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무렵, 처음으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차기 학회장이었던 그녀는 눈이 유독 예뻤다. 작은 키와 소심한 성격과는 다르게 소신이 뚜렷해서 그 모습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영어도 잘하고 팝을 좋아해서 플레이리스트에는 노래에 일가견이 있던 나도 잘 모르는 해외 음악이 가득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비유로 단어를 표현하는 순수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학회장으로서의 마지막 행사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증세까지 생겨서 지쳐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낮은 자존심과 희미해져 가는 감정에 나를 사랑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문자를 하고 가끔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좋아하는 것만으로 만족했었다. 어느 날 새벽에 그녀가 나에게 고백을 해줬고 밤늦게까지 서로가 언제 좋아했었는지 무엇이 사랑해서 했던 행동이었는지 말했다. 그렇게 첫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사귀는 건가 하며 긴가민가 했지만 다음 날 학교에서 얼굴을 보자 기분이 좋았다. 내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불안증세도 차츰 사라졌었다. 첫 데이트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수원에서 술을 마셨다. 이전에 대화를 하며 자기는 술을 잘 마신다며 호언장담하길래 얼마나 마시나 지켜봤다. 그냥 술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나중에는 취해서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닌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두 병을 다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책상에 팔을 걸치며 마시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걱정스러웠다. 집으로 가는 수원역 계단에서 자꾸만 넘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해서 웃겼다. 핸드폰 잠금 비번을 자꾸 틀려서 핸드폰은 잠기고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여린 친구라는 걸 알았다. 겉으로만 강한 척하는 게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집으로 돌려보내 주고 나도 정신을 붙잡으며 버스를 탔다. 몇 년 만에 주량을 넘기며 마신 터라 도착할 정류장을 한 칸 남겨놓고 창문을 열고 구토를 해버렸다. 늦은 밤이라 다행히 주변에 차가 없었다. 죽을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었다. 너무 추한 꼴 보인 것 같다고 지금이라도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질 수 있다고 너무 부끄럽고 할 말이 없다고 울먹이며 그런 말을 계속했다. 왜 헤어져야 하는지도 몰랐고 내 눈에는 귀여운 추태여서 그럴 수 있다고 다음날 보자고 다음에는 소주 3잔 이상 마시지 말라고 당부만 하고 학교로 갔다. 기숙사로 갔는지 과방으로 가서 잤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1주 정도 뒤에는 그녀와 아파트 계단에서 첫 키스를 했다. 아이폰을 끼고 나플라의 <러브미>와 모브닝의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나를 눈물짓게 할 테니까>를 들었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처음이 아니었던 그녀가 더 떨려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키스를 하던 차에 내가 방금을 방귀로 들어서 긴장감은 풀렸지만,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눴다. 부드럽고 귤껍질 같은 그녀의 입술 감촉이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집에 가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는데, 머리를 구석에 기대며 쑥스러워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집으로 보내주고 1층으로 내려와서 미친 듯이 뛰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들이 현실로 일어나서 너무나 신기하고 부끄럽고 고맙고 마음이 방방 뛰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만나게 되었다.
