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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Apr 18. 2023

아버지

내가 흐리멍덩하니깐

모든 게 뒤섞여, 형체를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

한 순간 반짝이던 것들이라고

내가 가진 행복도 두리뭉실하게 묶어 말해버려서

아름답던 의미는 색이 섞이고 쌓여 퇴색되었어.

탁하고 둔해 보여.



오늘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던 길에 어머니한테 안부차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대신 받았어.

좋은 말에는 항상 부정으로 답하는 그의 재수 없는 버릇.

그의 한 마디에 좋던 기분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어.

복수하고 싶었던 건지, 아버지가 친구네 집에 놀라간 오늘

아버지의 회사에서 기계에 개목줄을 걸어놓고 목을 졸랐어.

처음 하는 거였는데, 피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얼굴이 터져버릴 뻔했어.

누군가 봤으면 꼴이 꽤나 우스웠을 거야.

물을 가득 담은 풍선이 한계에 다 달았을 때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거든.

한 순간 머리가 아득해질 때쯤 눈물이 조금 흘러나오더라?

슬퍼서 그랬다기 보는 그냥 얼굴이 퉁퉁부어서 눈물샘이 자극됐나 봐.

몸을 다시 세워서 흘러내린 눈물을 얼굴에서 닦아낼 때, 예전에 아버지가 내가 군대에서 자해를 하다가 퇴소하게 되던 날 했던 말이 떠올랐어. 난 우리 자식이 우울증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던 말

이 우울증의 최소한 30%는 아버지 때문에 생긴 걸 모르는 것 같아.

내가 편히 몸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을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거든.

대학교에서 노숙을 하며 남몰래 과방에서 지냈을 때도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어.

아버지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어.

그게 그의 최선이니깐.

당신의 최선은 내게 언제나 최악이었어.

평생 돈에 얼매어 살던 사람이니깐,

내게 꿈 따윈 꿈꾸지 못하게 했고

부모의 정을 모르기에 자식에게 베푸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니깐,

현실을 가장한 매정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앞만 보고 살 수밖에 없던 삶이었으니,

뒤돌아보며 괴로워하는 내가 쓰레기처럼 보였겠지.

그런 모진 사람을 두둔하며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해야만 한다고 하는 어머니의 말은

날 죽도록 괴롭힌다는 걸 그들은 모를 거야.

더 이상 담아낼 수 없는 말은

그냥 마음에 덮어둬야겠어.

언젠가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를 찌를 수 있는 칼이 되겠지.

감정이란 게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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