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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기억

고향 그리고 그분.

by 정미정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삶의 여정이 다르고, 그 흔적들 중 기억으로 남은 이벤트 또한 가지각색이다.


정말 즐거웠던 일, 아주 슬펐던 일 등 특별했던 순간이야 당연히 기억하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평소 반복되었던 일상은 망각의 강 저편으로 건너가 있다.


최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기억에 대한 사실은... 같은 사건임에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는 것. 기억은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


내 최초의 기억은 시골 할머니댁 근처 도랑에서 시작된다. 아장아장 걷는 서너 살 남짓된 나는... 파란 블라우스에 빨간 치마, 흰색 타이즈를 입고 즐거운 기분으로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길에 잠시 도랑에서 하늘 거리는 물풀과, 떼 지어 왔다 갔다 하는 송사리 떼, 흐르는 물위로 반사된 반짝이는 빛에 현혹되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구경하고 앉아 있었다.


가장 편안했던 기억은...

국민학교 3학년 여름방학... 시골 할머니 동네 냇가에서 간단한 옷차림으로 냇물 속에 몸을 담그고 물속에 누웠는데... 한여름을 식혀줄 소나기가 쏟아져, 몸은... 따뜻한 물속에서, 얼굴에는 따끔따끔 시원한 빗줄기를 맞으며 둥둥 떠서 흘러내려갔었다.


재밌었던 기억...

국민학교 4학년쯤이었던가... 여름방학 때 사촌 오빠랑 할머니댁에서 오빠가 태워주는 자전거 뒤에 타고 냇가로 들로 다니며 둘이 송사리도 잡고, 메뚜기도 잡고, 나무에도 오르락내리락하며 놀러 다니다가... 외할머니댁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빠가 자전거를 도랑에 넘어뜨리는 바람에 도랑에 퐁당 빠졌던 기억...

비에 젖은 생쥐꼴로 들어가 평상에서 뒹굴뒹굴대며 젖은 옷을 말렸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

초등학교 내내 여름 방학마다 외할머니댁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우면 다이아몬드 가루를 쏟아부은 듯... 키 큰 감나무 가지보다 더 높은 밤하늘에서 수십 억 개의 별이 까만 하늘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을 내뿜으며 가슴에 콕 콕 박혔다.


내게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기억들...

그곳은 내게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 한 소년이 순박한 부끄러움으로 늘 내가 가는 곳마다 말없이 곁을 따르던 소년의 그림자로 풋풋한 곳,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

계셔야 할 분이 기억으로만 남아 외로운 곳...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슬픔으로 자리 잡은 곳...


행복한 기억이 삶이 건넨 슬픈 현실로 변질되지 않기를... 항상 아름다운 별처럼 소중한 추억으로만 기억되어 주기를...


기억이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상념이 겹쳐져 잠 못 이루고 긁적이며...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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