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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Feb 27. 2021

검은 강속에는, 아름다운 야경이 반짝인다.

 국토종주에서 가장 무서웠던 시간은, 밤을 달리는 시간이었다. 한창 사전조사를 할 때도, 이른 아침 라이딩을 시작하여 해가 지기 전에 라이딩을 끝내라는 말을 무수히 많이 들었지만, 젊음이라는 뜨거움에 타올랐으며, 무지함에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출발이 늦어진 첫날, 우리는 당연히 야간 라이딩을 해야 했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들어서면서 눈 깜짝할 새 태양은 사라졌고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태양 빛에 뜨거웠던 땅이 식었고, 차가운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차니 정신이 반짝이고 가슴이 트였다. 페달을 밟는 게 힘들지가 않다.


 팔당으로 향하는 도로에도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이 이어졌다. 한강의 야경은 언제 봐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특히 조명이 켜진 한강 다리와 불빛이 켜진 빌딩이 모습들이 잔잔한 강에 비출 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끔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스피커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휴대폰으로 노래를 틀고 볼륨을 가득 채운채로 자전거길을 달렸다. 서울을 벗어나니 금방 한적한 도로를 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민폐는 아니었다. 준구와 불빛이 비추는 한강 감성에 빠져 함께 오래전 즐겨 들었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적한 거리에서 우리는 감성에 취해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열창했다. 사람도 없겠다. 바람소리에 묻히는 목소리에 우리는 창피함도 잊어버렸다. 앞에서 점점 누군가 보이기 시작하면 창피함에 목소리를 낮춰 노래를 숨겼다. 그리고 앞 지르는 순간 다시 열창은 시작됐다. 눈 앞에만 아무도 없다면... 창피함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래를 열창하면서 달리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 외로 기분 좋은 야간 라이딩 었다. 가로등이 길을 비췄고, 부드럽게 포장된 자전거길을 따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남시의 어느 공원에 다다랐을 때는, 반가운 사람들의 인적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는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리는 팔당 댐에 다다랐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우고 고개를 내밀어 팔당댐을 구경했다. 무섭게 쏟아지는 댐의 폭포에 한강은 하얗게 거품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기 빠지면 살 수 있겠냐?"

"ㄴㄴ 뒤질 듯"

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검은 강에서는 시원함과 공포가 공존했다.


 팔당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능내역이라는 폐역이 있다. 절대로 빠트리고 갈 수 없는 필수코스다.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게 국토종주 수첩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체크포인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아마 체크포인트가 아니었어도 자전거를 멈춰 세웠을 것이었다. 불 꺼진 능내역의 감성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누구도 지나칠 수 없으리라. 우리는 늦은 시간임에도 자전거를 세우고 역을 서성이며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늦었지만 즐길건 즐기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우리가 이런 거 즐기러 왔지, 죽도록 자전거만 타러 온 건 아니니까. 인생 샷 좀 건지겠다며 철길에 누워 온갖 포즈를 잡았다. ㅋㅋㅋ하지만 사진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게 된 나는, 곧 아까운 배터리 소비를 그만두고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기로 했다.



 능내역을 떠나 달리다 보니 도로 옆으로 반짝이는 건물들이 보였다. 카페였다. 카페 이름을 보니 "아, 여기가 거기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양주시의 유명한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다. 여자 친구와 남양주시로 드라이브를 할 때면, 자주 오가던 곳이었다. 너무 아쉽지만 카페까지 들어갈 여유는 없었다 ㅋㅋㅋ.. 얼른 페달을 밟아야지.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댔다. 야간 라이딩은 어째서인지 힘들지는 않았지만, 얼른 도착해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양평까지 가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 하기는 남은 거리가 너무 애매했다. 몇 개의 자전거도로 터널을 지나고, 경의 중앙선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왠지 전철 소리가 좋다. 왠지 극장판 짱구에서 아련한 과거를 회상하면, 시골의 노을 지는 잔잔한 분위기의 언덕 위로, 조용한 전철이 "투둥 투둥" 하는 편안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ㅋㅋ 아무튼


 그 뒤로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 양평군립미술관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실제로는 꽤 오랜 시간 자전거를 밟았다. 거의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도착했으니까 말이다. 느끼진 못했지만 몸도 많이 지쳐있었다. 특히 가랑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준구가 말했다.

"앞으로는 좀 빨리 일어나서 출발해야겠다. 야간 라이딩하면 안 될 것 같아"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밤 9시가 돼서야 도착한 양평에서 숙소 찾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쉴 시간도 많이 없이 씻고 빨래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에서 조금씩 멀어져 경기권의 외곽을 달렸을 때는, 길을 비추는 가로등도 점점 사라져 갔다. 아마 앞으로 야간 라이딩을 한다면 우리는 어둠을 달려야만 할게 분명했다.


양평 어느 번화가에서 작은 모텔, 아주머니는 우리의 자전거를 흔쾌히 창고에 보관하게 해 주셨다. 간단히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고 우리는 방에 들어와 빨래를 널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뜨끈하게 몸을 지져준 뒤 나와 잘 준비를 마치고, 풍성한 머리숱을 유지하기 위해 두피에 탈모약을 도포하려 했다.


"야 준구야, 탈모약 좀"

"받아라~"


집을 출발하기 전에, 간단하게 탈모약을 도포하기 위해 탈모약을 작은 칙칙이 병에 담아놨다. 나는 두피 구석구석에 탈모약을 뿌렸다. 왠지 평소와 다르게 두피가 시원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싶다. 그런데 몇 초가 더 흐르자 온 두피가 따갑기 시작했다. 


"어; 야야, 이거 탈모약 맞냐? 너무 따가운데?"

"어..? 형 그거 모기약이야..!"


아주 나를 대머리로 만드려고 작정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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