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려고 했으나, 살아남기 바빴다.

by 혁꾸

최근 며칠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새해의 첫 월요일, 신입사원의 자신감 넘치는 출근길의 발걸음을 시작으로 인턴 교육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회의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건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다. 수업 중간, 강사님께서는 벽에 붙어 있는 교육 스케줄을 확인하라고 하셨다. 교육생들은 옹기종기 벽보 앞에 붙어 스케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늘 배우게 될 종목들을 확인하고, 내일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헙? 내일 출근 직후에는 종목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 공부한 내용을 내일 아침 시험 보겠다는 말이었다. 공부쯤이야 뭐, 내가 공부를 좋아하진 않지만 앞으로 당당해질 내 모습을 위해서라면 공부 스트레스 따위는 쉽게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5일간의 불지옥이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9시부터 18시까지 진행되는 강의 속에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회사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이었다. 점심을 먹기 전 약 2시간의 교육이 끝났을 무렵, 내 책상 위에는 이미 충분한 양의 스트레스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벽보에 붙어있는 스케줄 표에는 아직 서너 가지의 배워야 할 종목들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강의가 끝나는 대망의 18시, 내 책상 위엔, 내일 아침에 시험 보기에는 꽤 많은 양의 종목들이 쌓여 있었다. 선택적인 21시까지의 자율학습시간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이대로 집에 가면, 아마 공부에는 손도 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공부에 열정을 불태워 뜨거워진 저녁 9시, 퇴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강추위가 아주 살인적이다. 하지만 상쾌하다. 하루 종일 펜과 종이의 씁한 냄새를 맡았던 나에게는 아주 차갑고도 신선한 바람이었다. 공부량이 많이 모자랐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나는 유인물을 펼쳐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내용들을 눈에 담았다. 집에 와서는 역시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며, 육체적 노동은 하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일한 내 뇌와 손의 노고를 칭찬하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밤새 나를 괴롭히는 시험의 압박에 나는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잘 듯 말 듯 하게 얕은 꿈을 오가다 보니, 어느새 울리는 야속한 알람에 나는 일어나야만 했다.


평일 아침, 지하철역 플랫폼을 꽉 채운 출근 대열을 따라 나도 걷기 시작했다. 마약을 해보진 않았지만, 마치 마약을 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눈은 침침하고, 눈두덩은 무거웠다. 하지만 출근길에도 물론 유인물을 놓지는 않았다. 멍한 정신이 나의 정신이 시험 점수에 커다란 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카페인이 가득 들어있는 음료를 들이켰다. 그나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출근 직후, 나는 바로 시험을 만나야 했다. 긴장 때문인지, 카페인 때문인지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다. 뭐, 열심히 시험을 끝냈지만, 후련해 할 시간이란 건 없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나는 다시 다음 종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매일 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시간은 나에게 도저히 글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나에게 허락한 건, 중고등학교 때도 잘 하지 못했던, “공부” 뿐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빼곡한 정보들이 담겨 있는 종잇장을 만지작거리며 긴 밤을 지새우길 반복했다. 하지만 왠지 이런 상황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 배우는 것들이 재미있게 다가왔고, 새로운 삶이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나의 열정이 느껴졌다. 웃기게도, 공부에 밤을 지새우는 내가 왠지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험이 끝난 오늘. 취직 후 맞이한 첫 불타는 금요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려 있던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내 눈꺼풀은 반쯤 감겨 억지로 눈에 힘을 주어 치켜뜨고 있어야 했지만, 며칠간 쓰지 못한 글을 하나라도 적어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노트북 앞으로 이끌었다.


잠도 줄이며 열심히 공부하기는 했지만 시험 점수가 잘 나온 건 아니었다. 에구, 숫자로 된 결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이라던데.


그래서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나에게 후련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못했지만, 열심히 했다!’ 라고.



이미지 출처

[ Aaron Burden, @aaronbur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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