주로 데이트를 하면 수원, 용인이나 학교 안에 있는 학과 과실에서 데이트를 했다. 졸업작품전 때문에 자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그 얘의 통금시간이 너무 짧아서 멀리 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대신에 좀 멀긴 해도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주말에도 상대 부모님이 허락해야만 나갈 수 있어서 최대한 내가 그녀의 집 근처로 가서 만났다. 자주 볼 수 없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얼른 취업해서 작지만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 한 번도 커플링를 맞춘 적이 없다고 해서 돈을 벌면 좋은 커플링을 해주고 싶었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와 만나는 동안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주기로 했다. 또한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 봐, 만났던 장소와 가고 싶다고 했던 것들, 비밀을 모두 기록하고 남겼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처음으로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날에는 그녀의 품에 안겨서 심장소리를 들었다. 작게 울리는 소리가 너무나 좋았다. 안락하고 포근했다. 나와 다르게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과 적당히 따스한 온도, 머리에 닿는 그녀의 숨소리까지 모든 게 사랑을 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라 좋았다. 그날, 잊고 있었던 부사관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직장이라도 안정이 된다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더 안전하게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큰형도 첫 여자 친구와 몇 년간 잘 지내고 있고 당연히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졸업작품전이 끝난 11월 11일 이후에 나는 빈 시간을 그녀에게 쏟으며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 했다. 그러나 자꾸만 비틀린 감정에 그녀를 울렸다. 일을 하는 게 유일한 취미였던 터라 학과 일이 뜸해진 직후로는 전화를 하면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일상의 얘기를 해주면 추임새를 넣어주고 들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재미없는 나를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해줬다. 그것도 잠시의 행복이었다. 26일 이후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가 더욱 심해지며 비대면으로 수업이 변경되었다. 그쪽 부모님께서 코로나와 밀접한 일을 하시는 터라, 평소보다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 나는 끝나가던 학회장에 목을 매었다. 평생을 목줄을 달고 살던 개가 한순간 풀렸을 때, 자기가 살던 영역을 벗어나질 못하는 것처럼 쓸 때 없이 인수인계를 핑계로 바쁜 척했다. 차기 학회장이었던 그녀에게는 별 같잖은 잔소리를 해대며 그녀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 무렵 그녀에게 그녀만 아는 친구가 모습을 자꾸 나타났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나타나는 그 친구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고 했다. 처음 그 친구 얘기를 해줬을 때, 나와 만나는 동안에는 나타나질 않았으면 싶었다. 그런데도 변하가는 내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1월이 되고부터는 부사관 준비하면서 더욱 그녀를 소홀히 했다. 언젠가는 조금은 귀찮게 느껴졌다. 매일 반복하던 자고 있냐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과 취미를 공유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전화나 영상통화를 하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일과 병행하며 할 수 있어서 그렇게 연락하자고 얘기했고 자주 헤어짐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네가 힘들다면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괜히 미안해지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로 인해 그녀는 몰래 울고 그런 밤에는 그 친구가 나를 대신해서 위로했다. 어쩌다 기회가 되어 데이트를 할 때는 이상하게도 귀찮게만 느껴지던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면 미련스럽게도 마음에 비어버린 것처럼 눈가가 공허하기만 했다. 그녀와 헤어지기 1주일 전부터는 벌려놓은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번아웃이 심해져서 그저 방탄하게 그녀가 제일 싫어하던 게임을 미친 듯이 했다. 밤낮이 바뀌어버렸고 연락을 더욱 자주 할 수 없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월이었다.
내 생일이라 그녀는 부모님께 사정을 해서 간신히 나온 거였다. 꼬박 4주 만에 만난 거였는데 둘 다 늦잠을 자서 간신히 밥을 먹고 마감 시간에 맞춰 사진전을 갔다.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카페에 들렸다. 그녀가 내게 선물을 건넸다. 없는 돈을 모아서 산 옷 두 벌과 소중한 기록일지를 선물해줬다. 집 가는 길에 보라며 신신당부했다. 헤어지기 전에 아쉬움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지만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지 않냐며 끝까지 나를 배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기록일지를 보면서 웃었다. 방탄했던 며칠 동안 소홀히 했음에도 만나면서 서로 웃었고 즐거웠다. 아직은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주 볼 수 없어서 약간의 권태기가 왔었구나 생각했다.
