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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28. 2021

아쉬운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곧이어 두 번째 오르막 이화령 고개가 이어졌다. 국토종주를 하며 만나게 되는 가장 힘든 오르막 중 하나라고 했다. 이미 나는 체념해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올라가고자 열심히 페달을 밟았지만, 바퀴는 그렇게 오래 구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진짜 숨 막히는 페달질이 반복됐다. 이화령 고개는 경사가 있기도 했지만, 구불거리는 길이 아주 길게 나있었다. 산 쪽을 바라보면 왠지 정상일 것만 같은 곳이 눈에 보였지만, 쉽사리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나는 내 허벅지를 믿지 못했지만, 고맙게도 허벅지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주고 있었다.


 반쯤 가출했던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정상에는 작은 휴게소가 하나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인증 도장을 찍은 우리는, 그제야 이화령의 정상에서 경치를 내려봤다. 눈 앞에는 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는 깊은 계곡이 보였다. 고생 끝에 얻은 나름의 힐링이었다.



 우리는, 이화령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하루가 벌써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데, 아직도 점심이라니. 유명한 오르막길을 두 군데나 오르고 폭포에서 놀기까지 했더니, 눈 만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부터 지친 몸 덕분에 오늘 하루는 왠지 아주 길게 느껴질 것만 같다.


 이화령 휴게소의 식당에서, 우리는 묵밥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콘셉트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보조배터리를 충전시켜야 안심이 됐다. 이윽고, 기다리던 점심이 상 위에 올라왔다. 오, 정상에 하나밖에 없는 외로운 식당이지만 맛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반찬이 맛있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게다가 따뜻하게 데워져서 나온 묵밥이 덜 마른 옷에 으슬거리던 몸을 녹여준 덕분에, 다시금 체력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에, 다시금 재정비에 들어갔다. 달리다가 배 아플지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여 일찍이 화장실을 이용하고, 자전거 가방과, 전자기기들을 점검했다. 8월, 한여름의 라이딩이었기 때문에 선크림도 잊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밖을 달린 탓일까. 분명 온몸을 하얗게 선크림으로 무장했었는데도, 어느새 피부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백두대간 이화령"라고 쓰여있는 커다란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다시 자전거 위에 올랐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반기는 건 올라온 업힐만큼의 다운힐이었다. 국토종주를 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길게 뻗은 내리막길을 달리며 느껴지는 스릴과, 시원한 바람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국토종주를 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다운힐의 즐거움은, 여운으로 남아 이화령을 전부 내려오고 나서도 얼마간 지속되었다.


 내리막길에 힘입어 열심히 달리고 있을 무렵, 옆으로 오래된 분위기로 가득 찬 버스정류장이 지나갔다. 


"예쁘다~"

 앞서가던 준구가 지나가는 버스정류장을 보며 얘기했다.

"야, 그럼 사진 찍고 가자~"

"아니야 뭐, 다음 정류장 있겠지~"

되돌아가기가 귀찮았던 우리는 다음 정류장을 기대하며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 길이 큰 도로를 벗어나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분위기 있는 인생 샷 하나 건져보려 했건만, 이렇게 돼버리니, 사진을 포기할지 시간을 포기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지도를 확인하니, 마을로 진입하고 얼마 가지 않아서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자리해 있었다. 잠깐의 고민 뒤에, 추억을 간직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던 우리는 이내 자전거를 이끌고 마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분위기가 풍기는 그런 정류장은 없었다. 대신 버스 그림이 그려진 기다란 막대기형 버스정류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런, 다시 이전 정류장으로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우리는 작은 교훈만을 하나 얻은 채로 다시 자전거길에 올랐다. 


아쉬운 순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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