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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Feb 24. 2021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 뒤에는 아버지가 계셨다.

잡아준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어째서 점점 멀어지고 계셨다.

 사실 한강이야 뭐, 손쉽게 가로지를 수 있을... 줄 알았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아주 가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곤 했으니까. 무난하게 이어진 평지에, 한강의 흐름에 맞춰 넘실거리는 기분, 라이딩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있어주니 자전거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리저리 눈을 굴려대기 바빴다. 늦게 출발한 우리는 해가 지기 전 최대한 많이 가기 위해 분주하게 페달을 밟았다.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다리를 움직이며, "띠리링 띠리링~ 지나가겠습니다~!" 하고 소리친 뒤에, 조심스레 앞사람을 추월했다. 그냥 달리는 것보다 이리저리 앞사람을 피해 가며 달리는 게 더 재밌었다. 뭔가 '내가 더 빠르다'라는 웃기지도 않은 허세가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세상에는 신기한 사람도 많았다. 서울을 가로지르며 제일 신기했던 건, 외발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을 만났을 때였다. 어릴 적 TV를 보면, 가끔 외발자전거를 타고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나올 때가 있었다. 그저 묘기용인 줄 알았던 외발자전거가 내 눈 앞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반 외발자전거와는 달리 굉장히 커다란 바퀴를 달고 있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저 자전거에 올라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커다란 바퀴였다. 신기하긴 했지만 타보라고 해도 타고 싶지는 않을 것만 같다.



 여의도에 도착할 때쯤, 풍경이 점점 바뀌는 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허벅지를 불태우기 위해 페달을 힘차게 밟아대는 라이더들이 많이 보였다면, 여의도에 가까워질수록 따릉이를 타고 하하호호 웃음 짓는 커플들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 한강공원의 잔디 밭은 돗자리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연인들은 서로의 팔과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파란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뜻하지만 해로운 자외선을 즐기고 있었다. 여의도가 이렇게 행복한 곳이었구나. 오늘 여의도에서는 온갖 몰려있는 회사의 업무에 찌들어 지쳐있는 사람들의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신에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음 짓는 커플들의 풋풋하고 달달한 향기가 났다. 하, 부럽다. 왠지 모르게 앞에서 달리며, 흐르는 땀에 등을 적시고 있는 준구의 땀냄새가 짙어지는 듯싶기도 했다.


 아이들을 두 명이나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크... 역시 아버지란 그런 것입니까. 소중한 휴일에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해 주시고, 바깥 생활 부족으로 비타민D가 결여될까 염려하여 아이들이 따스한 햇살을 머금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동시에 아이들 두 명과 유모차의 중량을 추가하여 허벅지를 단련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감명 깊었다. 아이들과 아내, 어느 한쪽도 놓치지 않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존경스러웠다. 아마 그는 분명 헬창이 확실했다.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우리는 잠실을 지나쳤다. 점심을 너무 빈약하게 먹은 탓일까. 허벅지가 저릿저릿하고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약간의 오르막이라도 있을 때면, 허벅지는 나에게 비명을 질러댔다. 피부 속에 갇혀있는 대퇴사두근은 피부를 두드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한 광나루가 코 앞이었다. 10분, 10분만 참으면 근처에 자전거를 던져두고 밥을 먹으러 갈 테였다. 나는 준구가 탄 자전거의 뒷바퀴만 바라본 채 페달을 밟았다. 


 10분 뒤 우리는 광나루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서울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한 자전거를 위해 어디 잔디밭에 그냥 눕혀버리려고 했지만, 행여 이름 모를 중학생들이 자전거를 괴롭힐까 싶어 식당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는 천호에 계시는 아버지가 생각나, 아버지와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암사동의 어느 삼겹살집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께 동생과 함께 국토종주를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형제끼리 우애 깊고 좋다만, 함께 떠났다가 함께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하셨다. 하하 아이참, 아버지 무슨 그런 불길한 걱정을 하세요. 잘 다녀와서 지금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참, 하하. 평소 같았으면 아버지와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며 밤새 웃고 떠들었겠지만, 우리는 허겁지겁 삼겹살을 입에 꾸겨 넣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밥상이 깔끔해져 있었다. 미친 듯이 먹어서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가 밥 두 공기에 된장찌개, 삼겹살에 목살 몇 인분을 해치웠다고 하셨다. 아마 너무 맛있어서 정신을 잃어버린 듯싶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옛날 옛적 아버지가 걸어서 국토종주를 하신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를 추억하시며 이야기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아련하고, 멋있었다. 20대 때 몇 주일을 돈 한 푼 없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 올라오셨다고 하셨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정말로, 아버지는 여행하셨던 길을 모두 알고 계셨다. 우리도 어느새 성인이 되어서 국토종주를 하겠다고 집 밖으로 튀어 나가는 걸 보니 그래도 아버지를 닮긴 닮았구나 싶다. 그때 아버지가 그리워하시던 남해안의 어느 해변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가다가 이름을 까먹어서 그러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떠나기 전 아버지는 굶지 말고 힘들면 연락하라고 말씀하시며, 내 주머니에 오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찔러주셨다. 이상했다. 주머니에 있는 얇은 종잇장들이, 방금 먹은 삼겹살보다 나를 더 든든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최고...


 하, 확실히 든든하게 에너지를 충전하니 힘이 더 생기고 기분이 상쾌하게 들떴다. 오늘은 야간 라이딩을 무조건 해야 했다. 근처에서 자기에는 택도 없는 키로수였다. 오늘 우리는 적어도 양평에는 도착해야 했다. 


자, 가자 양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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