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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lab Jul 30. 2017

남은 날들

#51 내게 남은 날이 백일이라면

#51 내게 남은 날이 백일이라면

-리카이푸 지음, 정세경 옮김 

쉬는 날 2h



중의학에서는 몸이 건강하고 병이 없는 사람을 '평인'이라 부른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편안한 날들을 보내는 사람이 평인이다. 반면 건강을 잃고 평탄한 날들에 풍파가 일어 생사를 점칠 수 없고 앞길이 막막해진 사람을 '병자'라고 일컫는다. 단 한 번도 건강에 신경 쓰지 않고 성공만 추구하던 나는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내가 그 평범한 '평인'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21


쓰는 내내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웠지만, 셴링과 아이들을 위해 꼬박 하루 반나절이 걸려 이 힘든 일을 결국 완성해냈다. 그러고는 슬프고도 불안한 마음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무슨 일이냐며 관심 어린 질문을 던졌지만 도무지 어떻게 입을 떼야할지 알 수 없었다. 유언장을 쓴 일은 차마 언급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얼버무리며 말을 흐렸다. 이후 며칠은 평소나 다름없이 일했지만 나는 결코 잘 지낼 수 없었다. 생각도 안정이 되지 않을뿐더러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p27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 평생 죽음에 관해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질병이나 죽음, 슬픔 등 엄청난 실의에 맞서게 됐을 때 '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라는 5단계 심리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 나는 가족을 비롯해 내가 하는 일까지 여전히 이뤄야 할 꿈이 많았다. 그 때문에 절망의 와중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내 의지가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p31


림프종 확진을 받은 후 아내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아내는 스물두 살에 나와 결혼한 뒤로 온 힘을 가정에 쏟아왔다. 그녀에게 나와 아이들은 세상 전부였다. 내가 없으면 그녀는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또 아이들은 어쩌지? 가슴이 찢어졌다. 남자는 쉽게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는 말은 무용지물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p36


논문을 읽던 나는 흥분한 나머지 한밤중에 서재에서 벌떡 일어나 침실로 달려가서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웠다. 신기한 건 그 이후로 암 때문에 생긴 모든 부정적인 변화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암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흉악한 적이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으로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날 밤 이후 나는 진정제를 먹은 것처럼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담담히 모든 치료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나 스스로 이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살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p42


사람의 몸이 그토록 감성적이라는 걸 치료 중에 깨달았다. 사소하고 간단하게 생각되던 모든 일들이 어느 것 하나 당연하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종잡을 수 없는 변화는 이성이나 과학으로는 도저히 분석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p50 


그때 나는 의사가 생각하는 통계학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통계학이 매우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의사는 환자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말들은 일부러 애매하게 흐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 나는 어떤 문제든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투병 기간을 거치는 동안 모든 인식이나 관점은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 후 나는 수많은 논쟁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의학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는 가능한 한 의사의 의견을 따르려고 마음먹었다. -p54


내게 스트레스란 걱정이나 긴장, 초조함,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었고, 내게는 그런 것들과 맞설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에 걸린 뒤 좋은 책을 읽고 지혜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스트레스가 부정적 감정뿐만 아니라 승부욕, 기대, 기다림, 흥분 같은 긍정적 정서에서도 발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더군다나 나처럼 '세상을 바꾸자', '내가 있어 세상이 달라진다'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자칫 몸에 제거하기 힘든 독을 키울 수 있다. -p56


말기암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딸아이는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대요." ... 병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왜 하필 나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강한 반항심에서 비롯된 그 질문은 오히려 "꼭 내가 아닐 이유가 있나?"라는 자문으로 바뀌었다. -p58


아주 어릴 적에 한 번은 돈을 훔쳤다가 제 풀에 겁이 나 벽 틈에 그 돈을 던져놓은 일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이렇게 물으셨다. "카이푸, 지금 기분이 어떠니?" 아버지가 건넨 뜻밖의 질문에 잠시 멍해 있던 나는 이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나한테 실망했어요." 아버지는 한참을 울게 놔두신 뒤 내 어깨를 두드리며 가만히 말씀하셨다. "앞으로는 네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p64


예전에 나는 아직 시간이 많다고 여겼다. 아니 남은 시간을 헤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연설 준비만 마치면, 이 인터뷰만 다하면, 이 투자건만 마무리하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다. 내게는 이런 일들이 평범하고 사소한 일보다 훨씬 중요했다. 하지만 고작 백일의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허튼 것만 좇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대신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거품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p67


스티브잡스는 "죽음을 맞게 될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했다. 지금도 나는 이 말을 매일 되새기며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선택인지를 곱씹는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영광과 자부심, 고통과 두려움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만약 무언가를 잃게 될 것이 걱정된다면 이 한마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평생 임종 환자를 돌봐온 보니 웨어라는 간호사도 사람이 죽을 때 결국 후회하는 다섯 가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p69


첫째,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걸 그랬다. 
둘째, 애초에 일에만 지나친 정력을 쏟지 말걸 그랬다. 
셋째, 내가 느끼는 기분을 용감하게 표현할걸 그랬다. 
넷째,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낼걸 그랬다. 
다섯째, 스스로 좀 더 즐겁게 살걸 그랬다. 


