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은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안경을 잃어버렸다

하루 1000자

by 인문규


수민은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안경을 잃어버렸다.


골프공을 수거할 당시에 분명히 주머니에 잘 넣어놓은 것 같은데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알고 보니 넣어놨던 주머니에 구멍이 크게 뚫려있었다. 하는 수없이 수민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돌아다녔던 곳을 샅샅이 찾아야 했다. 수민의 0.1 시력에는 골프장의 잔디가 TV의 화이트노이즈 같아 정신이 사나웠다. 반도 돌아다니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더듬거려야 했다. 무릎에 닿은 잔디의 살얼음이 그의 무릎을 빠르게 적셨다. 조금은 치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더듬거리던 그때 누군가 그의 목을 톡 하고 건드렸다. 수민은 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하늘로 향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긴 선을 빼내며 내리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그의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른 하나는 그의 볼에 떨어졌다. 튕겨진 빗방울은 터지며 수민의 눈에 들어간다. 윽 하는 작은 신음을 내며 눈가를 비빈다. 그는 순간 라식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안경이 필요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조금씩 소리 내어 떨어진다. 수민은 점점 옷깃이 젖어가는 게 느껴져 마음이 다급해진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상황 탓을 하게 된다는데 수민이 딱 그 짝이었다. 오늘은 뭔가 일진이 안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30분이나 지각을 한 것, 대충 입고 나왔는데 하필 그 순간에 좋아하는 누나와 마주친 것, 아침밥을 못 먹은 것, 사장님께 혼난 것, 진상 손님이 많았던 것, 길 가다가 은행을 밟은 것, 출근 후 급하게 사온 에너지바를 먹다가 직원과 어깨가 부딪혀 반도 못 먹고 떨어트린 것 등 온갖 불행 소스를 때려 박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민은 점점 거세지는 비에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결국 안경은 찾지 못하고 가스난로에 앉아 멀리서 비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맞지 않는 비는 몸집을 몇 배나 불려서 떨어진다. 쇠막대기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서서히 밤이 깊어진다. 그의 곧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는 평소 같으면 즐거웠을 퇴근이 오늘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몸이 어느 정도 말라가고 조금씩 조바심이 났다. 다음날이면 더욱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조금씩 골프장에 잔디가 어둠에 덮였다. 수민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경비원에게 우산을 빌리고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그의 우산 속으로 빗방울이 주변 소리를 가득 채웠다. 수민은 휴대폰을 좌우로 흔들며 꼼꼼하게 살폈다. 신발을 일부러 질질 끌며 행여나 안경을 밟지 않도록 했다.


골프장을 절반 정도 돌아다닐 때쯤 관리 직원이 찾아왔다. 직원은 10분 뒤에 폐쇄한다고 나오라고 소리쳤다. 수민은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직원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앞이 보이지 않은 답답함과 본인의 어수룩함에 진저리가 났다. 괜히 화풀이할 곳 필요했다. 수민은 주변에 있는 골프공을 발로 찼다. 공기역학적인 골프공은 수민의 발길질에 부드럽게 튕겨졌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긴 곳으로 가서 일부러 더 몸을 적셨다. 몸을 거세게 움직일수록 추위와 함께 열이 올랐다. 왠지 모를 해방감과 흥분이 느껴졌다. 직원은 그런 수민을 보고 욕을 해댔다. 수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도 분명 이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비 오는 날 친구네 집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나와서 한참을 뛰어놀았었다. 빗소리의 청량함이 온몸에 스며들고 소리는 경쾌하게 운동장에 퍼져갔었다. 다음 날이면 반드시 감기에 걸리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친구들과 같이 걸려서 그게 그저 마냥 좋았다. 함께 배를 탄 선원 같기도 하고 우정의 표시 같은 것 같았다.


수민은 결국 안경을 찾지 못했다. 대신에 감기에 걸려 며칠간 알바를 쉬어야 했다. 사장님은 너그럽게도 경고를 주고 오래간만에 푹 쉬다 오라고 말했다. 수민은 이불속에서 그간의 자신의 노예 정신에 감사했다. 생각해보니 1년간 휴일도 없이 일했었다. 수민은 창가를 바라본다. 창가에는 어제에 이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앞은 흐릿해 조금 불편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수민은 휴대폰으로 새로운 안경테를 고르고 있다. 이왕 잃어버린 거 좋은 걸로 살 생각에 조금 들떠있었다. 수민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가가 유자차를 건네주었다. 그리곤 뒤통수를 한 대 때리셨다. 수민은 그마저도 감사했다. 김이 공기를 따라 피어오른다. 안경을 끼지 않는 눈가에 김이 닿아 따듯했다. 수민은 유자차를 살짝 마셔본다. 유자차는 끝이 조금 쌉쌀했지만 달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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