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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Feb 02. 2021

자갈밭은 꽤 오랜만인 듯싶다.

 점심 무렵, 우리는 국토종주 길이 시작되는 인천의 아라뱃길로 향했다. 일찍 출발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느릿느릿 시작하다니, 치과 진료가 원인이었다. 치과 앞에서 햄버거로 든든하게 점심 배를 채운 뒤에, 자전거를 정비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다행히도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국토종주를 한다는 게 실감 나지는 않았다. 그저 온몸을 라이딩 장비로 무장한 채로 자전거와 지하철을 타고 있는 내 모습이 멋있었다. 진정한 스포츠맨이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힐끔힐끔 우리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관심이라는 거, 역시 싫지 않았다.


 몇 번의 환승을 거쳐 공항철도를 탔고, 열차 창 밖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철도와, 살랑거리는 갈대밭이 보일 때쯤, 열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곧장 역사의 화장실로 뛰어가 선크림을 구석구석 덧칠하기 시작했다. 한 여름 국토종주를 떠나는 20대의 우리는,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것보다 피부가 새카맣게 타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우리는 자전거에 올라, 설래설래 아라빛 섬으로 향했다.


 아라빛 섬으로 향하는 길, 시작도 하기 전부터 꽤나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어디서 깨진 건지, 깨진 유리가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허윽-‘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가던 우리는 그대로 유리 밭을 관통했다. 급하게 자전거에서 내려, 바퀴의 이것 저곳을 확인했다. 천만 다행히 도 구멍이 뚫린 곳은 없었다. 가방을 메지 않기 위해 짐을 최소화시키던 우리에게, 예비 타이어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시작과 동시에 바퀴가 터지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는 늦은 점심이 되어서야 출발점에 도착했다. 광장 구석에 떡하니 놓여있는 빨간색 부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빨간 전화박스 안에서 우리는 국토종주 수첩의 첫 번째 도장을 찍었다. “쾅!”



 출발하기 전 우리는 공항을 향해 길게 뻗은 영종대교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참, 비행기 타기 좋은 날씨구나 싶다. 오랜만에 넓은 바다를 보니 가슴이 트이는 듯싶다. 바다에 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짠 공기가 코에 스며든다. 그래도 싫지 않다. 동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자갈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남기다 보니 출발이 늦어지는 듯싶다. 남들은 새벽 일찍 출발하는데, 느긋하게 달리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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