이제 나는 작디작은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실천하고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와 같이 실천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나는 더 이상 용량화 된 사고로 가치와 의미를 계산하지 않는다. 삶은 심오한 것이기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가치와 의미가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곳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새로운 날이라고 하지 않던가. 큰 병에서 깨어나며 내 마음도 깨어날 수 있었다. -p78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일, 혹은 존재조차 모르는 영역이 너무나 많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한 일이 어느 면에선 아무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고, 또 내겐 전혀 가치 없는 일들이 누군가에는 정말 중요한 의미로 다가설 수 있다. 게다가 삶의 의미는 일일이 무게를 달거나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사람의 인생은 쉽게 계산할 수 없다는 걸 아픔을 겪는 동안의 과정들이 내게 말해줬다. -p81


그것으로 족하다. 지난날 어떤 잘못을 했다고 구구절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어제의 나는 이미 죽었고, 오늘의 나는 매일 새롭게 살고 있지 않은가. 또한 예전의 잘못이 없다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인생의 묘미는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이를 고치고 또 고쳐나가는 데 있다. 단숨에 '선'에 이르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며 옥을 깎고 다듬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 "전에 말씀하시길 인생의 경험이 늘어날수록 쓰고 싶은 묘비명이 달라진다고 하셨는데요. 이번에 병을 앓고 난 뒤에는 어떤 묘비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초심을 잃게 된 근원이 바로 여기 있음을 깨달았다. -p86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첸무 선생으로부터 귀한 글귀를 선물 받았다. '관용이 있으면 덕이 넓어지고, 바라는 것이 없으면 성품이 자연히 고상해진다'라는 글귀로 집 안 거실에 줄곧 걸려 있다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고 있다. ... 이 실마리를 따라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타인의 시선을 유난히 신경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 수 있는 특별한 이미지를 갖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좋게 말하면 '자중자애'지만 사실은 체면을 따지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콤플렉스에 불과하다. 바로 그런 콤플렉스가 내 중심에 단단한 뿌리처럼 박혀 있었던 것이다. -p88


많은 이가 세상사에 관심을 갖지만 스티브잡스는 적어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훨씬 집중한 사람이다. 이에 대해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이는 그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안하무인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을 만족시키는 일에만 집중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영원히 초심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p97


한번 샘구멍이 열리면 연이어 샘플이 솟아 나오듯 나는 감사에도 여러 단계가 있음을 알게 됐다. 제일 처음 나는 가족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에 대해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가 먼저 나서서 나 아닌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 그리고 제일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나는 어떻나 희생을 해도 전혀 보답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때 그것이 순수하게 사랑과 관심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는 그 자체로 완성된 행위이다. -p100


20세기 대표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일부러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선량한 꽃은 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신이 일부러 겸손의 마음을 키우려 하면 결국 그 결과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선량과 겸손은 시원한 바람처럼 당신이 우연히 열어둔 창문을 넘어 불어올 뿐, 일부러 열어놓은 창문에는 영원히 불어오지 않는다." ... 마음을 열면 시야도 자연스럽게 넓어지는 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계속 성장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에전에 내게 상처 줬던 사람도 용서하고 감사히 여겨야 한다. 그들 역시 미성숙한 존재로 마음에 두려움과 욕심을 느꼈기 때문에 내게 상처를 주지 않았겠는가. 또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같은 행위를 했을지 모른다. -p102


그는 시공의 개념이 없는 천국을 경험했으며 그곳의 안내자로부터 세 가지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첫째,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당신은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까 겁낼 필요가 없다. 셋째,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이븐 알렉산더는 7일 동안 겪은 '지각이 깨어 있는 의식불명'을 통해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숙명론을 따를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그 선택을 위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선택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p105


