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묘사 연습 일기

묘사하기

by 인문규

4월 17일 (금) -묘사 일기

4월 14일 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던 와중에 내게 혹시 목요일에 조달청에 계단 설치 작업이 있는데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1시쯤에 있을 자동차 도로주행 시험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다. 아버지께서는 A와 B동 건물에 있는 계단을 올려야 하는데, B동 건물이 A동 건물에 비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부모님 두 분께서 하기에는 벅차다고 말했다. 내가 시험 때문에 망설이는 걸 눈치 채신 아버지께서는 따로 대려다 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애걸복걸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로 했다.

목요일이 되고 조금 늦게 일어난 나는 부랴부랴 준비를 해야 했다. 부모님은 나보다 빨리 준비를 끝내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따로 작업복이 없어서 군복을 대신 입었다. 아버지는 커피를 입에 물고 시동을 켜 작업장으로 차를 옮겼다.

30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공사장에서 작업할 건물의 3층에 올라갔다. 근거리에서 내가 다니던 중학교 체육관의 윤곽이 보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9년이 되었다는 게 사뭇 놀라웠다. 주변 풍경 또한 여전했다. 여전히 한산했고 시골 느낌이 가득한 적막함이 흘렀다. 곳곳에 원룸형 빌라가 들어서긴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변하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가 속해 있었던 지역이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내 주변의 것들이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대월면에 살던 집이 백사면으로 강제적으로 이사를 했을 때부터 조금씩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변할 거라고 현실적으로만 보게 되었는데,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상에 빠질 시간도 잠시, 아래 있던 지인 분께서 지게차를 빌려와서 계단을 위로 올려주었다. 3미터 정도 높이가 부족해서 다시 내려야 했다. 아버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옆에 있던 밧줄을 내렸다. 그리곤 내려가시더니 밧줄로 계단을 묶었다. 다시 올라온 아버지는 밧줄을 옥상 턱에 밧줄을 걸치시고는 지렛대 원리로 올릴 거라고 지시해주셨다. 지게차에서 다시 계단을 위로 올렸고 나와 아버지는 최대한 힘을 주어, 계단을 끌어올렸다. 거의 다 올라올 때쯤, 손잡이가 옥상에 튀어나온 벽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힘을 주며 버텨야 했다. 팔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버지도 힘겨운 지, 아래 있던 어머니를 불러 뒤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밧줄을 받치고 있던 검지가 걸려서 살이 쓸렸다. 겉껍질이 벗겨진 것 같아 따끔거리긴 했지만, 그것보다 근육이 더 아파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간신히 계단을 올리고 3명 다 기진맥진했다. B동 작업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서 나중에 하기로 하고 A동으로 갔다.

A동 건물은 2층 높이에 있었다. 다행히 지게차가 물건을 올릴 수 있는 높이라서 수월하게 옮길 수 있다. 그래도 무거운 건 매한가지였다. 이후에 작업은 어렵지는 않았으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내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아직 안전이 검증되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 게 쉽지 않았다.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오르락내리락했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 얄미웠다. 다들 집중하며 계단 가설치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12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더 하자고 말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시험장에 늦으면 안 된다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어머니께서는 밥하기 귀찮다면서 중간에 선짓국을 샀다. 집에 도착하고 나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인근에 있는 시험장으로 갔다.

가는 길목 벚꽃나무는 어느새 붉은빛이 저물고 푸른 나뭇잎으로 가득했다. 곧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벚꽃 잎이 한가득 쌓여 자전거의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렸다.

운전학원에 도착해서 문 앞에 있던 개와 손 인사를 했다. 뚱한 표정이었지만 어서 와서 나를 만지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내가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발라당 누웠다. 5분 정도 만져주고 학원에 들어가서 출석을 했다. 출석 간에 지문인식과 카드를 글어야 했다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다 싶은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시험을 같이 치를 사람은 2종 오토 여성 2명과 1종 보통인 나뿐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교관은 유격조교처럼 어딘가 유하면서도 엄격하게 실격 사유에 대해서 설명했고 1종 보통 시험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교관은 2종 시험자를 먼저 치르게 했다. 나는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밖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대기실에서 도로주행 영상을 유심히 관찰했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차가 돌아왔다. 한 명은 밝아보였고 한 명은 침울해 보였다. 당락이 눈에 훤했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 불안했다. 교관에 지시에 따라 조수석에 앉았다. 도로주행 시험 특성상 교관 1명과 시험자 2명이 타야 해서 떨어진 것 같은 한 명은 뒤에서 앉았다.

