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규 Sep 01. 2022

나의 계절은 당신이 없는 가을밤에 머물러 있다.

에세이

  오래전, 당신이 좋아하던 가을밤에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다. 당신에게 해줄 말이 낙엽처럼 흩어진 나는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입술은 당신을 향해 있는데, 마음은 멀어져 어딘가에 남겨둔 상태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해답을 찾으려는 입술은 갈 길을 잃고 당신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나의 물음에 당신은 대답하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짧은 입맞춤을 해줬다. 처음과 다르게 씁쓸한 맛이 났다. 끝끝내 대답을 듣지 못하고 그렇게 당신은 나를 떠났다. 뒤돌아보지 않는 당신에게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내가 사랑했던 당신과의 옛 기억을 되새기는 버릇이 생겼다.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습관과 후드 집업을 자주 입었던 모습, 여름보다 가을이 좋다던 당신의 말, 문학은 보라색과 닮았다는 말도 맥주보다 소주가 좋다고 말하던 당신이 아른거린다. 지금도 나의 마음은 당신으로 가득한데, 역설적이게도 다시는 채울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당신과 함께했던 가을은 내게 마지막 계절이 되어 영원히 다른 계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 머물며 언젠가 당신이 돌아왔을 때, 처음처럼 당신을 안아줄 수 있도록 나의 계절은 당신이 없는 가을밤에 머물러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