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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lab Oct 27. 2019

#105 중국사람 이야기

#105 중국사람 이야기 

- 김기동 지음 



그래서 중국사람은 친구 사이에도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이용하고 배신할 수 있다고 여긴다.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때 친구라는 의미는 결코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서로 믿음이 있는 친구 사이'가 아니다. 그저 '이제 처음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해봅시다'라는 속뜻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집주인에게 승낙을 받고 술병을 꺼내 오면 집주인과 진정한 꽌시를 맺은 것이 아니락 설명하며 꽌시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했다. 진정한 꽌시를 맺었다는 말은 서로의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라며, 꽌시를 맺은 친구가 죽으면 그 친구의 자식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고 자신이 죽으면 마찬가지로 꽌시를 맺은 친구가 자신의 자식을 책임져준다고 한다. 그런 사이인데 하물며 술 한 병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라고 덧붙인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중국사람과 꽌시를 맺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꽌시 다음 단계를 '형제꽌시'라고 한다. 이제부터 중국사람이 말하는 진정한 꽌시 사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꽌시의 마지막 단계인 '의형제 꽌시'가 된다. 


중국어로는 간형제 꽌시라고 한다. 여기서 간형제는 혈육관계가 아닌 친밀한 의형제를 의미한다. 혹은 파형제 꽌시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파형제는 한 무리에 같이 묶여 있는 운명 공동체라는 뜻이다. 


중국사람은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을 치르며 개인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자주 겪었다. 그런데도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조차 받지 못한 경험이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꽌시라는 생활 집단을 만들어왔다. 


처음에는 둘이서만 밥을 먹는다. 몇 번 식사를 하다 보면, 같이 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 친구와 단 둘이 밥을 먹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다섯 명, 열 명, 심지어 스무 명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횟수도 잦아진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다가 두세 달이 지나면 매월 두 번 정도, 나중에는 거의 매주 만나게 된다. 초대받은 자리에 가면 매번 새로운 사람이 자꾸 나타난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면 중국 친구의 주변 사람과 거의 다 아는 사이가 된다. 


중국사람은 주위에서 본인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갖췄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을 발견하면 우선 밥부터 먹자고 한다. 


이렇게 자주 만난 그 중국 친구와는 마침내 꽌시 관계가 됐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자주 만나 같이 밥을 먹은 것은 혈연관계와도 같은 형제가 되는 기간이기도 했지만, 중국 친구가 그의 주변 친구들과 함께 필자가 가졌을 것으로 여긴 능력을 이리저리 확인해보는 기관이기도 했으니까. 


중국사람은 "도움을 받고 보답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당연히 꽌시 친구고, 은혜를 갚아야 할 상대방도 당연히 꽌시 친구다. 꽌시 친구가 아닌 사람은 아무리 도와주어도 도움을 받은 사람이 보답하지 않는다. 


꽌시 친구가 나를 도와주었다면 나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을 진 것이다. 그런데 도움을 준 사람은 막 바로 보상을 받지 않고 상대방에게 계속 빚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그래서 꽌시 친구끼리는 어지간해서는 상대방에게 부담되는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중국에서 '내가 꽌시가 넓으니까 나를 통하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해결사일 뿐이다. 해결사니까 당연히 비용과 수수료를 챙긴다.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지금 그 빚을 갚지 말고 기억하고 있다가 미래 어느 날 내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때 반드시 갚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사람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사람에게 직장은 돈을 벌 수 있는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직장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직원이 잘못된 게 아니고, 직원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빈틈을 보인 직장 경영자와 관리자가 무능한 것이다. 


중국사람에게 직장은 자신이 소속되어 조직이 원하는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아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과 직장이 서로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아니다. 중국사람에게 직장이란, 직장이 요구하는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장소일 뿐이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취직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제공하는 급여 외에 자신이 직장이라는 조직을 이용하여 별도로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중국 직원이 일하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직원이 하는 일이 고용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업무를 지시한 경영자나 관리자가 사후에 업무 진행 상황을 철저히 점검(피드백)해야 한다. 셋째로 업무 수행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규모가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사장이 직원의 업무 수행 매뉴얼과 업무 진행을 점검하는 매뉴얼을 준비한다. 그리고 직원의 업무 진행을 점검하는 매뉴얼에는 반드시 직원의 금전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사항을 명시한다. 직원은 업무 진행 결과에 따라 급여 외 장려금을 받지만 직장에 손해를 끼칠 경우 배상을 하기도 한다. 


