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에세이

by 인문규

단어와 단어 속에 있었던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나의 사랑은 잔잔하게 그의 빈 마음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전 이제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요. 공허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그는 벌써 나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행복해보입니다. 사랑은 이렇듯 한 사람의 자리 만큼 비어버립니다. 7시53분이 되자, 도로의 빛이 환해지고 차들이 지나갑니다. 저는 이제 유령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령이 된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스쳐지나갑니다. 저는 도로 한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아침이 오면 다시 사람이 되겠지만, 아직은 유령입니다. 유령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유령을 사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다른 유령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어젯밤에는 손을 잡았습니다. 어깨를 쓰다듬었습니다. 서로의 옷을 벗기고 사랑을 나눴습니다. 이 사랑의 끝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합니다. 곧 해가 뜰 겁니다. 사랑을 나누고 옆에서 잠을 자던 유령은 사라지고 홀로 사람이 된 나는 유령을 기다리며 하루를 버텨냅니다. 언제쯤 아침이 올까요? 그가 그립습니다. 밤 사이 나를 안아주던 그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