4일 뒤인 2월 9일 무렵 나는 여전히 번아웃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평소에 하는 평범한 안부 인사가 없었다. 나는 무심하게도 늦게까지 자고 있나 싶었다. 잠깐 6시였을까 11시에 통화하자고 남기고 11시가 되자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평소처럼 받았고 울었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직감적으로 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이든 해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녀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대화가 뚝뚝 끊겼다. 무서웠다. 결국에는 헤어지기를 바라는지 물었다가 아니면 며칠만 시간을 가지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며칠이나 라고 했다. 그 기간을 기다리는 것도 그녀에게는 사치였을 거였다. 차마 통화를 끊지 못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면서 헤어지면 안 되겠냐고 붙잡았다. 그녀는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만나게 되면 너무 울 것 같아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우습게도 먼저 마음이 식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담담한 척하면서 괜찮다고 했다. 공허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녀는 나와 통화하며 나와 있었던 모든 것을 지웠다. SNS에서도 지웠고 공유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녀는 오늘 헤어지기 전에 계속 울었다고 했다. 하도 울어서 평소에 그녀에게 모진 말을 자주 하던 어머니도 안아주면서 위로해줬다고 했다. 헤어지고 나면 더 울지 않겠냐고 물었다. 더 울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가 너무 슬프면서도 미안했다. 그 친구가 옆에 있냐는 말에는 아까부터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 친구에게 질투가 났고 고마웠다. 또 그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싶기도 했다. 그 친구가 나온다는 건 결국엔 그녀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게 2시간을 질질 끌다가 결국 그녀가 전화를 끊어줬다. 현실로 다가오질 않았다.
다음 날 일상처럼 일어났냐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도 오지 않았다. 사진 속 모습은 그대로라서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크게 슬픈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담담하게 밥을 먹으며 그녀와 헤어졌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내 무난한 모습이 부모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주말 알바를 갔는데, 틈틈이 연락을 주는 그녀가 없음에 덜컥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제야 그녀가 없음이 실감이 났다. 행복하지 않았고 무서웠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서웠다. 알바가 끝나고 잠이 오질 않아서 새벽까지 노래를 듣고 있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흐르지 않아서 감정이 메말라버렸거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이 숨이 막혀왔다. 다시금 불안증세가 생겼다.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어서 자해라도 해야 할지 아니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이불을 계속 붙잡고 울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슬펐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누군가 날 안아줬으면 싶었고 내 일상을 알아줬으면 싶었다. 사랑스럽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처음 알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었던 그녀는 내가 다시 시작하면 안 되냐고 말하자,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담담하게 위로해줬다. 나보다 사랑 앞에서는 더욱 성숙했다. 새벽에 전화를 받아줘서 고맙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무서웠다. 드라마의 헤어진 커플처럼 밥 먹다가 울컥하고 바보처럼 멍하니 울다가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너무 울다가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자는 부모님 방에 들어가서 잠들었다. 보름이 돼서야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대신 불쑥불쑥 헤어졌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어떻게 서든 잊고 싶어서 그녀가 가고 싶다던 인천의 카페에도 갔다. 밤늦게 돌아와서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감이 오질 않아서 짜증 섞인 문자를 남겼다. 미련이 없다는 그녀의 답장에 나도 완전히 잊으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월이 지날 무렵에는 살이 7kg 정도 빠졌다. 원래 없던 살에 근육까지 다 빠져버려서 볼품이 없었다. 그녀가 선물한 옷도 원망스러워서 버리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영원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다.
자신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로 일단은 부사관 준비를 했다. 의미부여의 할 상대가 사라졌음에도 일단은 계속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3월에는 계획대로 국비지원을 받아서 강남에 있는 사진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처럼 뒤늦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글과 사진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보다 키가 크고 좀 더 미인상인 사람이었다. 행동과 표현하는 단어와 이목구비가 헤어진 그녀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녀가 그리워서 다가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이 무너진 상태로 누군가를 잘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좋아하던 책을 선물해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는 정도에서 나름의 선을 지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의 1시간 동안에는 그녀와 함께 듣던 노래를 들었다. 노래 속에서 추억이 떠오르고 자꾸만 내가 못해줬던 것들이 생각이 나서 미안하기만 했다. 헤어짐의 이유를 되새기기도 했다. 전철에서 내리고 자차로 갈아타서 길가의 벽에 들이박아 죽고 싶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살았다.
