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에게-볼빨간사춘기

하루 1000자

by 인문규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다소 뻔한 말이지만 자신을 좀 더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에 나는 그맘때 나이 때처럼 우정에 깊이 빠져있었다. 거의 중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틈만 나면 외박하기 일쑤였고 밤새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거웠다. 집에 돌아가면 항상 고등어뿐인 반찬과 사업 부진에 아버지는 신경이 날카로웠고 집은 전기세를 내지 못해서 자주 전기가 끊겼다. 겨울에 전기가 끊기는 날에는 추위에 떨며 자는 일이 지겨웠다. 또 형은 일찍이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그의 아래 있던 나는 자주 핍박받았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던 나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밤새 게임하고 놀 때면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었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3형제 중에 가장 일탈이 빨랐던 것도 나였다. 고1 때 처음으로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배웠고 가끔 담배도 피워봤다. 고등학교는 내 낮은 성적과 아버지 전공 중에 하나였던 기계공학과를 진학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던 전자과를 갔어도 됐지만, 당시에 아버지 일 중에 용접 작업이 재밌어서 이왕이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성화고등학교 특성상 성격이 낮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 나름 마이웨이 성격이었던 내가 나보다 더한 놈들이 모인 곳에 있으려 기가 죽어버렸던 것 같다. 아버지 사업은 더욱 재정난에 빠져서 그 여파로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평생 살 거라 믿었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아버지 회사 뒤편에 있던 작은 간이식 집에서 지내야만 했다. 친구들과 멀어졌다는 것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심한 자괴감과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학교생활은 더욱 적응하기 힘들어졌고 박쥐처럼 매일매일을 살아갔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달갑지 않게 보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들 앞에서는 억지로 웃는 척을 했고 중학교 친구들과 만났을 땐, 내 감정 노리개로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럴수록 친구들은 멀어졌고 내 주변에는 소수의 친구들만 남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당시에 나는 이기적인 애였다.

당시에 나의 꿈은 용접사, 부사관 같은 거였다. 용접사는 돈이 되고 아버지 회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선택했었다.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 포기했고 당시에 조선업이 조금씩 쇠퇴하고 있는 터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사관은 안정적이지만 돈은 안 되더라도 아버지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선택했다. 그러나 마음 가지 않는 일에 당연히 의지가 떨어졌고 시험을 보긴 했지만 결과는 당연하게도 1차에서 떨어졌다. 언제나 말뿐인 사람이었다. 과거에 얽매여 항상 슬퍼하고 돌아갈 수 없음에도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이런 내가 못났으면 못났지 딱히 잘나지도 않았으면서 친구들의 나쁜 습관을 보면 괜히 더 뭐라 하면서 자존심만 채웠던 어린 시절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여전히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그때에 비하면 조금은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손목을 그을 용기가 없어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죽는 용기가 있다면 살 용기가 생긴다고. 그러니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좀 더 나를 사랑할 순 없겠느냐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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