그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p109 

첫째, 나는 양심에 따라 모든 일을 하고 있는가? 
둘째, 무조건적으로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셋째, 나는 자신에게 진실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할 수 있나? 
넷째, 나는 지금 진실하게 인생을 살면서 선량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고 있을까? 그러면서 점차 성장하는 인생을 살고 있나? 
다섯째,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 특히 마음으로부터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여섯째, 인생에 억지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건 아닌가? 무언가를 꼭 남기고 싶다면 그것은 오로지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어야 한다. 후대를 거쳐 희망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고 나서는 갈수록 인생이 풍족해지고 하루하루가 달콤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드는 데 화려한 만찬이나 예쁜 꽃,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삐 걷던 발걸음을 멈춰 삶 속의 짧은 순간, 단 1분이라도 마음을 다한다면 함께하는 사람과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p113


"저도 휴대전화 보는 거 좋아해요. 하지만 적어도 이런 곳, 이런 시간에는 안 본다고요. 아름다운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깜짝 놀라 아이를 바라봤다. 철없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진지한 깨달음을 얻었을까? 사람들은 늘 인생이 덧없고 짧다고 말한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현재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진정으로 마음에 담아두는 이는 드물다. -p116


우리는 살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매료'시켜야 한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롭고, 구하는 것이 없으면 즐거워진다"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 '추구'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기에 사물에 내재된 미묘한 규율을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종종 일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매료'는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바친다는 의미에서 출발해 순리를 따르기에 모두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당신이 활짝 피어나면 나비는 절로 날아든다. 또한 당신이 뛰어나면 하늘이 먼저 당신을 찾는다.' -p122


나는 아직 젖살이 남아 있는 딸아이의 얼굴과 갖가지 색깔로 염색한 머리, 왼손 엄지 아래쪽에 새겨진 'Stay gold'라는 글자를 찬찬히 바라봤다. '지금에 집중하라. 눈앞의 아름다움을 느껴라.' ... 건강에 신경을 쓰든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든 혹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든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마음이 흐트러져 '지금'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과 아름다움을 놓치고 만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작은 일들을 누려라.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게 될 테니까." -p125


바뀐 생활이 내게 가져다준 깨달음 중 가장 큰 것은 자유의 의미였다. 일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사실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으니, 무엇을 하든 자유로울리 없었다. 자유란 사실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걸, 내가 찾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p138


딸아이가 내게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 내 생각에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건 어떤 잘못을 한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못 해보는 것 같아." -p141


나는 종종 '바꿀 수 없는 일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일은 용기 있게 바꾸자'라고 스스로를 일깨운다. 와타나베의 경우 죽음이 그에게 용기를 줬고 자신의 자리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도록 격려해줬다. 하지만 관료체제나 사회 분위기는 그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나는 때로 인생이 게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마지막 평가는 당신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 가장 멋진 게임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p144


그가 치료를 마치고 순조롭게 직장으로 돌아간 뒤 나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다섯 가지 비결을 그에게 보내줬다. 그 비결은 다음과 같은데 특히 다섯 번째 비결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스스로 병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면 있는 그대로 믿어라. 
둘째,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고 나머지는 거절하라. 
셋째,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충하라. 
넷째, 머리가 복잡할 때는 잠을 자라. 
다섯째, 안 좋은 일을 겪게 되면 '암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냐'라고 생각하라. 


나는 인생의 선택이란 사실 시간을 어떻게 나눠 쓸 것인지를 관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인생의 주요한 재산은 두 가지인데, 바로 재능과 시간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재능과 시간을 맞바꾼다. 재능이 많아질수록 시간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만약 하루가 지나 시간이 줄었는데도 재능이 조금도 늘지 않았다면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아끼려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용해야 한다. -p159


첫째, 약속은 지키되 안 되는 일에는 분명한 선긋기 - 가족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되 다른 시간은 이해를 구해 기대감을 낮추고 괜한 실망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 
둘째, 바쁜 중에도 휴식 취하기 - 일이 바쁘다고 가족을 소홀히 하지 말고 10분의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10시간보다 쓸모가 있다. 
셋째, 영리하게 일하기 - 시간을 어떻게 쪼개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가족들이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방법도 있다. 
넷째, 소중한 시간에 집중하기 - 가족들이 당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 기억하고 휴가나 주말에는 모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단순히 고개나 끄덕거리며 대충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온 신경을 집중해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실 나는 병 때문에 이런 이치를 처음 깨달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매우 나약한 존재여서 세속적인 가치인 명예와 이익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힘을 쏟아 스스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찾아내 그 초심을 지키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p163


일과 생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내 몸에 대해 불합리한 착취를 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앞으로는 결코 균형을 잃지 않고 최소한 내 몸을 소중히 다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인생 과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선에 복귀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매일 충분한 잠을 자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려 한다. -p168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매일 평균 5시간밖에 자지 못한 점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고 있는데도 거의 매일 밤마다 일어나 메일을 보내고 회사 업무를 처리한 뒤에야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고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번쩍 뜨고 시계의 숫자를 확인했으니 극기훈련이 따로 없었다. ... 예전과 완전히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한 뒤 건강을 위해 처음 한 선언은 수면제를 끊고 매일 밤 11시에 잠들어 자연스럽게 깨어날 때까지 눈을 뜨지 않겠다는 것이다. -p198


