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에 눈을 떴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잘 써야 한다는 압박도 없이
그냥, 오늘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요즘 나는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롭게 ‘즐겨도 되는 사람’임을 믿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잘될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잘돼야만 한다고,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의미가 있다고,
삶이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말이 나를 더 조이기 시작했다.
잘돼야 한다는 그 강박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내가 나를 점점 더 채근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잘 안 돼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오히려 잘 안 되었기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소중한 아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삶이 꺾였던 자리에서
하나님은 더 깊고 넓은 길로 이끌어 주셨다.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
– 이사야 55장 8절
그 말씀처럼, 나는 늘 ‘이 길이 옳겠지’ 했지만
하나님은 더 멀리, 더 높이 보는 길로 이끌어 주셨다.
그 순간부터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무조건 잘돼야 한다는 강박,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비교,
더 나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압박.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잘 안 돼도, 더 잘되려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 한결 유연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조급해졌을 상황에서도
숨을 고르며 생각하게 된다.
“혹시 지금 이 시간이, 더 좋은 것을 위한 준비일 수도 있어.”
삶을 자유롭게 즐기기 시작한 건
무언가 대단한 일이 생겨서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게 되면서부터였다.
예를 들면,
아침에 갓 구운 식빵 냄새를 맡으며 커피를 내리는 시간.
아이들과 함께 비누방울을 불며 해맑게 웃는 순간.
저녁에 혼자 음악을 들으며 목욕을 하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자유’**였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와 비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그 시간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주신 자유 안에 머물라.”
– 갈라디아서 5장 1절
믿음 안에서의 자유는
내 멋대로 살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시니
조금 더 편안히, 느리게, 흘러가듯 살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삶이야말로
더 오래가고,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는 삶이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
“오늘도 잘 살아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고,
즐겨도 괜찮아.”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과 공원에서 바람을 쐬며 걷고
좋아하는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하나 사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먹었다.
그 순간이 오늘 하루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게 자유구나. 이게 기쁨이구나.’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고,
더 빨리 성공하라고 말하고,
더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장 28절
이제는 그 쉼 안에 머물고 싶다.
그 사랑 안에서 자유롭고 싶다.
오늘도 나는,
하루를 충분히 살아내며
그 속에서 조용한 기쁨을 누리는 법을 배운다.
잘될 거야, 라는 강박 대신
잘 안 돼도 괜찮아, 라는 자유.
그 자유 안에서 나는 비로소 인생을
천천히, 나답게,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