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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Nov 15. 2022

이 계절

산문

이 계절은 미처 뱉지 못한 말이 가득해 다물지 못한 입으로 어린 상처를 쓰다듬으며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이 올 즈음에는 벌린 입가에 떠나지 못한 말을 억지로 뜯어내어 상흔이 가득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할 말을 공기 중에 떠나보내야만 하는 계절이 왔다

물안개 뜬 하천에 몸을 담그고 죄로 얼룩진 뻘겋게 튼 살을 뜯어낸다
살결은 겨울잠을 자는 물고기들에게 충분한 영양분이 되고 발가벚겨진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 채 헤엄을 친다
잔잔하던 하천에 옅은 파동이 일고 넘실 거리는 물결은
너에게 닿기를 바라는 나의 옅은 기도문의 한 문장

밤이 긴 이 계절은 아침을 눈감게 하고 어둠에 그을린 하천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게 한다
검은 얼굴은 물가에 뜬 달을 가리고 미처 가리지 못한 빛은 아쉬운 신음을 뱉는다
아침이 올 때까지 손가락을 들어 얼굴을 그려내 보자
코와 입
이마와 눈썹
눈과 귀
애써 버려야 했던 것들을 다시금 담아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 계절은 버린 것을 선물한다
버린 것들에는 미련이 가득해 뜬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다
눈을 감고 서로의 입술을 포갠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더듬어본다
이윽고, 질끈 감은 눈 너머로 과거의 형상이 그려지고
젖은 손은 얼굴을 포개며 잊고 있던 따듯함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비로소 이 계절은 내게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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