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한성(6)] 백제 '소프트파워' 그 오래된 미래

by whiteshore
백제의 초고왕이 매우 기뻐하며 후하게 대접했다. 오색채견(五色綵絹) 각 한필과 각궁전(角弓箭), 철정주 40매를 이파이에게 선물했다. 게다가 다시 보물 창고를 열어서 각종 진귀한 보물들을 보여줬다. -<일본서기>

경당지구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또 하나의 공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풍납 백제 문화공원’입니다. 전체 규모는 경당지구의 족히 2배가량 됩니다. 공원 옆에는 800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요. 놀이터도 하나 있어, 얼핏 보면 아파트에 딸린 공원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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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백제문화공원 앞 표지석(좌).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그릇받침(우)을 본 딴 모습이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촬영.


공원 지금은 사라진 풍납토성의 서성벽과 닿아 있습니다. 서성벽은 한강을 따라 축조됐지만 강의 잦은 범람으로 유실됐고, 지금은 그 앞으로 레미콘 공장과 함께 한강변을 따라 올림픽대로가 펼쳐져 있지요.


이곳은 예전 단독주택으로 구성된 ‘미래마을’이 있어, 미래지구로 부르기도 합니다. 역시 재개발을 추진하던 중 시굴 조사에서 백제문화층이 다수 발견된 사례입니다. 그것도 ‘백제 도시계획’을 추정할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많은 유구가 나왔죠.


3472594408761055824.jfif 공원 내에서는 백제 초기의 수혈 주거지의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들어서니 일반적인 공원과는 다른 풍경이 바로 눈에 띕니다. 우선 공원 바닥에 원이나 직사각형 형태의 다양한 도형이 곳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백제인의 집터들입니다. 현재는 발굴을 끝낸 후 바닥돌로 집의 경계만 표시해 두었습니다. 일부는 화덕이나 기둥 등 내부 구조가 있던 곳도 페인트로 그려뒀습니다. 남은 흔적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다수의 집터는 내부가 바닥 아래로 파인 수혈 주거지였습니다. 겨울철 난방을 위해 전반적으로 집의 입구가 길쭉한 것이 특징입니다.


3472594408759973456.jfif '백제 살림집'. 한성 백제 당시 수혈주거지를 복원한 것이다.


공원 내 유구에서 발견된 집터를 실제 복원해 놓은 ‘백제 살림집’도 있습니다. 외부는 점토, 내부는 목재를 조립해 만든 백제식 초가집입니다. 뒤에는 고층 아파트, 앞에는 싸리나무로 만든 담과 함께 백제의 집이 솟아 있어 얼핏 시공을 초월한 느낌도 듭니다.


내부를 보니 수혈 주거지답게 집 바닥은 표면보다 1m 아래에 있습니다. 중앙에는 1자 모양의 긴 부뚜막이 있는데 난방과 취사를 모두 해결하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미래지구에서는 집터보다 더욱 중요한 유적이 1400년 만에 땅 밑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모두 경당지구와 함께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성이었음을 알려주는 유구들입니다.


3472594408764951888.jfif 공원 내부에는 창고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 2동의 흔적도 나왔다.


우선 초석을 올려 건설한 2동의 대형 창고 터가 나왔습니다. 각각 정면이 8칸과 7칸, 측면은 4칸인 대규모의 전각들입니다. 건물에 다수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는 고급 기와를 올린 화려한 건축물이었을 것입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 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제 왕실의 ‘국영 창고’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백제의 창고 건물은 건물 바닥이 지면과 떨어져 있는 고상식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외형적으로 유사한 건물이 일본에 남아있고, 심지어 지금까지 창고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3472594408310496080.jfif 고상식 창고의 복원 사례.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는 흔했던 방식이다. 충남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에서 촬영.


일본 도다이지(동대사)라는 절에는 쇼소인(정창원)이라는 일본 황실의 창고가 있습니다. 73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일본 황실이 직접 관리합니다. 덕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삼국시대의 유물도 많이 있고, 지금도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죠.


미래지구에서는 더욱 놀라운 발견도 있었습니다. 2006년 미래지구에서는 동서와 남북을 잇는 백제 때 포장도로 2곳이 일부나마 확인됐거든요. 지금은 유구 위에 잔자갈을 깔아 도로가 있던 곳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미래지구에서 발견된 ‘백제 도로’는 한반도 최초의 ‘포장도로’입니다. 고구려나 신라의 것보다 앞선 것입니다.


