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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28. 2021

따뜻한 햇살을 느끼는, 잔잔한 여행

 이화령 넘어서고 나서, 문경 불정역까지의 자전거 길은 순탄하게 이어져있었다. 강렬한 오르막을 하나 올랐더니, 웬만한 오르막은 그냥 '이것쯤이야'하며 넘어가기 일수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해가 중천으로 올랐다. 따뜻한 햇살에 젖은 옷이 서서히 말라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아침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쭉, 평평한 자전거길이 이어졌고, 기분 좋은 페달 소리와 바람소리만이 내 주위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라이딩을 즐겼다. 하늘을 찌르고 있는 산의 풍경과, 금방이라도 돌이 떨어질 것 같은 어느 산의 작은 절벽, 보이지는 않지만 산속을 쏘다니는 새들의 지저귀는 노래까지. 자연의 기운은 나를 왠지 노곤 노곤하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행의 장점은,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사방이 탁 트인 멀리까지 뻗은 자전거길을 달릴 때 더욱 그렇다. 무의식 속에서 페달을 밟으며, 불규칙하게 위로 솟아있는 이름 모를 산들 사이를 지나고, 물이 졸졸 흐르는 하천에는 길쭉한 왜가리 한 마리가 느긋하게 물살을 걷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멀리 보였던 작은 다리가, 금방 가까워져 쳐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로 커져있기도 했다. 산, 논, 과수원, 절벽, 계곡, 강, 마을, 공원, 차도의 모습까지 번갈아가며 지나가고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오르막이 눈 앞에 펼쳐질 때면 도대체 지루할 틈이 없다.



 가다 보면 그냥 왠지 그런 게 궁금해진다. 저 산의 이름은 무엇인지,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까닭은 무엇인지.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생각 없이 가다 보면 떠오르는 것들 중의 하나다. 옆으로 논이 지나갈 때면 농사꾼들이 모를 심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가을쯤 되었을 때 벼들이 얼마나 자라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논의 중앙 즈음에 꽂혀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허수아비가, 고생이 많구나'라는 생각 혹은 '새들이 진짜 저 헝겊 인간에게 속는 건가?'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강이나 하천 옆을 지나갈 때가 가장 괴롭다. 따뜻한 햇볕을 느끼다가, 그 기운이 뜨거워질 때쯤. 나는 다시 강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다. 작은 천을 건너는 다리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물속을 지그시 바라본다. 특히나 물이 맑은 데다 시원하게 흐르는 소리가 들릴 때면 야간 라이딩이고 뭐고, 몸을 던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아침에 수옥폭포에서 신나게 논 결과 오늘 야간 라이딩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몸은 못 던졌지만, 시원하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소리를 느끼노라면 뭔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문경 불정역은 어느 폐역이다. 역 안에는 오래된 열차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잔뜩 녹이 들어버린 철도,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자라난 잡초들이 자리해 있었다. 우리는 열차 앞에서 추억을 새겼다. 촬영한 사진 속의 하늘이 예뻐서 고개를 들어 진짜 하늘을 바라봤다. 파랗고 높은 하늘에는 선명한 구름 몇 개가 떠다녔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그냥 잠시 길바닥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드높은 하늘을 감상하고 싶다. 구름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는 아주 작은 비행기를 눈으로 따라가기도 하고, 노곤해지면 눈을 붙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는데 5일 정도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려면 일주일을 달려도 모자라겠다. 게다가 이 따뜻하고 잔잔하며 노곤한 기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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