얼마 전 나는 쉽게 잠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들었다. 우선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길을 찾아보라. 이를테면 어렸을 때 학교를 오가던 길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단번에 떠오르는 길이어야 한다. 그런 뒤 눈을 감츤 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머릿속으로 산책에 나서라. 그러면 머리로 산책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뇌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잠들 수 있다. 잠을 잘 자기 위해 내가 취했던 방법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p199


첫째, 잠자기 전에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 
둘째, 일을 마치는 시간을 미리 정해놓는다. 늦은 밤에 일을 더 하는 것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셋째, 매일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을 기록한다. 
넷째,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스트레스 받기보다 편한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섯째, 수면의 질이 시간보다 훨씬 중요하므로 스스로 편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그냥 떠날까 봐 걱정도 안 되었어?" 그녀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걱정됐지.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근데 당신이 그렇게 긴장하고 힘들어하는데 나라도 꿋꿋하지 않으면 어떡해요. 우리 집이 다 무너지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아내가 그렇게 굳건하게 믿어준 덕에 내 회복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성운대사의 말처럼 긍정적 에너지는 가장 효과적인 약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축적하려면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고 항상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며 밝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 믿을 만한 긍정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몸은 오묘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회복시킨다. -p209


세상 모든 게 인생이란 놀이공원에서 고를 수 있는 놀이라면 우리는 분명 신나고 즐겁게 끝까지 놀아야 할 것이다. 내 치료와 건강 회복이 이렇게 순조로울 수 있었던 건 의료지느이 헌신적인 치료와 가족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 외에도, 타고난 낙천적 성격과 유머감각이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을 때,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유머 감각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명약이 돼줄 것이다. -p221


"앞으로는 네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으면 좋겠구나." 그날 이후 나는 종종 혜제사에 들러 아버지와 대화하곤 했다. 때로는 아버지께 내가 건강을 회복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서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기도 했다. - p234


하지만 아프고 난 뒤 깨달은 생명의 무상함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구별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지난날 내가 한 많은 일들이 '하는 척'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 나는 어머니 곁에 앉아서도,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카드 게임을 하면서도 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조급한 마음에 수시로 시간을 확인했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살폈다.  -p238


"삶의 윤회란 오묘한 거란다. 내 생각에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걱정을 잊고 계신 거야. 할머니의 마음은 퇴화되고 있는 게 아니라 정화되고 있는 거란다. 할머니는 삶의 마지막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의 여명을 향해 걸어가고 계신 거야." 정말 그렇다. 어머니는 생명의 윤회 속에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셨다. 생명의 윤회란 곧 사랑의 윤회다. 그분이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 역시 기쁨이 넘치는 아기가 된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p244


"저는 독실한 신도는 아니지만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 누군가와의 인연에도 우정이나 혈육의 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죠. 선한 행동에 반드시 선한 보답이 있듯 우리의 모든 만남에도 어떤 이치가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p246


이 세상에 우리가 함께 오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면 과연 우리가 같이 이룰 사명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을 베푸는 거라 생각한다. 그 선량한 씨앗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춰줄 테니까. 나도 언젠가 그들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많은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252


30여 년을 함께 ㅅ라아온 부부에게 얼마나 많은 자질구레한 이들이 있었겠는가. 큰딸 더닝은 이런 우리를 볼 때마다 "엄마랑 아빠는 서로를 만난 게 이번 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보다 내 행운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혹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서를 준비했을 때 내 가장 소중한 자산이 바로 아내란 걸 깨달았다. 크고 작은 풍파를 겪는 동안 '상고시대의 진인인'과 같은 순수함과 침착함을 지닌 아내가 없었더라면 그 험난한 여정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p260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가장 순수한 꿈을 꾼다고 말했다. 하지만 꿈은 외부의 공격, 이를테면 부모의 훈계(아이에게 어떤 직업이나 취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같은 것 때문에 서서히 줄어들고 결국 우리는 꿈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랜디 교수는 이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가장 순수하고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p268


나는 아이가 비로소 동굴에서 걸어 나와 자신만의 가치와 마주하게 됐다고 느꼈다. 드디어 완벽하게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 위에 새겨진 새 문신을 보다 아이를 꽉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랑한다!" ,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어제보다 많이, 내일보다 조금"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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