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을 한 권

#25 우연한 여행자

by monolab

딱 한 권 고르라면 고를 책. 매년 다시 읽어도 매번 새롭게 읽힌다.




#25 우연한 여행자

- 생텍쥐페리 지음 / 양혜윤 옮김

가능하면 1년에 한 번, 여유를 가지고 2h


대지는 우리에게 그 어떤 책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저항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애물을 만나 그것을 극복하고자 할 때 자신에 대하여 가장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애물을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p6


우리는 서로가 '만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들판 저 멀리에서 깜빡이고 있는 불빛들과 의사소통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p7


이런 식으로 내 스페인 지도는 동화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대피소와 위험지역을 십자표로 알기 쉽게 표시했다. 물론 농가와 농부, 서른 마리의 양, 지리학자들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숲속의 개울도 표시했고, 양치기 소녀의 자리도 표시해 두었다. -p19


오늘날의 비행요원들은 자신들이 비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 상태로 근무를 한다. 그러나 계기판의 바늘과 계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금술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일 초, 또 일 초가 지나감에 따라 은밀한 행동과 거친 말소리가 반복되며, 기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p26


별 사이에서 안개 속을 헤치며 바다에 추락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조종에 쏟고 있는 상황에서 고작 징계에 관한 소식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네리와 나는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는 나와 네리만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막다른 상황,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별의 의미는 우리가 우주 공간에서 해야 하는 고도계산과 위치설정을 위한 정확한 대상이었다. -p32


처음은 대자연이 오만스럽게 고통을 주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엄격함과 순응할 힘을 주는 것이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하늘이 만든 위대한 재판정에 홀로 남겨진 조종사는 산, 바다, 폭풍우, 이 세 자연의 신을 상대로 비행기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p36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는 당장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먼 뭇날을 위해 나무를 심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이 나무들이 한 그루 두 그루 사라지는 날이 온다. 동료들은 그늘을 하나 둘 우리에게서 앗아간다. 그러면 우리는 늙어간다는 슬픔에 회한을 느끼게 된다. -p43


"눈 속에서 기력을 잃으면 살고자 하는 의욕을 잃게 되네. 이틀, 사흘을 걷고 나면 오직 자고 싶은 욕구뿐이네. 온통 자고 싶은 욕구뿐이지. 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말했네. '내 아내는 내가 살아있는 줄 알면 분명 걷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친구들도, 동료들도, 내가 걷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모두가 나를 믿는데 내가 걷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을 배반하는 거지. 일어나서 걷자'."-p55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희망 중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해결할 수 있는 책임 곧,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느낄 줄 아는 것이다. 동료가 거둔 업적을 자랑으로 아는 마음, 돌덩어리라도 세상에 필요함을 느끼는 그런 자세가 참다운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p62


완성이라 함은 이제 더 첨가할 것이 없음이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할 불순물이 없을 뜻하는 것이다. 기계는 더 이상 진전이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발명의 완전함은 완전치 못함과 항시 같은 선에 있는 것이다. -p70


사과나무 아래에 펼쳐 놓은 보자기는 사과만을 받을 수 있고, 별들 아래에 펼쳐놓은 보자기는 별가루만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운석도 자신의 근원을 이렇게 자세히 나타낸 적이 없었다. -p85


또 다른 힘은 나에게 힘을 가져다 준다. 나는 그 많은 것들로 나를 잡아당기는 중력을 느낀다. 내 꿈은 저 언덕, 저 달, 어떤 실재들보다 더 현실적이다. 아! 집이 지닌 놀라운 기능은 우리를 보살펴주거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벽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늑한 느낌을 조금씩 가져다주는 놀라움과 샘에 물이 고이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이 생겨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p91


세월이 흘러가니 바삐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하지만 세월은 가는데 인가은 붙들린 상태로 있다...그래, 세상의 많은 재물들이 사막을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잘도 빠져나갔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인 안정 속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기착지 비행장에 착륙해서 끊임없이 불어대는 무역풍이 우리를 괴롭힐 때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p107


그러면 우리에게 사막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 내부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사막은 우리 자신에 관해 우리 스스로에게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날 밤 사촌여동생과 대위를 그리워했던 것이다...-p114


