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양촉번 (羝羊觸藩)
얽히고설켜 시작도 끝도 아득한 뫼비우스의 띠
어둠을 더듬어 한 발이라도 내딛고 싶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그네는 지나온 미련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최촉(催促)조차 못한다.
시작도 끝도 불분명한 유령 같은 암흑의 뱃속...
손끝에 닿는 서늘한 그림자가 건네는 위로
슬픔도 번뇌도 고통도 절망도 이 찬 어둠 까지라네.
걷힐 것 같지 않는 안개. 시시각각 흔들리는 물결.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길. 나아가고 싶지도 않은 길.
주저앉고 싶지도 않은 길. 힘써 걷고 싶지도 않은 길.
이 길 끝에 광명이 없기를, 이 길 끝에 허무만 있기를
끝없이 얽히고설켜 나그네를 옭아매는 진한 어둠
심연의 늪에 심침하는 저주받은 영혼의 갈등은
나그네의 걸음을 그곳! 그 칠흑에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