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0자
개강이 차츰 미뤄지자, 너무도 지겨워져서 3월 초에 4월에 하려던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간 이런저런 핑곗거리로 중학교 2학년 때 이후로 10년이나 흐른 지금에야 시작하게 된 주짓수였기에 다소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첫날은 잠깐 고시원에 들어가서 짐을 풀은 터라, 지쳐서 다음 날부터 주짓수 도장에 가기로 했다.
수업이 11시 수업이라 10분 정도 빨리 도장에 갔다. 이미 다른 회원들이 있었고 처음 뵀던 분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도복이 연회색의 색이 좀 빠진 도복을 입고 있었다. 남성분이셨는데, 선인처럼 머리를 묶으시고 수염도 꽤 길어서 꼭 그렇게 보였다. 나는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라서 주뼛하게 서 있었는데 관장님이 오셔서 전에 주문했던 도복의 포장을 뜯고 주셨다. 탈의실로 들어가서 검은색 도복을 입었다. 생각보다 옷이 매우 딱딱해서 놀랐던 걸로 기억한다. 벨트 매는 방법을 회원께서 따로 알려주셔서 벨트를 매고 회원들과 약식으로 인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매트를 몇 바퀴 뛰고 간단한 몸 풀기 운동을 했다. 허리에 찬 하얀 벨트가 다소 쑥스럽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짓수는 화이트벨트에서 다음 벨트인 블루벨트까지 최소 2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과연 내가 얼마나 길게 이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같이 들었다.
어느 정도 몸이 풀어질 때쯤 회원들과 동그랗게 앉아서 관장님의 시범으로 주짓수를 기술을 배웠다. 사이드 마운트라는 기술이었다. 상체가 상대방의 다리에 들어가 있을 때, 사이드로 몸을 빼서 상대방의 몸 위에서 압박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나와 파트너로 오신 분께서는 제한 시간 내에 상세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셔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다만, 평소에도 상대방과 어떤 힘겨루기 같은 걸 하면 항상 상대방이 다치는 트라우마가 있어서 연습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파트너 분께서는 그걸 알고 내가 더욱 불안정하게 마음을 먹을수록 주짓수에서는 상대방이 다치기 쉽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최대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첫째 날은 너무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관장님과의 수업이 끝나고 각자 스파링을 하게 됐는데, 아까 처음에 말했던 선인과 스파링을 하게 됐다. 그분은 블루벨트로 최소 5년 이상하신 분인데, 주짓수에서는 블루벨트가 자주 화이트벨트를 스파링을 해주며 기술을 익히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셨다. 시작한 지 30초 만에 배를 눌렸다. 근데 하필이면 그날 과자를 너무 많이 먹고 와서 속이 더부룩했는데 배를 짓눌리니 헛구역질이 나왔다. 체력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음에도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화장실에 가서 옅은 토를 몇 번하고 왔다. 관장님께서는 나를 보더니 웃으시며 체력은 금방 길러질 거라며 다독여 주셨다. 조금 부끄럽고 억울했다.
둘째 날에는 일부러 밥을 좀 들먹고 운동을 했다. 확실히 첫째 날과 비교하면 몸이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그날 운동이 끝나고 블루벨트 분께서 다음 날부터 10시에 오면 기초기술을 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호칭적인 부분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여쭤봤더니,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약속했던, 시간에 도착을 해서 형님과 함께 기초 자세를 배웠다. 새우 빼기와 브릿지라는 기술이었다. 가장 기초가 되고 두루 쓰이는 기술이라고 했다. 새우 빼기는 내가 누워 있을 때 상대방에게서 탈출을 할 수 있게 새우처럼 자세를 웅크려서 빠져나오는 자세다. 브릿지는 다리를 허리까지 당기고 반동을 주며 그 동시에 어깨를 나오고자 하는 방향으로 틀어 빠져나오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주짓수에서는 드릴이라고 한다고 했다. 처음 했을 때는 영 어색했지만, 조금씩 할수록 부끄러움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시간 1시간이 너무도 짧게 흘러갔다.
이후에는 수업을 들으며 매일 하나하나 기술을 배웠는데, 간혹 몇 가지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연습 후에 매일 스파링을 하면서 선배 회원이 짓궂게 기술을 걸면 아는 선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것이 재밌게 느껴져서 괜찮았다. 간혹 너무 쌔게 눌려서 아프기도 하지만, 할 때마다 웃음이 나와서 매일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운동이 끝나면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기도 하지만, 왠지 그 조차 하나의 성취처럼 느껴졌다. 삶의 근본적인 부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 순간이라도 그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월요일에는 운동을 갔다 왔다.
그러나,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운동을 이틀이나 갈 수 없었다. 어제는 개강을 앞두고 학과 일이 있어서 새벽까지 일을 해야 했고, 오늘도 자고 일어나니 평소에 가던 시간대를 놓쳐서 하는 수없이 기숙사 건강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을 다녀왔다. 피를 뽑아야 해서 병원 측에서 오늘은 힘든 운동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겨우 이틀 정도를 도장에 안 갔는데, 마음 한 편이 호젓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보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포레스트 건프’다.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주인공이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아무런 잡생각이 없이 꾸준히 집중을 해서 어려웠던 시기를 벗어나 성공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그에도 내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그 영화 명대사처럼 인생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 속 초콜릿이다. 그가 성공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했던 그 모든 것은 그저 상자 속의 초콜릿의 하나였을 뿐이다.
만일 나에게도 초콜릿 상자가 하나 있다면, 이번 주짓수는 매번 쓴맛이 나는 초콜릿 사이에서 오래간만에 단맛이 나는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든 것 같다. 주짓수라는 초콜릿의 매력은 무엇일까? 단순히 상대방을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술을 통해 배움이 있는 ‘성취적인 중독성’이 강한 맛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