출발지에 도착하고 교관과 자리를 바꿨다. 운전석에 앉자 긴장감이 몰려왔다. 교관은 시작하자고 했고 코스는 A, B, C, D 중에 A코스였다. 시작은 자연스러웠다. 주변을 주시하면서 속도도 일정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교차로에서 잠시 멈춘 뒤 중립기어를 놓다가 출발을 할 때, 2단 기어를 넣어야 했지만, 실수로 3단 기어를 놓은 상태에서 출발을 해버렸다. 차의 시동이 꺼져버렸고 나는 다시 시동을 켰다. 70점 중에 10점이 날아가 버렸다. 이후에 상황도 연습할 때와는 다르게 반대로 흘러갔다. 늦은 출발과 기어 변동 실수, 정지선 침범, 연습 때는 잘만 되던 것들이 전부 다 흐트러졌다. 결국 중간도 못 가서 실격처리가 되었고 교관은 가는 길 내내 실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줬다. 학원으로 돌아와서 다시 재시험이 55000원을 내야 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부끄러워서 빨리 학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퇴소하고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고 집에 돌아왔다.

실소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본 아버지께서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이실직고하며 실수했던 것에 대해 얘기했다. 어머니는 아까 사 온 선짓국과 밥을 차려주셨다. 아버지는 나를 계속 놀렸다. 그래도 3번 이상 떨어진 것보다는 괜찮다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아버지와 얘기하면서 선지를 잘게 부수고 밥을 반 공기를 넣고 비볐다. 조금 뜨거운 선지에 입천장이 데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먹는 선짓국은 여전히 맛있었다. 시간을 보니, 출발했어야 할 시간보다 다소 지체되어있다. 허겁지겁 먹고 다시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 트럭에 탔다.

오후 작업은 다소 후덥지근했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아르곤 용접 열과 천장에 바로 닿는 태양 반사열에 군복은 최악이었다. 게다가 계속 옆에서 보조하면서 물건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작업에 다리에 알이 배길 것 같았다. 보조 작업이더라도 대체로 무거운 것은 다 내가 들어야 했기에 부모님보다도 더 고됐던 것 같다. 작업을 하던 중 그라인더를 사용할 때가 와서 얇은 3M 날로 바꾸라고 아버지께서 지시하셨다. 근데 아무리 뒤져봐도 날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시더니 깜빡하고 챙겨 오지 않았다고 했다. 3명 중에 아직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뿐이라 아버지는 한숨을 쉬시곤 곧바로 인근에 있는 업체에서 날을 사 오셨다. 그렇게 꼬박 2시간 정도를 계속 작업했다.

어머니께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가스가 부족한 듯 용접기에서 쉭쉭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아르곤 통에 있는 기압계를 확인해보니, 가스가 다 떨어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또다시 발을 옮겨 아르곤 통을 사 오셨다. 아버지께서 지쳐 보였기에 내가 들고 올라갔다. 덩치에 비해 가스통이 가벼웠다 5kg 정도 되는 무게에 긴장했던 것보다 가벼워서 다소 김이 빠진 기분이었다. 다시 작업을 반복했다. 어느 정도 계단의 윤곽이 뚜렷해져 뿌듯했다.

어머니는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아버지도 추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할 일이 딱히 없어서 주변에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뜩 아까 B동 할 때 깜빡하고 놓고 오지 않았던 온 계단 조립 부품인 오도리 방이 생각났다.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작업장 아래로 내려가 트럭에서 물건을 가지고 갔다. 생각보다 무게가 나갔다. 혼자 들기에 다소 버겁긴 했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B동 건물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경사가 가팔랐다. 등에 지고 한 손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서 들고 올라갔다. 내부에 에어컨이 켜져 있었지만, 오히려 덥기만 했다.

