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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Feb 21. 2021

바람이 살랑거릴 때, 우리는 페달을 밟았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파릇파릇해지는 새싹처럼 솟아나는 날씨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기 시작했다. 여름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국토종주의 출발을 응원했다. 200m 정도 출발했을까? 갑자기 준구가 출발 사진을 안 찍었단다. 우리는 다시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갔다. 진이 빠지거나, 흐름이 끊긴 건 아니었다. 아니, 되려 기분이 좋았다. 출발하며 느꼈던 새로운 바람의 기운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으니까. 거꾸로 돌아가 출발 사진을 촬영한 뒤에, 우리는 정말로 국토종주를 시작했다. 출발이라고 하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잠실대교는 지나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런 것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늦은 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일도 기대되는 일들 중 하나였으니까.


 우리는 아라뱃길을 향해 달렸다. 출발과 동시에 보이는 작은 갈대밭이 보였다. 갈대밭은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라고 말하는 듯이 살랑거렸다. 높이 솟아있는 풍력발전소 뒤로는 파란 하늘이 높게 떠있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앞만 보기에는 강동구 안에만 갇혀 살아 보지 못했던 넓은 세상의 모습들이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라이딩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무렵 앞에 가던 준구의 자전거에서 무언가 바닥으로 떨여졌다. 어느 정도 뒤에 있었던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떨어진 물건을 확인했다. 내 선글라스였다. 하하, 궁핍했음에도 멋 한번 부려보겠다며 구매했던 선글라스였는데, 바닥에서 주워 올린 선글라스에는 왼쪽 눈이 없었다. 무엇보다 시작과 동시에 햇빛을 가려 줄 선글라스가 사라지다니. 살짝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짜증을 부리는 건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야, 다른 건 안 떨어지게 조심해라."라는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꾹꾹 눌러 담은 말을 건넨 뒤에, 다시 페달을 밟았다. 하하, 선글라스가 뭐라고 없으면 그만이지. 어차피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의 아름다운, 여러 가지 색조들을 온전히 내 눈에 담지 못한다. 사실 짐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짐이나 마찬가지였겠지... 그렇겠지...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아 우리는 아라뱃길에 들어섰다. 주위는 온통 자전거 투성이었다. 누워서 타는 자전거, 애완견들이 같이 타고 있는 자전거, 아이들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으며, 유모차를 끌고 가는 자전거도 있었다. 한 여름 사람들은 가지 각색 원하는 대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라뱃길에 들어서자마자 동생의 자전거에서 뭔가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떨어진 물건을 줍기 위해 자전거를 멈춰야만 했다. 짜증이 갑작스레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 떨어진 것은 셀카봉이었다. 게다가 자전거 길에는 자전거들이 쌩쌩 달리고 있어서 멈추기가 위험했다. 준구는 약간 무안하다는 듯이 "이게, 왜 떨어지지?" 하며 하하 웃었다. 아오ㅋㅋㅋ 진짜 적당히 해야지 말이야. 그래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물건들을 잘 동여맬 것을 권했다. 왜 떨어지나 동생의 자전거를 확인하니, 아주 딱 떨어지기 좋게 물건들을 자전거에 묶어두고 있었다. ㅡㅡ,,, 에휴, 셀카봉을 단단하게 묶고 자전거 가방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난 뒤에야, 우리는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시작이 고난한 것을 보니, 앞으로 있을 라이딩이 잘 풀리겠지 싶다. 오늘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우리는 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달리기 위해 열심히 페달질을 시작했다. 참 아름다운 아라뱃길이었다. 한강에 진입하기 전 보았던 커다란 폭포가 참 예뻤는데, 그게 어디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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