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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01. 2021

일단, 놀고 갈게요.

 비가 부슬부슬 휘날리는 아침이었다. 젖은 땅에는 가라앉은 먼지 냄새가 났다. 우리는 나오자마자 시원한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셨다. 비가 와서 쌀쌀한 아침 가랑비에 몸을 적시지 않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서 우비를 샀다. 출발하기 전, 아침을 먹기 위해 양평의 어느 시장에 들렀다. 오전 9시 무렵, 많은 시장 상가 중에 외롭게 문을 열고 있는 백반집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별 고민 없이 메뉴를 골랐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이 정도면 완전히 한국인이 아닌가 싶다.


  완전한 삼단 뚝배기 한식의 향연이었다. 이 메뉴에 공깃밥을 한 그릇만 먹는 것은 한국인의 법도에 어긋나기에, 우리는 부리나케 공깃밥 두 그릇씩을 비웠다. 그리고 마지막은 콜라의 청량함을 입안 가득 채우는 것으로 아침 식사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본격적인 남한강 자전거길의 시작이었다. 몸을 적시는 비에 조금 쌀쌀한 듯싶었으나, 30분 정도를 내리 달리기 시작하니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햇볕도 없겠다, 뜨거운 몸을 식혀주는 비도 부슬부슬 날리고 있겠다. 라이딩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고여있는 흙탕물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위를 밟고 지나갈 때면, 신발과 다리는 흙탕물에 축축이 젖고 말았다.


 20년을 넘게 한국에 살았지만, 온통 처음 보는 길을 달렸다. 산책길을 달리고, 남한강이 보이는 차도를 달리고, 이름 모를 언덕을 올랐다. 국토종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오르막이 3개뿐인 줄만 알았다. 이화령, 소조령, 매협재 등 이름 있는 오르막을 오르는 것만 걱정하다 보니, 간간히 나타나는 이름 모를 오르막에 자꾸만 혼쭐이 났다.


  낮이 되어 해가 중천에 자리하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도 내리지 않았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우비는 우리를 더 후끈후끈하게 만들었다. 잠시 멈춰 우비를 벗어던지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여름철의 뙤약볕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았다. 아, 너무 더워서 물 웅덩이만 있으면 바로 뛰어들겠다고 생각하던 우리는 어느 공원을 지날 무렵, 낡은 다리 밑을 흐르는 한 수로를 발견했다. 



 수로 앞에 서보니, 탁한 물 때분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약간의 두려움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살짝 몸만 담가보기로 했다. 조심스레, 수로에 몸을 던졌지만 발이 닿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 몸을 담근다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ㅋㅋ. 도저히 수영은 안될 것 같아 서로를 잡아주며 물에 몸만 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30분을 채 가지 않아 우리는 섬강에 도착했다. 이미 다리 아래는 많은 사람들이 캠핑과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ㅋㅋㅋ조금만 참을 걸. 섬강을 내려가는 길은 아주 경사가 심했지만, 그런 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이유로 잠깐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달려야 했지만, 여기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늘도 우리의 야간 라이딩은 확정이구나 싶다. 우리는 시원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서로에게 정신없이 물을 뿌리다 지쳐 강에서 나왔을 때는, 어느새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놀기 힘든 게 물놀이라고 하던데, 백번 맞는 말이었다. 물에서 나온 우리는 지쳐서 피곤함을 느꼈다. 강에서 나와 햇볕에 따뜻하게 구워진 자갈 위에 몸을 뉘었다. 헬멧을 베고 있으니 뜨끈함에 잠이 솔솔 쏟아졌다. 오늘 라이딩은 여기까지 할까 ㅋㅋ. 시간을 보니 거의 한 시간이 지체되어 있었다. 아마 놀지 않고 부지런히 갔으면 비내섬쯤 도착했을까?. 하지만 후회는 없다. 까짓꺼, 밤에 타면 되지 뭐!


 우리는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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