그는 여기서 오직 모험만을 위해 살 것이고, 가장 중요한 인생의 의미가 이곳에 있다고 믿을 것이다. 사막의 매력과 고요와 바라과 별들의 이 고향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사막에만 있음을 싫어도 알게 되는 것이다. -p135


그는 조용한 사람이다. 차를 만들고 낙타를 돌보고 먹고 마시는 일에 여념이 없다. 찌는 듯한 대낮의 태양 아래서는 밤을 향해 걸어가고, 별들만 반짝이는 매서운 밤에는 대낮의 찌는 듯한 태양을 그리워한다. 여름에 눈 이야기를 하고 겨울에 태양 이야기를 하는 북극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한증막 속에서 별로 변하는 게 없는 열대 지방의 단조로움은 얼마나 황량한가. 그러니, 낮과 밤이 사람들을 이 희망에서 저 희망으로 간단하게 옮겨 주는 이 사하라도 역시 행복한 곳임은 틀림없는 것이다. -p140


하지만 인간의 죽음과 함께 알지 못하는 세상이 하나 사라지기 때문에 나는 그의 내부에서 꺼져가는 영상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세네갈의 한 큰 농장이, 남부 모로코의 하얀 도시들이 조금씩 망각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다. -p143


이제는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은 어느 쪽이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 자유가 왠지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자유가 세상과 어떤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알아야 했다. -p151


우리는 모든 것들의 밖에 있으며, 오직 저 엔진만이 우리를 이끌고 동화에 나오는 짙은 어둠의 깊은 계곡, 시련의 골짜기를 벗어나게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p168


나는 아직도 가지들의 매듭을 가려낼 수 있으며, 생명의 비틀림을 볼 수 있고, 줄기의 연륜을 셀 수 있다. ... 저 언덕의 철갑 옷보다 더 검은 이 어마어마한 표착물들이 나를 거부하고 있다. 내가 여기 이 변치 않는 대리석들 가운데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덧없는 내가, 그 몸이 소멸해 버릴 내가, 여기 영원 속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p193


때때로 우리는 나침반으로 우리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또 가끔 숨을 돌리기 위해 벌렁 나자빠지기도 했다. 또 밤을 위해서 간직하고 있던 레인코트를 어딘가에 던져 버렸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내 기억은 시원한 저녁이 온 뒤에야 다시 살아난다. 나 또한 모래와 같이,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지워져 버렸다. -p203


사람들은 인간이 자기 갈 길을 곧장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을 우물에다, 탯줄처럼 인간을 대지의 배에다 붙들어 맨 그 끈을 보지 못한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그는 죽는다. -p212


진리란 논리로써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흙 한 무더기 속에서 오렌지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오렌지 나무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 흙더미가 진리인 것이다. -p227


우리는 인간이 되려면 한참을 살아야 하오. 우리 모두는 아주 느리게 우정과 사랑의 타래를 땋아야 하오. 우리는 천천히 배우는 거요. 우리는 천천히 창조하는 거요. 만약 우리가 너무 일찍 죽는다면, 우리는 제 몫을 사기당한 것이란 말이오. 우리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살아야 하오. ... 우리가 공통되는 이상 그리고 관심이 없는 이상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운 호흡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마주보는 게 아니라, 둘이서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인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동일의 숭고한 노력 속에 화합을 이루지 않고서는 동료의식을 느낄 수 없다. -p240


뉴튼은 인간으로부터 숨겨 있는 법칙을 '발견'한 게 아니다. 그는 창조적인 활동을 완수하는 것뿐이다. 그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를 발견한 것이다. 진리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다. -p244


크기야 어떻든, 인생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의식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된 후에야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또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이것만이 삶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246


한 편의 시 속에서 기적을 볼 수 있고, 음악으로부터 순수한 기쁨을 취할 수 있고, 친구들과 빵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자기의 창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질 못한다. -p248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쓸 만한 정원사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 영혼이 대지 위에 숨쉴 때, 오직 신성한 정신만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p255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귀대 시간이 훨씬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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