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동안 쌓아왔던 이야기들, 입에 담아뒀던 말들을 술술 풀어갔다. 꼬여 있는 이어폰 줄이 웬일로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 있다 보니, 부드럽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그의 말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되려 진심 어린 맞장구가 여러 번 튀어나왔다.
내 주변에서 그처럼 열심히 삶을 사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항상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뒤따라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며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해보고 나니, 나와 다를 것 없는 수만 가지 고민을 가지고 있는, 같은 또래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아 보였다. 우리는 자신이 겪었던 갖가지 경험들을 공유했다. 그의 말을 들을 때는 뭔가 자연스레 공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의 말속에서 나에게 모자란 부분이 보이기도 했고, 그 모자란 부분에 대한 해답이 자연스레 보이기도 했다.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이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영역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관계, 성격, 상황, 시기 같은 요소들에 의해 상대방과의 대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정해지곤 했는데, 이후로도 같은 사람을 만날 때면, 거의 같은 분위기를 가진 대화를 하게 됐다. 가벼운 대화는 계속 가벼웠고, 진솔한 대화 상대는 꾸준히 진솔했다. 아마도 이건, 상대방이 나를 다시 찾아줄 때, 저번과 비슷한 대화 분위기를 기대할 것 같아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편협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대화의 벽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과의 대화 분위기를 바꾸기가 더 쉽지 않았고, 때문에 내면적으로 생산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태, 굳이 대화 분위기를 바꿔야 할 필요도 없었고, 한결같은 대화 분위기가 싫은 건 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과 다른 대화 분위기를 가지는 것이 어색했을 뿐이지. 실제로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든 대부분의 대화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나를 이끌곤 했으니까.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아마도 나는 오랜만에 나누게 된 생산적인 대화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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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fons Morales, @alfonsmc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