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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06. 2021

한우, 韓牛

 늦은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내섬을 막 지나치기 시작했다. 넓은 공도로 된 언덕길을 넘어가니 한우촌이라고 쓰여있는 마을 입구의 커다란 비석이 보였다. "오, 한우촌." 마침 전날 저녁 아버지께서 주신 용돈이 생각났다. 아껴 쓰면 세끼의 식사 정도는 챙길 수 있는 여윳돈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너무 긴 고민은 식사시간만 늦출 뿐이었다. 마을로 들어가 한우를 저렴하게 팔고 있는 농협으로 향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아니면 고기 보관 때문이지는 모르겠으나 농협 안은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서늘함이 가득 차 있었다. 

"오와~"



고기는 먹을 줄 밖에 몰랐던 우리는 최상급이라는 직원 아주머니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되어 겹겹이 쌓여 잇는 빨간색 소고기의 기름진 하얀색의 마블링을 보니 알 수 없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ㅋㅋ뭔지도 모르면서 ㅋㅋㅋㅋ


한우촌에서 한우를 사면 농협밖에 즐비해 있는 식당에서 상차림비를 내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잔뜩 신이 난 우리는 자전거를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게 꽁꽁 묶어두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준구는 소고기 굽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평소에 소고기를 잘 먹지 않아서라고 했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슴이 찡했다. 도대체 소고기가 뭐길래, 소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지. 사실 돈이 없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소고기를 입에 댈 일 이 많이 없다. 그리고 나는 돼지고기가 훨씬 맛있던데.... ㅋㅋ아무튼.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나는, 스테이크를 먹을 일이 잦았다. 사 먹기도 했지만, 돈도 없을 시절, 어린 마음에 손님이 남긴 고기를 몰래 주워 먹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배고픔으로 잊은 지 오래였다. 그때 손님들의 스테이크를 몰래 먹을 때도 나는 미디엄 레어 정도의 굽기를 즐겼다 ㅋㅋㅋ.


 나는 동생에게 맛있는 소고기를 먹여주기 위해 나름의 철학으로 나름 멋있게 고기를 구웠다. 무조건 소고기는 미디엄 레어라고 설명하며, 기호에 맞게 더 구워 먹으라고 말했다. ㅋㅋ 레스토랑 서빙 알바였던 주제에, 아는 척은 주방장 이상이었다.



 엄청 많이 샀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는 성인 남성 두 명이 먹기에는 약간 부족한 양이었다. 고기로 배를 더 채우고 싶었지만, 예산의 벽에 부딪히게 된 우리는,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한 공기씩 더 비워냈다. 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얼마나 배가 찼는지,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신 뒤에, 농협 앞 커다란 나무 그늘 밑의 벤치에 누워 한 숨 자고 싶을 뿐이었다. 아마 물놀이를 하고 와서 더 그런 듯싶다.


 하지만 우리는 갈길이 바빴다. 오전에 달리는 중간중간 섬강에 들려 지치도록 물놀이를 해댔으니, 시간도 늦은 데다, 페달을 밟기가 힘겨워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다. 입안에서 소고기를 사르륵 녹인 뒤에, 우리는 다시 페달을 밟기로 했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산과 들이 녹녹하고, 시냇물이 반짝였으며, 살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밥 먹어서 에너지도 가득 채웠으니, 다시 달리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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