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동생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구찌에 입생로랑에 온갖 명품으로 치장된 그와 체육복만 입고 있는 나는 어째서인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대화가 잘됐다. 나는 평소처럼 절주를 했고 그는 연거푸 마셔 됐다. 술자리가 길어짐에 따라 점차 할 얘기가 떨어지자 서로의 과거를 꺼냈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보여줬다. 8개 정도 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의 차림새와는 다르게 삶은 지독히도 불행한 모양이었다. 그의 손목을 보고 나서 내 손목을 봤다. 무력하게 긋지도 못하고 바라봤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이 멀끔한 내 손목이 너무도 한심해 보였다. 내게는 왜 저런 용기가 없을까.
엄마가 다녔던 예전 회사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그 여성은 죽기 전 숨이 남아 있을 때, 살려달라는 말을 계속 외쳤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동네 두 불량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나서 차사고 난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차사고가 난 직후 그들이 길바닥에 나뒹굴어 있었던 모습을 봤었다. 한 남자아이는 머리에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고 노란색의 투명한 액체가 그의 귀인지 머리인지 얼굴에 범벅되어 흘러내렸다. 그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그저 도망치듯 앞으로 걸었다. 그래서 그 남자아이가 살았구나 싶어서 그냥 지나쳐 갔다. 주변에 목격자도 많아서 누군가 도와주겠거니 싶었다. 내게는 그저 처음으로 사고를 본 신기한 목격담 중 하나였다. 다음 날 SNS에 그를 추모하는 글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학교에서 흔히 일진이라고 불리던 친구들은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않고 그의 장례식을 도우러 갔다고 했다.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사는 것은 어려워도 죽는 건 쉽구나 싶었다.
내가 동경하는 학교 선배가 있다. 학교를 늦게 들어오시기는 했지만, 그의 리더쉽과 추진력은 무력한 나를 가끔이나마 힘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사람이다. 그와 한 공모전을 준비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문뜩 그가 왜 학교를 늦게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내가 조심스레 관심을 보이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과거사를 얘기해줬다. 정확한 내용은 차마 글로 담을 수 없지만, 뉴스와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불행에 관련한 이야기가 모두 그 선배에게 있었다. 처음엔 마치 놀라는 건가 싶었지만, 그의 담담한 어투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의 놀랍도록 불후한 과거사를 듣고 있자니, 과거의 내 불행도 현재진행형인 내 불행도 그에 비하면 티끌처럼 느껴졌다. 내 그 작은 불행에 힘겨워했던 내 지난 순간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다.
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데, 삶은 행복보다는 불행과 더욱 많은 걸까. 태어남에도 선택지가 있더라면 사람들은 태어나기를 바랄까.
손목을 긋고 1시간 이내면 죽는다고 한다. 목을 매어도 30분 이내로 죽고 투신을 해도 곧바로 죽지 않고 10분까지는 온몸의 세포가 살아있다고 한다. 죽어도 죽지 못하고 그 고통이 온전히 살아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기숙사에는 창문은 일부러 15도 밖에 열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아마도 자살방지 창문이겠거니 싶다. 내가 생각한 용도로 보기에는 다이소에서 5000원이면 살 수 있는 십자드라이버 하나면 충분히 문을 뜯어낼 수 있어 보인다.
10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옳은 걸까 막연한 앞을 보고 견디는 사람이 옳은 걸까...
최근 내 한계와 무력감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아직 심리검사를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불안 증세가 심해진 것은 확실하다. 석 달간 책 한 권을 온전히 완독 하지도 못할 정도로 집중력은 현저히 낮아졌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많아지고 조심스러워졌다. 엘리베이터 타거나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심장이 옥죄이는 느낌 든다. 누군가에게 계속 연락을 해야만 마음이 안정이 되고 죽도록 허전한 기분이 든다. 하루 종일 이 불안과 싸우고 있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잠들기 전 매일 한 시간 씩 기숙사 창문을 바라보다가 잠에 든다. 7층 높이라면 엄마가 말해줬던 그 여성보다 즉사할 확률이 더 높긴 하지만, 차마 그 10분이 무서워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지금까지 많은 무력감과 자살충동에 몇 번을 옥상에 오르거나 손목을 그으려고 했었지만 그 짧은 고통이 두려워서 여태껏 살고 있다.
행복하고 싶은데, 한계에만 계속 부딪히니 너무도 외롭고 지친다.
최근 몇 개월 간 학교 강의와 알바, 졸업작품 등으로 시간에 쫓겨 살고 있어요. 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안에서 겪는 많은 시행착오와 한계, 낯설음 등이 저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다시 조금씩 글을 써볼까 합니다. 좋은 글은 아님에도 즐겨봐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