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삶에 욕심이라곤 없이 살아온 나였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뭐 하나 부족하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평범한 삶에도 만족하며, 언젠가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나아가고 있었다.
며칠 전, 회사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캄캄한 하늘에서 하얀 솜사탕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함박 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겨우내 기다렸던 작은 꿈이기도 했다. 밤이 늦어갔지만, 거리는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것 또한 오랜만에 보게 된 정겨운 겨울의 모습들이었다. 함박눈이 내려주지 않았더라면 허연 입김을 뿜어 대며, 새빨개진 손이 아픈지도 모르고,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창 신나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 밭에서,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잎사귀에 쌓인 소복한 눈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여느 때보다 느린 발걸음을 걸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차갑고도 혹독한 현실을 마주했다. 집의 수도관에 문제가 생겼는지, 방 천장에서 물이 주르륵 떨어지고 있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게, 물이 떨어지는 곳은 하필 침대 위였다. “설마”하고 침대에 손을 갖다 댔지만, 역시 침대는 축축하게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의도치 않게 물침대가 생긴 샘이었다. 당연히, 집에는 물도 나오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 데 물을 쓰지 못한다니, 씻지도 못하고 기름으로 떡진 머리를 한 채로 회사에 나가게 되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화장실도, 설거지도, 빨래도, 보일러마저 켤 수 없었던 우리는 그나마 들어오는 전기에 작은 난로를 켜고 전기장판을 깔아 수도가 고쳐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수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수리기사는 수도 문제를 쉽게 고칠 수 없을 것 같다며, 전체적으로 공사를 해야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내일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 우리 가족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즉시 어머니는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부랴부랴 부동산으로 달려가셨고, 우리는 생활 필수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잠시 있게 된 거처는 어느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오자마자 세면대로 달려가 물을 틀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듣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에 덧없는 행복함을 느꼈다. 방바닥이 따뜻하다는 것이, 시끄럽기만 했던 세탁기 소리가, 귀찮았던 설거지를 하는 것이 전부 행복하기만 했다.
16층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의 창문으로는 몇십년을 살던 동네의 모습이 훤하게 보였다. 여태 살았던 남의 집이 보이는 반지하의 작은 창문으로는 볼 수 없던, 느낄 수 없던 기분이었다. 나는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쁜지 처음 알게 되었다. 16층에서는 멀리 있는 잠실의 월드타워도 보였다. 강 건너 동네도 훤히 보였다. 특히 야경이 예뻤다. 아파트의 불빛이, 상가의 불빛이, 거리의 불빛이 어두운 창문 밖에 가득 반짝이고 있었다. 그냥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찼다.
방에서 보이는 예쁜 야경을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마음속에 없는 줄 알았던 욕심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태 편하게 자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아무렴 좋다고 생각했는데. 풍요로움이 가져다주는 주거의 맛을 알아버렸다. 창밖으로 이렇게 넓고 예쁜 작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에 막혀 있던 답답했던 마음이 뚫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몰래 쌓아왔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풍요로움이 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풍요로움이 행복함을 증진시켜주는 건 아무래도 맞는 말이 확실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루하루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것이겠지. 풍요로움의 맛을 조금 알게 된 나는, 아마 그 맛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왠지 욕심쟁이가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