4월쯤에는 교수님 추천으로 학원 근처에 출판사에 다닐 수 있었다. 인턴이었지만 2시까지 근무하고 4시에 있는 학원을 다닐 수 있게 배려해줬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좀 버겁긴 했지만, 모든 게 잘 풀리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대책 없이 싼 여행가방처럼 쓸모없는 짓거리만 하고 있는 거라고 자책했다. 사진학원에서 화보 촬영을 연습할 때면 주변에서 잘생겼다고 칭찬을 해주면 그걸 또 비꼬아서 듣고 있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하고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느 날 밤에는 한 번도 꿈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그녀가 꿈에서 나와서 나와 평범하게 대화하고 데이트를 했다. 품에 안겨서 숨소리도 들었다. 너무나 행복했지만, 꿈속에서도 꿈이라는 걸 알아서 너무나 깨고 싶지 않았다. 1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에는 집에 있던 노견이 죽었다. 사인은 알 수 없었지만, 며칠 전부터 눈이 조금씩 감겼다. 출근할 때 마당에 있는 개한테 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나오질 않아서 자고 있나 싶었다. 한참 일하고 있다가 아버지께서 개가 죽었다고 문자가 왔었다. 집에 돌아오니, 개가 없었다. 가출해서 나중에는 들어올 것처럼 집과 목줄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때부터 습관적으로 개가 있었던 마당을 보고 있다.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개도 떠나가니,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는 게 너무나 싫었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다 떠나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뜩 그녀의 친구가 생각이 났다.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를 지켜봐 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싶었다. 그게 그녀를 닮았으면 싶었다. 제발 환영이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5월 무렵에는 그녀의 얼굴이 거의 생각이 안 났다. 눈이 예뻤고 그걸 좋아했던 것만 기억이 났다. 지친 감정만 남아서 계속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아무 말이나 계속 지껄였다. 텅 빈 말이 많아지자 가족들은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도 계속 떠들었다. 나 힘들다고 제발 좀 봐달라고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6월이 되었다. 5일에 행보관님 자녀분 결혼식을 다녀오고 전시장을 갔다가 지친 몸으로 집에 왔다. 대문에 차키를 꽂으면서 왜 안 되지 하고 성질 나서 문을 벌컥거렸다. 문뜩 차키인 걸 알고 가볍게 문을 열었다. 집안에서 나를 보고 당황해 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제는 진짜 지칠 대로 지쳤구나. 그녀 때문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일단은 대부분의 일정이 6월 말까지라서 참아보려 했다.
금요일 새벽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4개월이나 지나서 전화를 했다. 자고 있어서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내가 아니야 라고 하고 끊으려고 하니깐, 아냐하고 싶은 말해 라고 말을 하는데, 그 순간마저 안정감이 오고 불안증세도 사라졌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라고 말하자, 오래간만에 한 통화에서 그녀는 그때처럼 평범하게 자신의 일상을 모두 말해줬다. 근근이 내 생각이 났다는 말과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까지. 그녀가 나에게 해주는 말에서 나에 대한 사랑이 정말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질투심보다는 전화를 받아주고 말을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헤어지던 날처럼 쓸 때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가다가 시간이 꽤 흘러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조금 후련한 감정이 들었다. 밤을 새웠지만, 오전 약속이 있어서 바로 준비하고 나갔다.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도 마지막까지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 주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그녀가 지금도 너무나 보고 싶다. 이제는 다른 사랑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무나 지쳐있어서 차마 이 글을 쓰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렸다. 기억력도 자꾸 떨어지고 아직 상처도 미련도 사랑도 아물지 않아서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 같아 두려웠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을 때 내 글이 좋았다고 글을 꾸준히 써달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적었다. 이 글을 쓰면서 너무 힘들어 처음으로 칼로 손에 상처를 냈다. 바보 같이 깊게 긋기에는 두려워서 피가 살짝 맺혔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걸 알면서도 한 것이 미련스럽다. 그럼에도 그덕에 그녀와 있었던 모든 것을 적어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