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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27. 2021

수옥폭포는 꼭 들려가세요.

아침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잠이 덜 깬 듯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우리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었다. 숙소에서 잠깐의 자전거 정비를 마친 뒤 우리는 곧바로 자전거에 올랐다. 핸들로 이어진 얇은 기능성 티셔츠 위로는 떨어지는 비가 차갑게 느껴졌다. 



 비가 내려 쌀쌀했지만, 추위는 곧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수안보를 떠나자마자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사실 이건 별것도 아니었다. 3일 차인 오늘은 국토종주의 유명한 오르막길을 한꺼번에 몰아서 올라야 하는 날이었다.


 빗줄기 가점점 심해졌다. 달리면서 충전하고 있는 휴대폰 잭에 물이라도 들어가면 큰일이었다. 우리는 어느 오르막 중턱의 정자에 자전거를 세웠다. 주머니에 있는 비닐백으로 휴대폰을 감싸며 정자에 앉아 내리는 비를 구경했다. 추적추적, 무성한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나무도 돌도, 거리도 비에 짙게 물들었다. 평소보다 세상이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다. 몸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차분하다. 왠지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넋을 놓은 채 비 내리는 것을 멍하니 구경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 할 때였다.



 어느 작은 오르막을 한껏 오르고, 내리막을 신나게 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네임드 오르막 소조령의 입구에 다다랐다. 세 개의 오르막 중에 가장 작은 오르막이라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오르막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허벅지는 더 이상 나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컨트롤이 불가했다. 그저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내 허벅지를 대신한 느낌이었다. 쭉쭉 페달을 밟는 동생에 비해 나는 혼신의 힘을 다 해도 페달을 밟기가 쉽지 않다. 이미 기어는 최하로 내려가 있었다. 그래도 소조령은 조금 짧은 편이었다. 뭐, 그 당시에는 한강보다 길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거친 숨을 고르며 간신히 대화를 시작했다. 소조령 정상에는, 근처 관광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다. 소조령을 오르느라 한창 땀을 빼서 후끈거렸던 우리는 표지판에 나와있는 수옥폭포에 잠깐 들려 찬물에 몸을 담기로 했다. 지금 가야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폭포를 지나칠 수 없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웅장한 폭포였다. 최근? 아니 성인이 되고 나서 봤던 폭포 중 제일 감동적이었다. 귀 속을 울리는 폭포 소리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오르막을 미친 듯이 오르고 난 뒤에 만난 폭포라서 그런지, 더 정감이 드는 폭포였다. 



둘 다 노는 건 얼마나 좋아하는지,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을 기어이 올라야 했다. 폭포의 거센 물줄기 옆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도 상당히 무거웠다.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턱 밑까지 쭉쭉 뻗쳤다. 폭포를 맞으니 정신이 맑게 깨워지는 느낌이다. 약간 나의 해이해진 정신이 폭포에게 혼나는 느낌이랄까? 비 온 뒤 흘러들어온 흙탕물에 보이지 않는 폭포 밑 웅덩이에 들어가고 싶었던 우리는, 몇 번이나 수심 체크를 시도했지만 결국 들어갈 수 없었다. ㅋㅋ 여간 무서워야지 말이다. 아쉬운 대로 흐르는 물에 드러누워 물장구를 치던 우리는 이제 다시 출발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물에 젖은 쥐 마냥 온몸이 젖어있었지만, 딱히 어디서 말릴 필요는 없었다. 비는 그쳤고, 해가 점점 중천에 떠올라 따스한 햇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준구야, 졸리다...ㅋㅋ"

출발한 지 얼마다 됐다고 시작한 물놀이에, 우리는 진이 빠져 지쳐있었다. ㅋㅋ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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