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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06. 2021

"이쪽 아니야!"

"이쪽 아니야!"

지나가던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딱 봐도 국토종주하는 것 같아 보이셨나 보다.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꽤 커다란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베풀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우리는 지나가면서 "고맙습니다!"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한가한 자전거 길이 펼쳐졌다. 나무, 천, 강, 비포장도로 지루할 것 같은 새로움이 가득한 길이었다. 자전거길 옆으로는 과수원 나무가 펼쳐져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덜 익은 복숭아가 열리고 있었다. 정말 달리면서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달리면서 손을 뻗어 복숭아를 낚아채어 한입 베어 무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차마 그런 나쁜 짓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땅에 떨어진 복숭아 중 잘 익은 게 없을까, 열심히 눈알을 굴려 댔다. ㅋㅋㅋ있을 리가 없었다.


 어느 마을을 통과할 즈음에는 총소리가 나기도 했다. 숲이 찢어지는 듯 울려 퍼지는 총소리에 깜짝 놀란 우리는 찌는 듯한 더위에 벗었던 헬멧을 머리에 얹어 부여잡은 뒤, 버클을 채울 새도 없이 부리나케 페달을 밟아댔다.  


한참을 달리던 우리는 강에 떠있는 작은 낚시터에 도착했다. 잠깐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였다. 바닥에 앉으니, 엉덩이로 넘실거리는 강이 느껴졌다. 나름 감성 있는 사진 스폿이었다. 우리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준구샷 )


(혁구샷)


 어느새 충주의 탄금대까지 4km가 채 남지 않았다. 오늘의 그다음 도착지인 수안보온천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파트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산과 들, 물만 보다가 홈플러스와, 올리브영 같은 진보된 문명을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오랜만이었다. 자전거를 끌며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으니, 왠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즐기기로 했다. 멋있어서 쳐다보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내에서 우리는 필요한 물품을 사 가기로 했다. 준구는 손목이 아프다며 손목 보호대를 사기 위해 홈플러스에 들렀고, 나는 지친 저녁에 다리를 쉬게 해 줄 휴족시간을 몇 개 구매한 뒤에,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시내를 통과하면서 점점 날은 저물어갔다. 새재 자전거길이 시작되었다. 해는 전부 저물어 컴컴한 어둠이 가득했다. 열심히 놀면서 오느라 예약되어 있었던 야간 라이딩의 시작이었다. 새재 자전거길의 초입은 거의 차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했다. 게다가 가로등도 하나 없어서, 만약 자전거 라이트와 후미등이 없었다면, 지나가는 자동차가 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차가 거의 안 다녀서 다행이었지만, 야간 라이딩을 하기에는 위험한 도로였다.


야간 라이딩을 하면 안 되는... 무서운 이유.


 산길이 시작되는 입구, 어느 오르막 길 앞에 커다랗게 "귀곡산장"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귀곡... 섬뜩하다. 직역하면 귀신이 우는 산장이라는 뜻에, 빨간색 조명까지 켜져 있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당장 시내로 되돌아가 자고 가고 싶었다. 아마 혼자 왔으면 분명 되돌아갔을 텐데, 그나마 둘이라서 앞으로 달릴 수 있었다.


 경기권과 달리, 이제는 정말 가로등이 하나 없다. 길을 달리는 내내 어둠이 가득했고, 오롯이 내비게이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후미등 하나가 망가져, 번갈아가며 주행할 수도 없었다. 후미등이 켜지는 사람은 뒤에, 전조등이 켜지는 사람은 앞에서 달려야 했다.



 가로등 없는 것만이 문제의 요소는 아니었다. 밤은, 달리지 않으면 추웠다. 그러니까, 달리다가 바퀴에 펑크라도 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수안보온천까지 가는 길에는 불빛도, 가게도, 사람도, 집도 없었다. 어둡다는 공포보다는, 자전거가 망가지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어두운 산길을 달렸을까, 앞에서 준구가 소리쳤다.

"느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왔따!!" 

앞에는 자그맣게 수안보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고 지나간 시간은 고작 1시간 반이었다. 고작 저녁 9시 무렵이었다 ㅋㅋㅋ


 그날 밤은 따뜻한 수안보의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시원한 맥주 한 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야간 라이딩의 아찔했던 순간들을 지나 온 덕분에 긴장이 더 풀렸는지, 노곤한 잠이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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