸러기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의 문제로 늘 비화되곤 한다. 그때도 그랬다. 숙제 내면 학원에서 시키지 왜 집에 숙제를 보내서 아이가 짜증 나게 하냐고 전화 오는 학부모, 시험을 못 쳤다고 영어 성적과 비교하면서 학원 옮기겠다고 전화 오는 학부모, 아이가 오늘은 놀고 싶어 하니 일요일 저녁에 보충해 달라는 학부모, 보충수업을 잡아 놓으면 그날 나타나지 않는 아이 때문에 연락을 하면 깜빡하고 놀러 왔다는 학부모, 그러면서도 학원비를 몇 달 치나 내지 않는 학부모 등 숱한 유형의 학부모가 나를 지쳐가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공부방 위치를 좀 옮겨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들더니 수업을 한 지 12년 정도 되었을 무렵 걷잡을 수 없이 '공부방 이사' 욕구가 치밀었다.


수학 선생님이 이렇게 앞뒤 계산을 못해서야 말이 되겠냐 싶을 만큼 쓸데없이 무모하게도 나는 수업하는 모든 학생들을 다 버리고, 집에서 차로 30분 이상을 가야 하는 곳에 새로운 학원을 오픈했다.

예상대로이다. 잘 될 리가 없었다.

계약금을 다 주고 번듯하게 오픈 준비를 마치고 보니 동네에 빈 상가가 하나둘씩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그 상가들은 내가 그만두고 나올 때까지도 비어있었다.

연고도 없고, 회원도 없는 낯선 곳에 오픈한 지 6개월 동안 단 한 통의 상담전화도 받지 못하고 나의 학원 오픈기는 막을 내렸고, 거기에 병까지 생겨 학원을 정리한 뒤에도 한참을 쉬게 되었다.


살아보니 인생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을 듯 아팠던 날도, 힘든 학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나를 키워준 양분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들 만이 아니라 조용히 묵묵히 나를 지지해 주고 잘 따라주면서도 늘 고마워해 준 회원들과 학부모들이 더 많았는데 몇몇 까탈스러운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홧김에 모두 정리해 버렸으니 역시 난 모자라도 한참이나 모자란 사람이었다.


이왕 망한 김에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시도했던 보험회사의 일도 특정 사람으로 인해 3개월의 짧은 경험으로 막을 내렸다.


다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말해 뭐 하겠는가?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좋아한다. 수업 자료를 만들고 연구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더 좋아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좋아한다.

내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나날이 발전하던 그 아이들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난 뭘 해야 할까? 뿌연 안개가 걷히고 선명하고 밝은 태양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가는 거다. 내가 지우고자 했던 직함, 내가 찾고자 했던 정체성.

바보같이 그것은 여태 내가 해 왔던 일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준비를 해서 공부방을 재오픈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처럼 차근차근 지금부터 준비를 하면 실패하지는 않으리라. 아니, 실패를 하지 않도록 준비를 하리라.


그래서 나는 돌아간다. 내가 해 왔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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