B동 옥상으로 올라온 뒤, 작업할 공간을 바라봤다. 낡고 작은 창고였다. 아까 가져다 놓은 계단도 그곳에 있었다. 나는 옆에 있던 사다리에 올라갔다. 한 손으로 잡고 올라가야 해서 발을 먼저 위로 올리면서 반동을 주면서 손을 위로 뻗어 위에 있는 사다리 턱걸이를 잡아야 했다. 다소 위험한 행동이었다. 잘못해서 떨어지는 날에는 머리에 구멍이 떨어질 것 같았다. 간신히 올라오고 난 뒤에 아까 가져다 놓은 계단 사이에 오도리 방 임시로 끼워놓았다. 다시 A동으로 가서 작업장으로 걸어갔다. A동도 얼추 작업이 끝나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건을 정리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5시가 훌쩍 넘어 6시에 퇴근하는 조달청 직원들 때문에 작업을 서둘렀다.

6시가 딱 돼서야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용접기와 기타 작업 공구를 다시 트럭에 옮겨놓고 차에 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들 긴장이 풀려 또 앓는 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2시간만 더 있었다면 B동까지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어머니도 맞장구치며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가 다음 주중으로 운전면허를 따면 운전연수를 시켜주겠다고 말하고는 가는 길 내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운전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었다. ‘이여로’라는 집 주변 도로명이 보이자 고됐던 하루가 뜻깊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기진맥진했지만, 오래간만에 입근 군복이 아쉬워 주변에 있던 논길이나 뛰어볼까 싶은 심정으로 묶여있던 개에게 산책 줄로 바꿔서 뛰었다. 500m 정도 뛰었을까 오래간만에 신은 군화가 무겁게만 느껴지고 쓸데없는 아집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뭐 하는 건가 싶어서 노을을 볼 겸 길가 끄트머리에 앉아서 개를 무릎에 앉혔다. 멀리 보이는 대신 아파트 옆 울창한 숲 사이에 동그랗게 달아오른 태양이 온전한 형태를 띠며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짙은 푸른빛이 붉은빛을 진정시키듯이 점점 짙어지고 점차 붉은빛이 옅어졌다. 그 앞에 논은 그 빛깔을 따라 색이 푸르게 옅은 막이 씌워진 것 같았다. 개는 산책 나와서 신나 했지만 내가 몇십 분이고 앉아만 있으니 심심했는지, 내 품에서 벗어나 논밭을 뛰어다녔다. 논 앞에 있는 흙더미를 파보 기도하고 풀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가 진흙이 무너져 논에 있던 물에 빠져서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몸을 파르르 떨면서 어리둥절하는 모습에 나는 마구 웃어댔다. 하늘에 붉은 기가 사라지니 조금씩 추워가 느껴졌다. 나는 젖어있는 개의 목줄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개는 아쉬운 듯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8시 무렵 어머니는 다시 남은 선짓국을 끌이셨고 누나한테도 먹으라고 말했지만 다이어트한다는 말에 장난 끼가 발동해 계속 부추겼다. 결국 실패했고 나는 밥을 빨리 먹은 뒤에 오늘에야말로 ‘한국어 어휘와 표현’ 독서 출제 어휘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로 거실에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아 미친 듯이 단어를 옮겨 적었다. 아버지는 이불을 깔고 TV를 틀어 ‘제5공화국’을 봤다. 그러다가 10시 무렵이었을까 ‘미스터 트롯’이 나오는 TV조선으로 채널을 변경했다. 나는 소리를 듣기만 하고 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제시간에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다른 곳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12시가 되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느새 잠들었다. 결국 1시가 돼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불이며 군복이며 어질러진 방 상태를 보니 더욱 지쳤다. 이번 주는 아직 다른 과제를 하나도 못하고 운전면허랑 출제 어휘만 하다 보니 1주일이 다 가버렸다. 10대 때는 시간이 안 가셔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할 일만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 건 아직 내가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3시까지 책상에 앉아서 과제를 하려고 했지만 그 자리에 누워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시 깼다. 일단은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중학교 때부터 20살 때까지 평생 친구니 우정이니 하면서 지냈던 친구들이 나왔다. 아련한 기분으로 꿈속에서 즐겁게 대화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조금 씁쓸한 기분이 적막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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