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나는 직업을 선택할 때, 딱 두 가지를 떠올렸다.
"내가 잘하는 일"이거나, "돈이 되는 일".
그리고 마흔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
그 두 가지에 “하루하루가 괜찮은 삶”이라는 기준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건 어쩌면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었다.
“재능은 있지만, 재미는 없는 일”
나는 꽤 오랫동안 ‘잘한다’는 이유로 어떤 일을 해왔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말을 또렷하게 잘 한다고 했고,
기획을 잘 한다는 말에, 기획서와 보고서를 밤새 쓰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일은 무난히 해냈고, 상사도 좋아했지만
매일 아침이 무겁고, 금요일이 되면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진 않는구나."
“재미는 있는데, 재능은 없는 일”
반대로, 나는 쓰는 걸 좋아했다.
글을 쓰면 마음이 정돈됐고,
작은 문장을 고치는 데 몇 시간을 쏟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잘 쓴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은 그저 조용히 블로그 어딘가에 묻혀 있었고,
돈이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글쓰기’는 늘 내 삶의 바깥쪽에만 머물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돌아오는 곳은 결국 ‘글쓰기’였다.
재미와 재능 사이의 균형점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직업을 선택할 때 ‘재능’과 ‘재미’는 둘 다 중요하지만,
둘 중 하나를 굳이 먼저 선택해야 한다면
"재미"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왜냐하면,
재능은 시간이 지나면서 닳기도 하고,
늘 평가받고 지쳐가는 날이 오지만
재미는 ‘스스로에게 다시 불을 붙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재능은 남이 알아주는 것이지만,
재미는 내가 나를 알아보는 일이다.
나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
내가 이 일을 좋아했던 순간은 언제였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한 경험이 언제였지?
그 일이 돈이 되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을까?
그 일을 하며 나는 나 자신을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까?
이런 질문을 반복하면서
나는 점점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
'삶이 되는 일'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직업이 삶을 침범하지 않게
직업은 삶을 위한 수단이지,
내 존재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직업이 ‘나’를 삼켜버리지 않게,
나는 오늘도 적당한 거리에서
재미를 품고, 재능을 가꾸며,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애쓰는 연습을 한다.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 선택 기준은 이것이다.
“그 일이 나를 죽이지 않고, 살리는 일인가?”
세상은 여전히 스펙과 연봉을 말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 일로 인해, 당신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나요?”
재능은 쓸수록 자라고,
재미는 나를 지탱하는 연료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통해
직업이라는 이름의 삶을 조금씩 완성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