중국사람이 생각하는 국가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국가가 전쟁만 막아준다면, 무슨 일을 하든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한국사람이 나랏일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어떤 때는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면서 행동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국심이 높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다르다. 한국사람은 공무원을 안정성 때문에 선호한다. 만일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공무원보다는 장사를 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돈을 많이 벌려면 사업을 벌이기보다 공무원이 되는 게 낫다고 한다. 


중국사람은 나라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받는 게 없으면 주지 않는 게 세상사는 법칙이다. 


하지만 중국사람이 특별히 한국사람만 속이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사람이 어리숙해서 중국사람에게 속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사람은 중국사람끼리도 잘 속인다. 특별히 한국사람만 속이는 것은 아니다. 중국사람은 '형제꽌시'가 아닌 사람과 거래를 하거나 같이 일할 때 서로 속이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니까 중국사람은 속고 속이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 이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면서 자주 하는 말은 '남에게 속지 마라'다. 중국 어머니의 이 가르침은 남, 즉 나와 형제꽌시가 없는 사람은 모두 나를 속이니까 세상 모든 사람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상인이 자기가 받고 싶은 최고의 가격을 제시한다. 그러면 손님은 당연히 '주인이 말하는 가격은 나를 속이는 가격'이라고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다시 제시한다. 이렇게 서로 토의하고 연구하여 상품의 원래 가격으로 되돌리는 일이 바로 중국의 흥정이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아주 작은 물건을 거래하더라도 진지하고 치열하게 상의하여 최종 가격을 결정한다. 


한국에서 '상품'은 당연히 정상적으로 제조된 물품을 말한다. 유명브랜드 상품을 모방한 이미테이션 제품, 소위 짝퉁이 거래되기는 하지만 그리 많지 않다. 중국에서는 상품이라는 단어 대신 두 가지 말이 쓰인다. 첫째, 상품이 정상적으로 생산돼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경우 이를 상품이라고 부르지 않고 정품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둘째, 상품이 비정상적으로 생산돼 비정상적으로 유통되는 경우 가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중국 시장에 가짜 상품이 유통되면 그 상품을 생산하는 한국회사는 손해를 입기도 하지만 되레 더 큰 이익을 보기도 한다. 중국산 가짜 상품이 나오면 '얼마나 잘 팔리는 물건이기에 가짜까지 나왔을까'라는 인식을 중국 소비자에게 심어준다. 가짜 상품이 한국 해당 상품을 홍보해주는 경우도 있다. 중국 언론에서 발표하는 가짜 상품 리스트가 있는데, 여기에 한국 해당 상품이 포함된다면 더 이상의 광고는 필요 없다. 


그러니까 중국어 사전에서는 '사다'라는 단어를 '돈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걸 얻는 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사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생활한다. 중국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사고파는지 알아보자. 


한국어 사전에서 '장사'는 이익을 얻으려고 물건을 사서 파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중국에서는 장사를 '셩이'라고 부르는데, 글자대로 풀이하면 '살아가는 의미'다. 다르게 표현하면 '삶이 곧 장사'라는 것이다. 


중국사람에게 물어보면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 3년은 이익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단다. 적어도 3년은 지나야 단골고객을 확보해 이익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칼을 가는데 10년이 걸린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떤 일이든 10년은 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치고 빠지는 장사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1800년대 후반 중국에서 생활한 미국사람 아서 스미스는 '중국인의 특성'이라는 책에서 '중국사람에게는 연극 본능이 있다'고 했다. 중국사람은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현실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면 또 바뀐 현실 상황에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을 한다. 마치 현실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A가 옳다고 그렇게 여기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고, 현실의 상황이 바뀌어 많은 사람이 A가 틀리고 B가 옳다고 하면 또 그렇게 여기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다. 


중국사람은 수천 년 동안 이런 방법으로 공부했다. 그래서 공부한 내용을 기억하고 잘 외우기는 하지만 공부한 내용을 응용하거나 공부한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져보거나 공부한 내용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서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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