도로는 땅을 얕게 파고 최대 폭 5m, 두께는 20㎝로 자갈을 도로 한복판에 봉긋이 깔았습니다. 도로에는 별도 배수시설의 흔적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3472594408756163664.jfif 백제 때 포장도로가 발견된 지역. 한강의 물자가 백제 왕성 안으로 쉴 새 없이 이동했을 것이다.


십자형의 해당 도로는 성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연결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술했듯 이 지역은 과거 백제 때 한강변을 맞댄 서성벽이 있던 곳입니다. 한강에서 오고 가는 막대한 물자가 바로 서성벽의 문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3472594408888424016.jfif 한강에서 바라본 토성. 강변에 접한 서성벽 일부가 성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데 내성벽이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촬영.


실제 백제 도로 바로 옆에는 내성벽이 있던 곳이 표시돼 있는데, 서문을 통해 들어오는 물자와 인력을 통제한 검문소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472594408753234768.jfif 풍납토성 내성벽의 흔적. 바로 앞 도로 뒤편이 한강변이다.


한강을 통해 지방과 외국에서 올라온 공물과 진상품들은 곧 수레에 실려, 이곳의 포장도로를 통해 바로 백제의 국영 창고로 옮겨졌을 것입니다.


풍납토성 발굴 지역은 전체 면적의 10%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포장도로와 왕실 창고, 제의시설이 좁은 지역에서 잇달아 발굴됐다는 것은 이곳이 국가의 행정 기능을 갖춘 수도였음을 명백히 방증하는 것이죠.

아울러 백제가 지방을 통제하고 있었으며 수취 제도를 갖췄다는 것, 그리고 고도화된 관료 집단과 율령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시사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472594408765100112.jfif 백제 왕실의 고상식 창고. 이곳에서 백제 문화는 동아시아로 뻗어 나갔다.


고도화된 사회와 문화적 역량, 그리고 부를 토대로 백제는 이제 한반도를 벗어나 대륙과 열도 등 동아시아 세계에 직접 뛰어들기로 합니다.


일본서기에는 백제 13대 근초고왕이 364년 왜의 사신들에게 창고 안의 진귀한 물품을 보여주며 백제의 부강함을 과시하고, 이들을 우방으로 포섭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 백제는 창고에서 5색 비단, 쇠뿔로 만든 활, 철 덩어리 40매 등을 왜 사신에 선물로 주고, 창고 안의 각종 진귀한 물품도 보여줬다고 하지요. 백제가 보여준 물품은 당시 왜에 있어서는 매우 귀한 물건들이었고, 이때부터 백제와 왜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트게 됩니다.


근초고왕이 보여줬다는 왕실 창고는 어쩌면 바로 이곳의 창고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백제 ‘세일즈 외교’의 최전선이었을 것입니다.


1300년 전 지어진 일본 황실의 고상식 창고는 여전히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매해 도다이지를 찾는 방문객들은 한국인들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시원이었을 1500년 전 백제 왕실의 고상식 창고는 포클레인에 흙가루가 되기 직전에야 흔적만 겨우 남겼습니다. 진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 경쟁의 언어로 가득해졌습니다.


경계는 높아지고, 블록은 공고해집니다. 이 시대의 외교는 설득이 아니라 마케팅에 가깝고, 관계는 신뢰보다 효율로 재단됩니다.


국가와 도시, 그리고 개인까지, 모두가 자신을 어떻게 더 높이,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시대지요.


그런 면에서 백제는 이미 1500년을 미리 앞서간 나라입니다. 풍납토성의 국영 창고는 단순한 저장고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백제의 기술과 미학, 가치를 동아시아 세계에 제시한 전시장이었습니다.


백제인들은 자신이 가진 문화를 통해 타인을 설득하고, 존중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가치의 공유를 실현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국가 브랜드' 외교의 핵심과도 유사합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 세계를 향해 상품이 아닌 문화와 품격을 거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풍납토성의 창고는 무너졌지만, 그 사유의 토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미래지구는 단순한 과거의 유적이 아닌,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미래의 감각이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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