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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38 숨결이 바람이 될때

by monolab


#38 숨결이 바람이 될 때

-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말을 수집하듯이 2h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나는 CT 정밀검사 결과를 휙휙 넘겼다. 진단은 명확했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척추는 변형되었고 간엽 전체가 없어졌다. 암이 넓게 전이되어 있었다. 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이런 정밀검사 결과를 수없이 검토했다. 혹시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 사진은 내 것이었다. -p19


숲, 호수, 산, 새들의 지저귐이 한데 어우러진 장관과 네 살짜리 행복한 꼬마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스무살 청년이 죽음을 논하는 검은 표지의 작은 책에 코를 박고 있다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다만 장소는 타호 호수가 아닌 허드슨 강이었고, 아이들은 낯선 이의 아이들이 아닌 내 친구들의 아이들이었으며, 내 주위의 삶과 나를 분리하고 있는 건 죽음을 논하는 책이 아니라 죽어가는 나 자신의 몸이었다. -p32


"의사 선생님께서 곧 오실 거예요." 그 말과 함께 내가 꿈꿔왔으며 곧 실현되려던 미래, 그리고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하며 도달하려 했던 삶의 정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p35


진지하게 말하자면,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삶의 의미를 온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나 도덕적 가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생의 무의미와 고독,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대감에 대한 절박한 추구를 이야기하는 T.S.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p52


나는 아이나 노인의 지혜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나의 순간, 하나의 정점이 있다. 쌓이고 쌓인 경험들이 삶의 세부사항들에 의해 마모되어버리는. 바로 이런 순간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명해지는 순간이다. -p57


나는 언어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인생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의 관계적 측면, 즉 '인간의 관계성'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뇌와 신체 그 자체의 생리적인 명령에 따라 일어나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열정, 갈망, 사랑 등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언어가 신경 세포, 소화관, 심장박동의 언어와 연관되는 뭔가 복잡한 방식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p62


멜리사가 앞서 말한 것처럼, 태아는 자궁 안에서 24주를 보내야 최소한의 생존력을 지닐 수 있다. 가르시아의 쌍둥이는 23주 6일을 자궁 속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장기는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책임을 다할 준비는 아직 안 되어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그 아이들은 거의 넉 달은 더 자궁의 보호를 받으면서 탯줄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화된 혈액을 더 만힝 공급받아야 했다. 이제 세상에 태어났으니 산소가 폐로 들어가야 하지만 쌍둥이의 폐는 복잡한 팽창과 가스 전달, 즉 호흡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p85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죽음이라는 한계에 다다른 쌍둥이의 상황에 너무도 잘 들어맞는 사뮈엘 베케트의 은유만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나는 '겸자'를 든 '무덤 파는 사람' 옆에 서 있었던 셈이다. 쌍둥이의 삶은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p89


어떻게 하면 의사다운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앞으로 실제적인 의학을 더 많이 배워야겠지만,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지식만으로 충분할까? 물론 지능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도덕적 명확성 또한 필요했다. 앞으로 내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함께 얻게 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p90


모든 뇌수술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인 뇌를 조작하며, 뇌수술을 받는 환자와 대화할 때에는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뇌수술은 대개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그래서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이 그렇듯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p95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p102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 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뜻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p116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p124


어느 날, 나는 파킨슨병으로 인한 떨림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의 뇌 속으로 9센티미터 깊이에 전극을 심었다. 이 치료의 표적은 시상밑핵으로, 뇌의 깊숙한 곳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조직이었다. 시상밑핵의 각 부분들은 서로 다른 기능들(움직임, 인지, 감정)을 보조한다. 수술실에서 우리는 떨림을 측정하기 위해 전류를 흘려 보냈고, 환자의 왼손을 보면서 떨림이 다소 나아졌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의 긍정적인 중얼거림 속에서 환자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갑자기 너무 슬퍼요." -p134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p141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 전체가 긑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p148


나는 앉아서 의과 대학원 시절 루시와 함게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는 춤을 추며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슬펐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르고 함께할 인생을 계획했다. 내 친구인 로리는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을 때 약혼자가 있었다. 이 편이 더 잔인할까? -p155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p161


우리의 정체성으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p165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p174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거야." -p180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기로 결정했더라도, 두 달 뒤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두 달 후에는 색소폰 연주를 배우거나 신앙생활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음은 단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p192


또한 원죄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항상 거기에 맞춰 살지는 못한다." 결국 이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이다. 설사 당신이 구약성경의 <레위기>를 잘 안다 해도 그대로 따르며 살 수는 없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p203


아침이 지나갔고, 나는 마지막 수술을 하기 위해 손과 팔을 씻었다. 갑자기 이 순간이 장대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손을 씻는 것도 마지막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팔에서 떨어져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비누 거품을 나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 이 수술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p208


한쪽 팔로 아이의 무게를 느끼고 다른 팔로 루시의 손을 잡고 있으니 삶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내 몸의 암세포는 여전히 죽어가거나 아니면 다시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써내려가야 할 빈 페이지였다. -p230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어에서 우리는 시간(time)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지금 시각은 두 시 사십오 분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요즘에는 전자보다 후자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기력해졌고, 더 너그러워진 것 같다. -p232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34




Epilogue 루시 칼라니티


누군가는 케이디가 태어나고 폴이 숨을 거둔 그 사이에 동네 바비큐 식당에서 우리 식구를 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검은 머리에 긴 속눈썹을 가진 아기가 유모차에 탄 채 졸고 있는 동안, 맥주 한 잔을 나눠 마시고 갈비를 뜯으며 서로에게 미소 짓던 우리 부부를 본 사람은 폴이 앞으로 살 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또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p238


<숨결이 바람이 될 때>는 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삶의 마지막 몇 해 동안 폴은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또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자극받으며 쉼 없이 글을 썼다. -p251


폴의 목소리는 강하고 독특하며,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다. 이 책에는 그를 둘러싼 사랑, 온정, 관대함, 인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자아로 살아간다. 이 책에서 폴은 의사이기도 하고 환자이기도 하며, 의사 겸 환자 관계 속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만이 가진 명료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다른 자아들도 존재했다. -p258


나는 폴이 세상을 떠나면 내 인생에는 오로지 공허와 슬픔만 남을 줄 알았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p262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폴의 결단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p264








우연히 같은 날 본 영화. 전 CIA요원 '빌'의 기억을 싸이코패스 범죄자 '제리코'에게 이식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리코'를 따라간다. 타인과 공감하는 법을 몰랐던 '제리코'는 '빌'의 기억과 그의 가치판단 방식에 영향을 받으며 그의 정체성은 '빌'에 가까워진다. '빌'의 가족을 만난 후 '제리코'가 느끼게 되는 묘한 감정과 책임의식, 사랑은 전혀 다른 외형을 하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제리코'를 '빌'의 아내와 아이가 또 다른 가족처럼 느끼게 하는 정서적 교감을 만들어낸다.


기억 이식이라는 소재도 재미있었지만, '기억'을 단순히 사실로서의 과거가 아니라 그 순간의 모든 감정과 현재를 만들어온 가치판단의 누적이라는 관점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 언젠가 기억이식도 가능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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