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오늘 하루 잘 산 나에게 박수

by 소소한빛

아이 등원 성공. 남편 도시락 실패.

설거지 미룸. 빨래는 반쯤 개고 방치.

하루 미션 점수: 57점. 그런데 기분은 80점.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오늘 하루 살아낸 것도, 대단한 거야.”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고? 나한테.

누구보다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나 자신에게.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쏟아지는 생각들.

"오늘은 이걸 꼭 해야 돼."

"애들 간식 떨어졌어."

"퇴근 전에 이것도 처리해야 해."

"밥은 또 뭐하지…"

"근데 나도 좀 쉬고 싶은데?"


그렇게 머릿속은 하루 종일 회의 중이고

감정은 반나절쯤 지났을 때 이미 초과 근무 상태.

그런데 내가 아직도 웃고 있다?

그럼 진짜 잘하고 있는 거지.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근데 어른이 되고 나니,

진짜 어른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더라.


오늘도 계획했던 일의 반도 못 했다.

아니, 반은커녕 한 세 가지 하려다 하나 건졌나?

그런데도 괜찮다.

아이랑 눈 마주치며 웃었고,

따뜻한 밥 한 끼 먹었고,

잠깐이지만 햇빛도 맞았다.

그럼 된 거지, 뭐.


요즘 행복해지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나이 들수록 더 간단해진다.

기대치 낮추기, 순간 즐기기, 비교 멈추기.


기대치를 낮추면 세상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오늘 내가 커피 한 잔 마셨다고 ‘성공한 하루’라 느낄 수 있는 건,

기대치가 아주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밥 챙기고, 직장에서 대충 버티고,

집에 돌아와 라면 한 그릇 끓여 먹고 드러눕는 날에도

"와… 나 대단하다."라고 말해준다.

그게 진짜 회복이야.

순간을 즐기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아이랑 소파에 누워 같이 공룡책 보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바쁜 나인데도

그 순간엔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오직 '엄마'로만 존재할 수 있어서 좋다.

설거지 미뤄도, 세탁기 안 돌려도,

그 시간에 아이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이미 성공이야.


비교는 마음을 녹슬게 만든다.

인스타 속 누군가는 오늘도 한강 보이는 카페에서 원고를 쓰고 있고,

누군가는 애 셋 키우며 퇴근 후 학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낮잠 10분 자고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남이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살기로 했다.

그 사람들의 삶은 그들만의 속도고,

나는 나대로 나의 리듬으로 걷는 중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요즘 왜 이렇게 재미없지?”

“왜 나는 멋진 게 없지?”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그럴 때마다

하루를 천천히 되짚어보면

별거 없지만 예쁜 것들이 쌓여 있다.

아이의 웃음, 오늘의 햇살, 커피 향,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나를 놓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


지금도 나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머리 속으로 ‘내일의 할 일’을 목록처럼 쓰고 있다.

하지만 그걸 다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 글을 마치며

오늘 하루 살아낸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짜 잘했어, 나야.

완벽하진 않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고

내가 나를 버리지도 않았어.

그럼 된 거야.”


태어난 김에,

오늘 하루 잘 살아낸 나를

진심으로 안아준다.

그게 요즘 내가 배우는 행복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태어난 김에, 커피는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