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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Feb 26. 2021

아이유 고개

3단 고음? 아니, 3단 오르막

"형, 아이유 고개 타봤어? 아이유 고개 몰라?"

"아이유 고개가 뭔데"

"점점 심해지는 오르막이 3단이라서 아이유 3단 고개래"

"ㅋㅋㅋㅋㅋ 뭐래"

나는 그 말을 후회하고 말았다.


천호동 근처에 사는 나는, 항상 자전거를 타면 여의도로 달렸다. 달리면서 보이는 한강이 좋고, 사람들이 좋고, 편하게 깔려 있는 길이 좋았다. 팔당으로 가는 길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유 3단 고개라는 이름 있는 오르막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나는 알지도, 비록 알았더라도 도전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광나루 한강공원에서 하남시로 향하는 갈대가 살랑이는 자전거길을 지난 직후, 준구가 말하던 아이유 3단 고개가 눈 앞에 보였다. 평소에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던 준구가 말했다.


"형 한큐에 가능하지?"

"가자!"


솔직히 말하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 경사였다. 언덕의 중턱에는 작은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애들도 하는 걸, 지금 한창 젊음을 달리는 내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한 나는 힘차게 페달을 짓눌렀다. 


 처음은 어렵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아이유의 좋은 날을 열창하다 3단 고음에 진입할 때도, 1단계 고음은 어렵지 않게 소화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2단계와 3단계 고음이었지. 열심히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허벅지가 두배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오르막의 시작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느껴지던 허벅지 근육의 움직임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중간? 아니 두 번째 오르막의 30% 정도까지 올랐을 때, 네 갈래로 갈라져 있던 허벅지 근육은 한껏 부풀어 하나가 되어버렸다. 마치 허벅지가 하나의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나는 페달을 밟고 있었다. 오늘이 첫날인데, 이제 시작인데, 벌써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자전거 일명 "끌바"를 한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혼잣말을 하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너 뭐야, 겨우 이 정도야? 겨우 이 정도였어 너? 여기서 내리면 끝이야 그냥, 국토종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고 "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어렸을 때부터 튼실한 허벅지를 자랑하던 준구는 저만치 앞서서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었다.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얼마나 더 갔을까. 이번에는 허벅지가 점점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마비? 마취? 마약? 아니, 그건 아이유 고개의 오르막 3단계의 시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잣말도 중얼거리지 못했다. 산소를 들이마시며 에너지를 생성해야 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단어는 두 가지뿐이었다. "허억...." 그리고 "꺼억..." 오르막 3단계의 30% 정도를 오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혁구야, 앞으로 있을 나머지 4일도 생각해야지... 이미 너는 한계야, 너의 얇은 허벅지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잘한 거야, 이미 알배기는 건 확정이지만 더 심해지면 앞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을지도 몰라, 이제 그만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올라가. 너와 너의 내일을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이야. 국토종주를 잘 끝마치는 것만 생각해"


 나는 합리적인 판단하에 자전거에서 내렸다. 아주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국토종주를 안전하게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아이유 고개와 타협한 부분도 컷을 것이라고.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자전거에 몸을 기댄 채로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라갔다.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는 헬멧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 나는, 고생했다며 물을 마시라는 준구의 한마디에, 고개를 들고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아이유 삼단 고개, 3단으로 지르는 허벅지의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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